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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경제 난민들’

중앙일보 2018.12.12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연말이면 사상 처음 3만 달러 선을 넘게 된다. 2006년 GNI가 2만795달러로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지만 2008년 말에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3만 달러 선을 돌파하는 데 12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3만 달러 시대라고 축포를 쏘기에는 한국경제 상황과 민생경제 사정이 너무 암담하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2.6% 내외로 2012년(2.3%)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저성장이 고착되는 모양새다.
 

1인당 소득 첫 3만 달러 진입
저성장 고착화로 민생난 가중
착한 정책이 나쁜 결과 초래
소득주도성장 정책 손질해야

국민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우울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사업 실패나 실직, 워킹 푸어, 가족 해체로 인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경제 난민들이 쏟아진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하루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일용근로자들, 53만 명에 달하는 구직 단념자들, 100만 명을 넘는 실업자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많은 국민을 경제 난민으로 내몰고 있나.
 
올해 들어 10월까지 고용 통계를 보면 경제난민 문제의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1~10월의 월평균 취업자 증가 규모는 2017년(32만8000명)의 30% 수준(9만7000명)으로 급감했다. 전체 취업자 증가 규모가 많이 감소했지만 1~10월의 월평균 상용 근로자 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전환정책에 따라 작년 동기보다 21% 증가했다. 그런데 가장 소득이 낮고 취업이 불안정한 일용근로자의 월평균 취업자 수는 지난해(4만7000명 증가)보다 올해(8만 명 감소)가 크게 악화했다. 사람을 쓰지 않는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월평균 5만8000명 증가)보다 올해(8만8000명 감소) 사정이 참담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고용 동향의 양상은 가계소득 동향에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가장 소득이 낮은 1분위 가구의 가계소득 중 이전소득(1~3분기 평균)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월 10만6000원 증가했다. 반면에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각각 10만3000원과 5만1000원이 감소했다. 근로소득이 감소한 이유는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따라 증가한 인건비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고용을 줄인 결과, 근로자들의 취업 기회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업소득의 감소는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시론 12/12

시론 12/12

정부의 이른바 ‘착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따라 소득 1분위 가구에 월평균 10만6000원을 지원해 줬으나, 다른 한편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시장의 반작용을 초래해 오히려 월평균 15만4000원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저소득 계층은 정부 지원 소득보다 더 큰 소득을 시장에서 잃었다는 얘기다.
 
1~3분기 평균 1분위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을 보건복지부가 고시하는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100만3000원)와 비교해보니 겨우 2만1000원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월평균 가처분소득이 전년 동기대비 10%가 감소한 것은 전례가 없고, 그 결과 가처분소득이 평균 이하인 가구들은 상당수 최저생계비에 미달한다는 점이다. 최저소득계층의 10% 수입 감소는 한계선에 있는 소득계층을 이른바 ‘경제 난민’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이러한 결과의 전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더라도 심각한 충격을 끼쳤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착한 정책이 나쁜 결과를 가져온 사례로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의도가 나쁜 정부 정책은 없다. 결과가 나쁜 정책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왜 좋은 의도의 정책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부총재를 역임한 프린스턴대 앨런 브라인더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득 재분배 정책은 흔히 불안정하고 저소득층을 지원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반대방향으로 작용하기 쉽다. 왜냐하면 소득 재분배 정책은 소득불균형을 가중하는 동시에 시장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책은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반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이런 정책은 특정한 의도가 지배하는 시스템에 의해 흔히 채택된다.” 마치 지금의 한국경제를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포용적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나타나고 있는 ‘착한 정책의 나쁜 결과’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장의 역풍을 자초해 분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경제난민의 수를 증가시킬 위험이 높다. 11일 취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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