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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짓다 만 아파트, 문 닫은 가게…탈원전, 지역 경제 휩쓸다

중앙일보 2018.12.11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탈원전의 짙은 그늘
울진 원전 근처의 버려진 아파트 공사 현장. 신한울 3·4호기 백지화와 함께 건설을 중단했다. 옹벽이 갈라져 무너질 듯하다. [권혁주 기자]

울진 원전 근처의 버려진 아파트 공사 현장. 신한울 3·4호기 백지화와 함께 건설을 중단했다. 옹벽이 갈라져 무너질 듯하다. [권혁주 기자]

탈원전이 지역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게는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하나둘 고향을 떠났다. 원전 소재지인 경북 울진군과 경북 경주시 얘기다. 중앙일보가 둘러 본 현실이 그랬다. 울진군에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취소됐고, 경주시에서는 월성 1호기가 1년 7개월째 가동을 멈췄다. 그 결과 각종 지원금과 세금이 줄고 일자리가 사라졌다. 원전 건설·운영 인력들이 떠나 아파트와 원룸은 비어가고 있다. 사람과 도는 돈이 줄어 장사가 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생계를 무너뜨리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우리와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신한울 3·4호기 취소된 울진군
아파트 공사 중단에 원룸은 비어

1호기 조기 폐쇄 월성원전 인근
170곳 넘던 점포 40개만 남아

원전 세수·지원금까지 줄면서
울진 예산 1년 새 1700억원 감소

“지역 파탄 내는 정책 추진하며
주민과 한마디 상의 없어” 불만

 
# 지난 6일 한울원전 인근인 울진군 북면 나곡리. 짓다가 만 아파트가 흉물스레 남아 있다. 콘크리트 뼈대를 올리다 말았다. 빈터엔 목재·배관 같은 건자재와 녹슨 리어카가 나뒹굴었다. 야산에 둘러친 옹벽은 갈라져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상태다. 이 아파트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인력들을 겨냥해 2016년 120가구 규모로 짓기 시작했다. 원전을 만드는 7~8년 동안 건설 인력이 머물 주거 공간이었다. 원전 완공 후에는 운영 인력이 확 늘어난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정부가 신한울 3·4호기를 짓지 않겠다고 선언한 직후 공사를 중단했고, 지금 같은 상태로 방치됐다.
 
주민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여파다. 울진군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한울 1·2호기를 건설했던 인력 상당수가 철수하지 않고 지역에 그대로 머물렀다. 곧 3·4호기 건설에 투입될 것을 예상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예정됐던 3·4호기를 취소하면서 인력들이 모두 이 지역을 떠났다. 원전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임순(56·여)씨는 “전엔 아침 7시에 문을 열면서부터 손님들이 들이닥쳤는데 이젠 공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장헌견(56) 북면발전협의회장은 “원룸도 빈방 투성이다. 사실상 지역이 공동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만 난리가 아니다. 울진군 자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탈원전 때문에 원전 가동률이 뚝 떨어지면서 발전량에 비례해 받던 세금과 지원금이 확 줄었다. 신규 원전 건설에 따른 지원 역시 없어졌다. 그 바람에 올해 7280억원이었던 울진군 예산은 내년 5580억원으로 1700억원이 줄었다. 무려 23% 감소다. 울진군 측은 “진행하던 항구 정비 사업, 요트 마리나항 조성 사업 등을 멈춰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신한울 1~4호기 건설 계획은 김대중 정부 때 세웠다. 울진군은 반대했다. 이미 원전 6기가 돌고 있는데 추가 건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0년 넘는 논의 끝에 정부는 도로 건설 등 총 28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해 겨우 울진군의 동의를 얻었다. 현재 신한울 1·2호기는 준공을 앞뒀다. 3·4호기는 지난해 여름 착공 예정이었다. 군은 3·4호기를 세우면서 나올 지원금에 맞춰 예산을 늘렸고, 주민들은 공사 인력이 밀려들 것을 생각해 원룸과 식당 등에 투자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내세워 3·4호기 건설을 취소했다. 결국 주민들은 헛투자를 한 셈이 됐다. 지역 경기는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2800억원 지원 사업도 진행이 불투명해졌다.
 
원전 건설을 요구하는 울진군민들의 시위 모습. [연합뉴스]

원전 건설을 요구하는 울진군민들의 시위 모습. [연합뉴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역 경제를 파탄 내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청와대와 정부는 지역과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는 이유다. 울진군과 주민들은 지난 9월 10일간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하며 대책을 요구했지만 별무신통이다. ‘진실소통협의회’를 만들어 울진군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화하자는 정도에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대화를 기다리는 사이 울진에서는 당장 가게 문이 닫히고 있다. 결국 울진군과 주민들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촉구 범국민 서명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오는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발대식을 한다. 전찬걸(59) 울진군수는 “우리로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전 군수와의 문답이다.
 
원전 주변을 돌아봤다. 심각하긴 하더라.
“탈원전 뒤 인구 5만 명인 군에서 한 해 1000명이 빠져나갔다. 인구가 줄어 빈집이 늘고 상권은 죽었다. 오후 9시가 넘으면 거리에 사람이 없다.”
 
정부가 신한울 3·4호기를 백지화하면서 정말 울진군과 전혀 대화하지 않았나.
“그렇다. 예전에 울진군이 신한울 건설에 반대할 때는 장·차관에 국무총리까지 와서 손 붙잡고 설득하더니, 반대로 건설 계획을 없애면서는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 행정’인가. 갑자기 얻어맞은 울진군은 지역 경제가 엉망이 됐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지역 얘기도 들어보고, 지역 실정을 파악하면서 탈원전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울진은 한때 원전 건설에 반대하다가 지금은 건설 백지화에 반대하고 있다.
“건설 반대 입장을 바꾼 건 정부과 대화와 협의를 한 결과였다. 정부가 여러 가지 지원을 제시해 주민들이 받아들였다. 지원을 바탕으로 각종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게 확 줄게 됐다. 지역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탈원전 자체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대화 없이 탈원전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반대한다. 원전 지역에는 탈원전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신한울 건설 재개를 받아들일까.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국민의 뜻을 물어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다. 국민투표에 부치든, 공론화하든, 해야 한다. 대만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 지난 7일 오후 월성 원전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중심가. 여기저기 문 닫은 점포가 눈에 띄었다. 중식당 ‘매일반점’을 비롯해 ‘베를린 호프’‘광천돼지국밥’ ‘까치다방’ ‘박카스 노래방’ ‘피자가 기가 막혀’ 등 거의 한 집 건너 하나꼴로 폐업했다. 치과·이불집·인력사무소도 셔터를 내렸다. 대로변 뒷 골목은 문 연 집보다 닫은 가게가 더 많이 눈에 띌 정도였다.
 
나아리를 비롯해 읍천리·나산리 등 ‘원전 최인근 5개 마을’의 김홍기(56) 사무국장은 “나아리에 한때 170개 상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40여 개만 남았다”고 전했다. 그가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도 손님이 줄어 아르바이트 4명을 모두 내보내고 가족끼리 점포를 꾸리고 있다. 최저임금까지 올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이곳 주민들이 분석하는 불경기의 원인은 두 가지다.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이다. 직접 원인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다. 발전소 근무 인력이 감소했고 협력업체의 일감도 덩달아 줄었다. 간접 원인은 원전에 대한 이미지다. 김 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원전이 불안한 시설, 혐오 시설로 낙인 찍혔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더 퍼뜨렸다. 그래서 근처 문무대왕릉이나 주상절리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식사하려 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뜬다. 장사가 되질 않는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 역시 의견 수렴 없이 원전 폐쇄를 결정한 정부에 불만이 가득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경주지진 1년을 맞아 당시 백운규 산자부 장관이 감포읍에서 간담회를 했다. 주민들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얘기가 나오는데, 그렇게 하면 지역 경제가 가라앉는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백 장관은 1주일 뒤 감포읍발전협의회 앞으로 공식 서한을 보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계획 수립 시)지역 설명회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조기 폐쇄 결정은 주민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이뤄졌다. 신수철(60) 감포읍발전협의회장은 “문서로까지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신 회장은 “조기 폐쇄 결정에 항의해 세종시 산자부 청사에서 천막 농성을 한 뒤 정부와 협의 채널이 만들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실장에서 국장, 팀장으로 자꾸 직급이 낮아져 정말 우리 의견을 들으려는 것인지 신뢰감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더 큰 우려를 안고 있다. 2020년이면 월성 원전 안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꽉 찬다는 점이다. 추가 시설을 세우는 데는 2년 가까운 공사 기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착공해야 기존 시설이 포화하기 전에 완공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공사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경주시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 남홍(78) 위원장은 “저장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월성 2·3·4호기마저 세우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월성 2~4호기가 가동을 멈추면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경주시가 받는 세금과 지원금 수천억원이 감소한다.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하기 힘든 규모다.
 
# 일각에서는 “원전 건설을 재개하거나 조기 폐쇄 결정을 번복할 것이 아니라, 원전 지역에 경제적 보상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그리 쉽지 않다. 울진군과 경주시 모두 40년 가까이 원전을 운영하면서 경제 구조가 원전 중심으로 굳어졌다. 울진군은 지역내총생산(GRDP)의 50% 이상이 원전과 관련 산업에서 창출된다는 분석도 나와있다. 단순 보상 정도로는 이를 벌충하기 어렵다. 울진군과 경주시가 “원전 건설 등의 약속을 지키고, 탈원전은 지역 산업 구조를 바꿔가며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부는 이런 고려 없이 탈원전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원전 소재지는 황폐해져 가고 있다. 정부는 ‘소통하지 않는 정부, 믿을 수 없는 정부’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렇게 귀를 닫은 정부를 향해 원전 지역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왜 포용하지 않는가.”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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