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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학교…"스쿨미투는 더 많은 핵폭탄이에요"

중앙일보 2018.12.13 01:00
올 한 해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트윗된 단어는 '스쿨미투'였다. 지난 4월 용화여고 졸업생·재학생들의 미투(#Metoo)로 시작된 스쿨미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스쿨미투는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급기야 이들은 거리로 나왔다. 지난달 3일 서울에서는 첫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국회에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스쿨미투 관련 법안들이 쏟아졌다. 통과되지는 않았다.
 
지금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허윤(17)양과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하람(19)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활동가, 그리고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장을 만났다.
 
왼쪽부터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허윤(17)양과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장, 최하람(19) 활동가, 홍상지 기자. 최미연 인턴기자

왼쪽부터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허윤(17)양과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장, 최하람(19) 활동가, 홍상지 기자. 최미연 인턴기자

요즘 학교 어때요?
허양은 요즘 학교 친구들과 스쿨미투 관련 이야기들을 많이 나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언론에 나온 스쿨미투 피해자들에게 '김치녀', '꽃뱀' 과 같은 말을 쉽게 던졌고 그런 아이들을 선생님들은 방관했다. 허양은 "이런 환경에서는 피해 학생이 자신의 피해를 고발하기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최 활동가가 졸업한 학교에는 말할 때마다 별 이유 없이 여학생의 어깨를 주무르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때는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니야?'가 아니라 '웬만하면 저 쌤 가까이 가지마'에서 멈췄어요." 설사 학교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해도 선생님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다.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야."
 
손 소장이 학생이었을 때도 학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때 학생들에게 야한 시를 읽어주는 국어 선생님이 있었어요. 당황스러워하는 학생들 반응을 즐겼나 봐요"라고 회상했다. "더 무서운 건 세월이 흘러 그 사람(가해자)이 어디 장학사가 됐다, 어디 교장이 됐다, 이런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허윤(17·왼쪽)양과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장이 스쿨미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미연 인턴기자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허윤(17·왼쪽)양과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장이 스쿨미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미연 인턴기자

왜 지금 스쿨미투일까?
"저 쌤 변태야""가까이 가지마" 정도에 머물렀던 학생들의 움직임은 왜 하필 최근에서야 이리도 커진 걸까. 최 활동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러 페미니즘 단체가 생겨났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잖아요. 그게 각 분야의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가장 폐쇄적인 학교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다들 '나만 불편하고 싫었던 게 아니구나' 느끼게 된 거죠. SNS의 역할도 컸고요."
 
최 활동가 말에 허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저희 세대는 SNS를 정말 열심히 하는데 그러다 보니 거기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도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전 스쿨미투가 나오는 게 더 대단해 보여요"라고 말했다. 교우관계나 입시에 한창 예민할 시기인에 리스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SNS를 통해서 피해 사실을 폭로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설문지가 바꿀 수 있나요?
스쿨미투 이후 각 지방 교육청들은 다양한 대책들을 내놨다. 스쿨미투 전수 조사, 상담·신고센터 운영 등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허양은 "이미 학교에 '위클래스'라는 상담기관이 있는데 상담한 내용 비밀 보장이 되지 않아 애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는 "이미 있는 것도 안 되는데 또 다른 상담센터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라고 되물었다.
 
전국 중·고교로 자주 성교육 강의를 나가는 손 소장도 답답해 했다. "애들이 그래요. '무슨 일만 터지면 설문조사 하는데, 설문지가 우리 인생 바꿔줄 수 있냐'고요. '솔직하게 답변하면 오히려 쓴 사람부터 찾아내려 한다'라고요". 손 소장은 상담센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상담센터는 사실 어디에나 있어요. 그런데 대체로 상담사들은 2~3년 계약직이고 조직 자체의 파워도 약해요. 그런 센터에 애들이 어떻게 믿고 상담을 하겠어요. 상담센터에 힘을 제대로 실어줘야 해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하람(19·왼쪽) 활동가와 기자가 스쿨미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미연 인턴기자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하람(19·왼쪽) 활동가와 기자가 스쿨미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미연 인턴기자


전하고 싶은 이야기
손 소장은 인터뷰 막바지에 학생들이 남긴 스쿨미투 기록집 『여기』를 소개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책 도입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역사는 기록을 남긴다. 우리도 남긴다.' 손 소장은 "지금도 제2, 제3의 '여기'가 또 있을 것 같아요.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에요"라고 말하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이제 가해자들에게 죄책감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최 활동가는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함께 가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는 걸 학생들이 알아줬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허양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묻자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 나이가 17살인데 인생을 24시간으로 계산해보면 이제 새벽 4시쯤인 시간이래요. 우리 모두 아직 인생의 시작점인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힘내야 한다고, 이제 시작이니까 지치지 않고 오래 가야 한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게 자신이 이기는 일이고 우리가 이기는 일이니까요."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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