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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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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 5년···대북 비판 키운 자충수

중앙일보 2018.12.12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남북 화해기류에 묻힌 장성택 숙청
김정은 집권 7년 동안 벌어진 가장 충격적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장성택 처형’이 오늘로 꼭 5년을 맞는다. 절대권력을 다지려 고모부를 살해한 ‘청년 지도자’ 김정은(당시 29세)의 모습에 평양 권력 내부는 공포정치의 절정을 맛봤다. 국제사회는 그 잔혹성에 경악했다. 대북 인권감시 기구들에겐 북한 체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장성택 제거로 권력의 위해요소를 없앴다는 정치공학적 평가와 함께 잠재적 불안요인을 더 키운 것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장성택 처형 5년의 북한 권력 흐름과 향후 김정은 체제의 향배를 진단해본다.

반국가 혐의 사형판결 후 즉각 집행
김정은식 공포정치에 국제사회 경악

남북 화해 기류 속 잊혀진 5주기
“북 악마화 말라” 노골적 찬양도

미, 70주 인권의 날 맞춰 대북제재
‘김정은 답방’도 의연한 대처 필요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12월 13일 새벽 장문의 보도를 내보냈다. 하루 전 열린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에 대한 재판 진행 관련 소식이었다. 장성택에겐 ‘현대판 종파의 두목’이란 굴레가 씌워졌고,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해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 밑에 국가 전복음모의 범죄를 감행했다”는 혐의가 제시됐다. 추종분자들 사이에 장성택이 ‘1번 동지’로 불렸던 점도 거론됐다. 긴 판결문은 사형 선고로 맺어졌고, 그 끝 문장은 선고와 동시에 형이 전격적으로 집행됐다는 섬뜩한 내용이 자리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장성택과 그 휘하 세력에 대한 제거는 은밀하고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11월 중순 최측근인 이용하 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 등 노동당 행정부의 실세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연행돼 공개처형 당했다. 북한 공안기구를 관장하며 쥐락펴락하던 행정부 핵심부가 눈치조차 채지 못한채 몰락했다. 비슷한 시기 장성택의 행적도 묘연해졌다. 우리 국가정보원은 이상징후를 포착해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북한은 이후 상황을 생중계하듯 외부에 알렸다. 12월 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장성택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출당·제명 조치된 후 군관에 의해 끌려나가는 장면이 TV화면으로 공개됐다. 당 간부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장성택 처단’ 선전·선동을 이어가던 북한은 같은 달 12일 처형 조치를 단행했다.
 
장성택 사태는 체제 안팎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막내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당시 국방위 제1위원장)의 후견인으로 낙점한 인물이 하루 아침에 몰락했다는 점에서다. 굴곡은 있었지만 김일성 집권 시기부터 승승장구해온 권력 핵심이란 점에서 파장은 더 컸다. 누구도 김정은 시대의 최고실세로 장성택 부장을 꼽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고모부(고모 김경희의 남편)를 저렇게 무참히 처형하는데 우리 같은 존재는...”이란 생각에 노동당과 군부·내각의 고위 인사들도 벌벌 떨었다. 김정은의 군부 과외교사인 이영호 전 총참모장 숙청 같은 앞서의 상황과는 수준이 달라졌다는 측면에서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더 놀라워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혈족은 물론 친인척도 단숨에 제거해버리는 사화(士禍) 같은 일이 21세기 평양 권력의 중심부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다. 어릴 적 조기유학을 통해 서방세계를 경험한 젊은 지도자에게 개혁·개방을 기대하던 문명국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집권 2년만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잔혹 드라마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실태에 대한 시급하고도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장성택 처형 이듬해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발표한 보고서에 김정은과 북한 정권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우도록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고위급 접촉 등 화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제 최용해 당 부위원장 등 3인을 인권유린과 관련한 대북제재 대상에 올렸다. 제70주년 세계 인권의 날에 실행된 이번 대북제재는 2016년 김정은을 포함시킨 제재조치 이후 4번째다.
 
처형이 끝나자 북한은 장성택 지우기에 나섰다. 체제 내부에서 그의 이름을 거명하는 건 금기시됐다. 장성택이 주도한 평양민속촌 등 건설·건축 사업은 모두 취소되거나 원상복구됐다. 북한 관영매체는 지금껏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5주기를 맞은 올해 장성택 사태는 우리 당국이나 언론의 관심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분위기다. 김정은 체제의 폭압적 실상이나 인권실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던 예년과는 달라졌다. 올 초부터 한반도를 휩쓴 남북 화해·협력 기류, 김정은의 대남 유화제스처와 별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아예 장성택 처형사태를 두둔하거나 기괴한 논리로 감싸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중견 연구기관 소속 한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 집권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는 140여명으로 김정일 시기 2000명 처형에 비해 더 많은 간부를 숙청한 건 아니다”라는 발표문을 공개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김정은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고 “보수 정부가 ‘김정은이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했다’는 식의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켰다”는 주장만 펼치다가 학계 안팎에서 비난을 부른 것이다. 한 재미 학자는 “사유재산을 챙기고 남쪽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등 개인주의적 성향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장성택 쪽에 돌리기도 했다. 장성택 처형을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말하면서도 “북한을 악마화화면 안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친정부 성향의 인사도 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환영하는 차원을 넘어 ‘백두 칭송’ 운운하는 건 이런 정서의 극단적 표출이다.
 
문재인 정부도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연내 답방’ 성사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그의 남한 방문이 어떤 의미를 갖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어떤 논의가 오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전 남북 정상간 직통전화를 개통하겠다며 시험통화 장면까지 공개한지 8개월이 됐는데도 “북한과 직통전화가 없어서...”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은 안쓰럽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서명한 건 ‘가까운 시일 내내 서울 방문’이다. 그게 ‘연내 답방’이라고 부연한 건 문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북측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하거나 “김정은 위원장이 연내 답방 구두 약속을 지킬 것이라 기대한다”는 수준의 논평을 내고 차분히 답신을 기다리면 족할 뿐이다. 김정은 답방이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듯 대통령과 청와대·정부는 물론이고 일부 시민사회와 언론까지 나서 안달하는 건 볼썽사납다. 지난 1년 동안 김정은이 보여온 미소보다 앞서 6년 간의 숙청과 대남 도발·겁박이 훨씬 신경쓰이는 국민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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