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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광고 대신 인권 캠페인, 그러고도 연 25% 성장한 이 브랜드의 비결은

중앙일보 2018.12.12 06:00
다가올 미래, 임기응변식 비즈니스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중요한 순간 깊이에서 차이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에 깊이를 더하려면 장기적 관점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일의 미래’을 이야기하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에서는 확고한 철학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임팩트 비즈니스에 주목했습니다. 12월, 폴인에서 준비한 콘퍼런스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③ “러쉬(LUSH)라는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윤리(Ethics)” 러쉬코리아 박원정 에틱스 디렉터(Ethics Director, 윤리 담당자) 인터뷰
 
순 매출 약 763억 원, 지난 5년간 연평균 25.3%  매출 신장.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가 한국에서 거둔 성적이다. 대대적인 마케팅 없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점이 눈에 띈다.
 
러쉬는 TV 광고를 만들지 않는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같은 브랜드 모델도 없다. 대신 인권 보호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친환경 제품 개발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으려 한다. 그들은 원재료 구매부터 제품 생산, 프로모션으로 이어지는 비즈니스의 모든 단계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고민한다.
 
원재료를 구매하는 에티컬 바잉(Ethical Buying, 윤리적 구매) 팀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러쉬는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같은 지역을 방문해 직접 원재료를 구매한다. 빈곤 지역의 경우 농지를 구매한 뒤 현지인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우면서 신선한 원재료를 구매하는 상생의 구조다.
 가나 호조바 여성협동조합에서 공정한 거래로 얻는 쉐어버터 [사진 러쉬]

가나 호조바 여성협동조합에서 공정한 거래로 얻는 쉐어버터 [사진 러쉬]

생산 과정에서도 브랜드의 철학은 유지된다.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액상 제품을 고체화하고, 포장 없이 제품을 판매한다. 매장에서는 제품에 담긴 가치를 설명하면서 판매 수익이 어떤 캠페인에 사용되는지 알려준다. 고객의 소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설득하는 셈이다.

 
이러한 노력은 비즈니스적 성과로 이어졌다. 최근 몇 년 간 ‘윤리적 소비’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러쉬의 매출이 상승세를 보인 것. 이에 러쉬코리아는 브랜드의 근간인 윤리 정책과 캠페인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브랜드 에틱스(Brand Ethics, 브랜드 윤리) 팀을 신설했다.
 
오는 19일 서울 종로 스페이시즈(SPACES) 그랑 서울에서 열리는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에 연사로 서는 박원정 에틱스 디렉터와 만나 러쉬의 브랜드 철학과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윤리소비의 시대가 열렸고, 러쉬는 지금까지 해온 일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러쉬코리아 박원정 Ethics Director. [사진 황정옥 폴인 에디터]

러쉬코리아 박원정 Ethics Director. [사진 황정옥 폴인 에디터]

 
'LUSH'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싱싱한’ ‘푸른’ ‘울창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1995년 창업 당시 영국에서 공모를 통해 신선한 제품과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는 이름을 선정했다.
  
사내에 '에틱스 디렉터'라는 직함이 있다니, 굉장히 특이하다.
동물과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러쉬의 목표다. 이런 목표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전사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부서가 브랜드 윤리를 기반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보다 깊이있게, 전문적으로 윤리 정책을 실현하는 팀이 만들어졌다. 나라마다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과 브랜드의 규모에 따라 다르다.
 
브랜드 에틱스 팀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브랜드 철학을 알리기 위해 강연에 나서는 것부터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 윤리 정책을 실현하는 일 등이다. 일례로 동물실험 대체에 기여하는 과학자나 단체를 후원하는 시상식 ‘러쉬 프라이즈(LUSH PRIZE)’에 국내 후보를 추천했다. 올해는 한국인 수상자가 두 명이나 나와 감회가 새롭다. 동물 대체시험을 우선시한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켜 로비 부문 특별상을 받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화학실험에 이용되는 토끼의 점막을 대체할 '눈 칩(Blinking Eye on a chip)'을 개발해 과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허동은 교수가 주인공이다.
 
러쉬를 ‘캠페이닝 브랜드’라 소개하던데, 캠페인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가.
러쉬가 나서야 하는 이슈가 있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캠페인에 동참한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서는 팜 오일을 얻으려 열대우림을 불태우고 대량으로 팜 나무를 심는 일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땅이 훼손되고 야생동물이 살 곳을 잃는다. 숲이 타면서 나는 연기 때문에 국제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러쉬는 지난 2년 동안 NGO나 풀뿌리 단체(Grassroots)와 협력해 수마트라에서 약 30만 평의 농지를 사들였다. 구매한 땅에 영속농업을 정착시켜 지속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비용은 캠페인 제품을 팔아 마련했다. 러쉬의 캠페인 제품은 세금을 제외한 모든 판매수익이 모금에 사용된다.
 
러쉬에서 판매한 캠페인 제품 SOS 수마트라 샴푸 바 [사진 러쉬]

러쉬에서 판매한 캠페인 제품 SOS 수마트라 샴푸 바 [사진 러쉬]

 
캠페인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 건가.
유명한 국제기구가 하는 일이나 널리 알려진 캠페인은 굳이 러쉬가 나서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작은 단체의 절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정말 러쉬가 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 국내에서는 난민·성 소수자·새터민·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 운동을 돕거나 실험실의 비글을 구조하고, 멸종위기의 산호초와 돌고래를 보호하는 일 등에 참여했다.
 
캠페인 외에 제품에 담긴 사회적 가치는 없나.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 다양한 가치들이 담겨있다. 원재료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 현지인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와 환경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후원한다. 공장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포장 용기 사용을 줄이려 노력한다. 액상 제품의 고체화가 대표적이다. 액상 제품을 고체화하면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피할 수 있고, 제품의 부피가 줄어 운송 비용도 절감된다. 마지막으로 모든 제품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사람이 만들기에 고용 창출은 물론이고, 정성이 담긴 제품을 만들게 되는 장점이 있다.
 
향이 아주 진한데 친환경 제품이 맞는 건가.
친환경 제품과 천연 제품은 구분해야 한다. 러쉬 제품은 100% 천연 화장품이 아니다. 우리는 검증된 인공보존제를 쓴다. 향도 마찬가지다. 천연 향을 섞는 과정에서 진해지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 같은 때는 인공 향을 첨가한다. 우리는 고객이 향기와 함께 하루의 피로를  풀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동화같이 사랑스러운 느낌을 내려 인공 향을 첨가한다. 물론 인체에 해롭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고객들은 러쉬가 하는 일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다 보니, 매장에서 만나는 고객에게 브랜드 가치를 설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고객에게 브랜드와 제품을 소개하는 일을 컨설테이션(Consultation)이라 부른다.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있다. ‘트레이너(Trainer)’라 불리는 직원은 고객에게 원재료에 담긴 가치와 스토리, 성분의 효능이나 제품의 사용법 등을 설명한다. ‘캠페이너(Campaigner)’는 캠페인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 수익으로 러쉬가 하는 일을 알려준다. 각종 서명운동에 동참을 유도하기도 한다. 
 
왜 윤리적인 활동에 집착하는 건가.
러쉬라는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에틱스다. 한국에 윤리적 소비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최근 2, 3년 새 러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서, 지금껏 해온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기업이 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구매를 통해 지지 의사를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박원정 디렉터는 19일 서울 종로 스페이시즈(SPACES) 그랑 서울에서 열리는 폴인(fol:in)의 콘퍼런스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에서 브랜드 철학과 신념으로 시장을 바꾸는 사례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입장권은 폴인 사이트(folin.co)에서 구매할 수 있다.
 
김대원 에디터 kim.da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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