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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만으로 벼 '복제' 가능해진다...우수 품종 보존하고 수확량 증가할까

중앙일보 2018.12.13 03:00
벼꽃에 날아든 꿀벌. 벼꽃은 개화한다고 하지 않고 출수한다고 한다. 하나의 이삭에서 100개 이상의 작은 꽃이 피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벼꽃에 날아든 꿀벌. 벼꽃은 개화한다고 하지 않고 출수한다고 한다. 하나의 이삭에서 100개 이상의 작은 꽃이 피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우리가 흔히 먹는 벼에도 꽃이 필까.

 
핀다. 먼저 출수, 즉 이삭이 올라온 다음 하나의 이삭에서 쌀알보다 작은 꽃이 100개 가까이 핀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가루가 묻은 것처럼 보인다. 벼는 자신의 꽃 하나에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을 모두 갖고 있어 자체적으로 생식이 가능하다. 자가 수분 중에서도 하나의 꽃 안에서 수정이 일어나는 ‘자화수분(Self Pollination)’을 하는 것이다.
 
이 꽃들이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은 개화 후 불과 2시간. 이때를 놓치면 벼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7월에 피기 시작해 8월까지 짧게 피는 벼꽃은 종자를 생산하기 위해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美 연구진, 꽃 없이 쌀 생산하는 법 개발...우수 품종만 골라 ‘선별적 생산 ’가능해지나 
 
경기도 양평군의 한 논에서 촬영된 벼. 벼는 자신이 피워낸 꽃 '하나'에서 각각 수정이 가능한 제꽃받이 식물이다. 그러나 미국 UC데이비스대 연구진은 12일, 이런 과정없이 씨앗으로만 쌀 생산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진 김상선 기자]

경기도 양평군의 한 논에서 촬영된 벼. 벼는 자신이 피워낸 꽃 '하나'에서 각각 수정이 가능한 제꽃받이 식물이다. 그러나 미국 UC데이비스대 연구진은 12일, 이런 과정없이 씨앗으로만 쌀 생산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진 김상선 기자]

그런데 벼꽃에서 일어나는 수분 과정이 없이도 씨앗만으로 쌀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연구진은 12일(현지시각)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고, 같은 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이를 게재했다. 동물에 비유하면 수컷의 정자에 해당하는 꽃가루(화분)만으로 종자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중간 과정은 차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수한 개체의 종자를 ‘복제’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수분을 통하는 등 복잡한 과정 없이 우수한 형질을 발현시킬 수 있게 됐다.
 
UC 데이비스대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동물의 정자에 해당하는 '화분'만으로 종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물은 우수 형질의 쌀을 복제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다. [중앙포토]

UC 데이비스대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동물의 정자에 해당하는 '화분'만으로 종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물은 우수 형질의 쌀을 복제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다. [중앙포토]

고희종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보통 벼는 암 배우자에 해당하는 배낭과 수 배우자에 해당하는 화분이 수정란(Zygot)을 만들어 종자를 생산한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는 수 배우자가 가진 유전자만으로 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고 교수는 “암·수 모두가 가진 ‘BBM1 유전자’가 배아 생성의 핵심인데, UC데이비스대 연구진은 수 배우자의 BBM1이 암 배우자의 BBM1을 지배한다는 매커니즘을 발견했다”며 “이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암 배우자의 BBM1을 제거하고, 수 배우자의 유전자만으로 종자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수 배우자의 화분만으로 생식이 가능하도록 생식세포 분열(감수분열) 과정을 없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생식을 할 경우, 염색체 수가 반으로 줄어들어 불완전한 벼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사라짐으로써 화분의 염색체는 온전히 종자에 ‘반영’된다는게 고희종 교수의 설명이다. 
 
우수한 벼 품종, 감귤처럼 '꺾꽂이'하는 효과...종자생산 비용 절약
제주도 서귀포시 하례리의 한 농가가 감귤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 최충일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하례리의 한 농가가 감귤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 최충일 기자]

 
이 같은 기술이 상용화하면 별도로 우수품종을 유지하기 위해 종자를 생산하는 비용이 감소하게 된다. 병충해에 강하거나 우수한 개체가 있으면 가지를 꺾어 다시 심는 ‘꺾꽂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열대지방에 맞는 벼 품종을 개발해 수출하는 등 ‘GSP식량종자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런 사업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또 종자 생산이 간편해지는 만큼 생산효율도 올라갈 수 있다.
 
연구진은 향후 이 기술에 의해 생산된 쌀이 실제로 영양상으로 우수한지에 대해 추가 연구를 통해 검증해 나갈 계획이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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