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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미아의 절망에 빠졌을 때 나타난 구세주

중앙일보 2018.12.12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11)
샤프란볼루에서 터키의 전통 목욕탕 하맘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여행 경험이 된다. 진지 하맘은 수백 년 전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더욱 예스럽다. [사진 박재희]

샤프란볼루에서 터키의 전통 목욕탕 하맘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여행 경험이 된다. 진지 하맘은 수백 년 전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더욱 예스럽다. [사진 박재희]

 
국제 미아 신세임을 자각한 후에도 난 차분하게 행동했다, 고 하면 거짓말이다. 무조건 뛰었던 것 같다. 이리저리 뛰긴 했지만 난동을 피운 것도 아닌데 내 행동이 매우 신비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저 이렇게 외쳤을 뿐인데.
 
“나는 터키어를 하지 못합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몹시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한번 상상해보시라. 이방인이 분명한 행색의 여자가 한국으로 치면 곡성쯤 되는 마을에 나타난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이렇게 외친다.
 
“나눈 한쿡마룰 하지 몬함니다. 나는 터르키쉬 사람임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채지 않았겠나? 터키말을 하거나 최소한 영어를 할 수 있는, 이를테면 ‘관계자’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도움을 구하고자 취한 행동은 한심하게도 그것뿐이었다. 비정상적인 상태의 한국인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 나는 절박하게 다가가고 사람들은 뒷걸음치는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고저쩌고 알라~ 알라아~”
 
할머니였다. 이스탄불 터미널 대합실에서 그리고 버스 옆자리에서 내내 나를 괴롭게 한 바로 그가 히잡을 쓴 여인, 니캅을 입은 또 다른 할머니와 함께였다. 두 팔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고 다시 손으로 이마를 치며 알라를 부르는 여인들 사이에 한 사람, 분명히 그 할머니였다. 살면서 누가 그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 그 순간처럼 어떤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절감했던 적은 없다.
 
“할머니이이이이~”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에 진짜 애정과 진짜 상냥함, 진짜 반가움이 저절로 실렸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갔다. ‘살았다!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안도의 심정으로 이번에는 내가 할머니의 옷 소매를 붙들었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 표정이라니.
 
히잡을 쓴 샤프란볼루의 할머니들. 타지인에게 경계심이 있을 법도 한데 수줍어하면서도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터키 전통차, 차이를 내주고 사진을 찍게 허락해주셨다. [사진 박재희]

히잡을 쓴 샤프란볼루의 할머니들. 타지인에게 경계심이 있을 법도 한데 수줍어하면서도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터키 전통차, 차이를 내주고 사진을 찍게 허락해주셨다. [사진 박재희]

 
할머니들은 자리를 맴돌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어 알라를 외치는데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꽤 시간이 지난 후 무전기를 들고 흰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할머니들은 그에게 소리를 지르고 그는 할머니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흰 와이셔츠는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나에 관해 묻는 눈치였다. 우리 할머니가(앗~ 내가 지금 우리 할머니라고 했나?) 나를 안아 당겨 당신 쪽으로 끌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쩌고저쩌고 알라아~ 알라아~”
 
흰 와이셔츠가 무전 후 할머니들에게 무어라고 했다. 할머니들은 예의 그 어쩌고저쩌고 알라 알라 소리 지르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걷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머리카락이 먹종이처럼 지글거리던 여름날, 나는 할머니들 뒤를 따라 터키 고속도로를 행군했다. 차도르와 히잡을 쓴 여인들 뒤로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동양 여자가 한 줄로 걸었고 지나는 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버스는 이미 꽤 간 상태고 차를 되돌릴 상황이 아닌 모양이었다. 뭐래도 좋았다. 깃발처럼 휘날리는 할머니의 차도르 자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목이 타는 행군을 얼마나 했을까? 멀리서 비상등을 켜고 선 버스가 보였다. 국제 미아 신세를 면했다.
 
버스 밖에 나와 있던 사람들과 남자 차장(터키에서는 여성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성이 밖에서 남성을 응대하는 것이 금지된 이슬람 종교 영향이다. 심지어 속옷 매장에서 나에게 여성 속옷의 사이즈 조견표를 보여준 이도 남자 종업원이었다)은 펄쩍펄쩍 뛰었다. 현대무용으로 분노 혹은 어이없음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한 그런 몸짓이었다.
 
토카틀리 협곡(TokatliKanyonu)은 샤프란볼루 여행자들이 최고로 꼽는 트래킹 명소이다. 토카틀리 협곡과 협곡을 조망하기 좋은 크리스털 테라스가 내려다 보인다. [사진 박재희]

토카틀리 협곡(TokatliKanyonu)은 샤프란볼루 여행자들이 최고로 꼽는 트래킹 명소이다. 토카틀리 협곡과 협곡을 조망하기 좋은 크리스털 테라스가 내려다 보인다. [사진 박재희]

 
버스에 올라가자 우리에게 사람들은 일제히 원망인지 비난을 쏟아냈다. 단체로 고함지르기 대회라도 시작된 것 같았다. 어떤 남자는 손가락으로 손목시계를 치며 삿대질을 했고 몇몇은 웃기도 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기야 우리 할머니도 차장에게 삿대질하며 쩌렁쩌렁 소리를 지른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내게 그건 그냥 노래였다. 조금 시끄러운 뮤지컬, 제목은 “어쩌고저쩌고 알라~ 알라아~”
 
차장 청년에게는 승객에게 머핀과 오렌지 주스를 나눠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다. 인원을 체크하는 일. 승객에게 종착지를 묻고 확인하는 일 말이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내린 우리 잘못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차장의 부주의 혹은 업무 불이행으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닌가? 우리를 둘러싼 버스 안 시끄러운 뮤지컬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끓어오를 듯한 고속도로를 걷고 따가운 눈총을 실컷 얻어먹은 후 나를 구성하는 화학식이 좀 달라진 것일까? 난 그때부터 할머니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내 이름이 알고 싶었고,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터키가 맘에 드는지, 사프란볼루에는 왜 가는지 궁금해한다는 것을 기적처럼 다 알아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똑같이 ‘어쩌고저쩌고 알아아~ 알라아~’했는데 말이다.
 
몇 시간 전 할머니의 손을 떼어내던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태블릿을 만져보도록 하기도 하고 휴대폰 사진을 보여드리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면서 할머니와 소통했다. [사진 pixabay]

몇 시간 전 할머니의 손을 떼어내던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태블릿을 만져보도록 하기도 하고 휴대폰 사진을 보여드리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면서 할머니와 소통했다. [사진 pixabay]

 
휴대폰 사진을 보여드리고 몇 시간 전 할머니의 손을 떼어내던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태블릿을 만져보도록 했다. 노트를 펼쳐 그림을 그려서 난 글을 읽고 쓰지 못하시는 할머니와 소통했다. 그의 이름은 하디자, 할머니는 아들 다섯과 딸을 하나 두셨다. 사프란볼루에서 가까운 카라뷔크에 산다. 이스탄불 오토갈에서 할머니를 배웅했던 청년은 할머니의 큰손자다. 기적이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알아들었으니까.
 
“데세큘예데림(감사합니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옆자리에 앉아주셔서, 엉뚱한 터미널에서 내려주셔서, 나를 알아봐 줘서, 목소리가 커서, 나 대신 차장에게 항의해줘서 모든 것이 감사했다. 한국말로 “죄송했어요”라고 수없이 반복했다. 귀찮아해서, 외면해서, 매몰차게 굴어서 그래서 죄송했다.
 
할머니가 내려야 할 카라뷔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하디자 할머니는 손바닥을 펴서 가슴에 대고 말씀하셨다. “어쩌고저쩌고 알라아~ 알라아~”

이제 난 할머니 말을 아주 잘 알아듣는다.
 
“잘 가. 여행길에서 무사하길. 신께서 널 도와주실 거야”
“고맙습니다. 할머니, 건강하시고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말로는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마음은 힘이 세고,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것을 나는 사프란볼루 가는 길에 알았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jaehee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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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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