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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우리가 망했던 길로 간다”

중앙일보 2018.12.14 00:26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피하고 싶던 박근혜 정부 출범을 바라봐야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수렁에 빠진 공화당은 도덕성을 내세운 풋내기 정치인 카터에게 고배를 마셨다. 카터의 순진함에 질린 유권자들은 곧 노회한 레이건으로 바꿨다. 전 정권의 결점이 정권 교체의 에너지가 되는 건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욕하며 닮아가는 문 정부 불통
전 정부 실패 따라갈 뿐 아닌가

주목할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정권을 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기가 추락할수록 반사이익은 야당 지도자 문재인이 아닌 여당 내 야당 박근혜로 향해서다. 큰 세력으로 집권자의 주요 정책에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면서도 피해자 이미지를 쌓아 대안으로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집권 뒤엔 달랐다. 친박은 김무성 의원 등 자신들과 대척점에 선 주자들을 패권으로 찍어눌렀다.
 
문 정권을 바라보는 한국당에서 ‘우리가 망했던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여당 주자들의 쓰러지는 양상이 박 정권의 진박 감별을 닮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류도, 비주류도 있는 게 정당이다.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이 부딪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집권당엔 친문 순혈주의가 패권이 된 양상이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우연의 연속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비문은 대체로 꺾였다.
 
그렇다고 친문으로 깔끔하게 정리됐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논란의 본질은 ‘혜경궁 김씨’였다. 하지만 이재명 경기지사 부인의 선거법 위반 의혹은 미궁에 빠졌고, 이 지사는 곁가지로 걸렸다. 기소만으로도 칼을 빼던 민주당은 얼버무린다. 문 대통령 아들의 특혜 취업 의혹과 연관됐을 거란 의구심은 풀리지 않았다. 경찰도, 패를 나눠 싸운 지지자들도 어리둥절해졌다. 이중으로 엉켰다.
 
적폐 수사라면 저승사자 같은 검찰이다. 이걸 파다 안 되면 저걸 뒤지고, 그래도 안 나오면 더 과거의 것을 캐는 방식으로 탈탈 턴다. 전 정부 국정원과 기무사의 정치 댓글 사건이 그랬다. 그런데 혜경궁 사건은 그런 열기가 훨씬 덜하다. 명명백백하고 엄정하고 투명해야 의심이 사라진다. 그때그때 잣대가 달라 보이면 궁금증만 키운다. 더구나 경찰은 스모킹 건을 말하지 않았나.
 
사실 전 정권 몰락은 진박 논란보다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대통령과 겨뤘거나 덤비는 사람이 차례로 쓰러지는 건 우연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비밀 많은 여당을 향해 “꽉 막혀 숨막히는 불통(不通)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래놓곤 과거와 닮은 일방통행이 다반사다. 당장 청와대 특감반 전원이 교체됐는데도 가타부타 설명이 없다. 대통령은 질문하는 기자에게 역정을 냈다.
 
모두 ‘나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 KTX 사고로 물러난 코레일 사장은 전 정권 탓이라고 억지다. 자기 지역, 자기 집단, 자기 세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라 서로 뒤엉켜 손발이 묶인 게 지난 정부의 정치였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한 순간 훅 간다’는 문구를 내걸곤 정말로 훅 가자 이후엔 ‘백년정당·영구집권’을 건배사로 외쳤다. 거꾸로 가면 박수를 받을 텐데 왜 따라만 가는지 모를 일이다.
 
에이미 추아 미 예일대 교수는 성공한 제국의 공통점으로 관용을 꼽았다. 로마를 시작으로 당과 몽골, 대영제국과 미국 등 동서양 제국들이 종교·문화·인종적 관용을 베풀 때 최고 치세를 열었고, 관용을 잃자 붕괴 수순을 밟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달라도 괜찮다는 사실만큼은 동의했다’는 게 부시 장례식장에 선 클린턴의 조사였다. 나라를 성공시켜야 10년이든 20년이든 집권할 것 아닌가.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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