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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짖는다고 죽여 버린다면 짖는 개 남아날까"

중앙일보 2018.12.10 15:00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14)
권위나 패거리 문화가 싫다. 이를 좋아할 이는 많지 않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좀 유난스런 편이다. 나이 탓인지 성격 탓인지 아니면 시비를 가리고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직업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예 다수 의견이나 통설, 심한 경우 상식이란 것까지 딴죽을 걸고 싶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독서 경향도 대체로 그렇다. 베스트셀러는 말할 것도 없고 고전이라 해도 어지간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론(異論) 잡설(雜說)을 다룬 책에 끌린다. 이게 자칫 ‘편벽’으로 흐를 우려가 있어 종종 경계하는 편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 저자 천쓰이, 글항아리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 저자 천쓰이, 글항아리

 
그런 취향에 제대로 꽂혔던 책이 있다.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천쓰이 지음, 글항아리)이다.
 
대학 강단에 서다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군과 언론계에서 활동한 이색 경력의 지은이가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어쩐지 독자를 밀어내는 듯한 묵직한 제목과 달리 ‘독서 에세이’다. 원제 ‘초교담왕(草橋談往)’은 차우차우(草橋)란 베이징 교외의 한 마을에서 쓴 이야기란 뜻이니 지레 겁먹을 것은 없다. 그런데 이 책 제법 진지하다.
 
“아름다운 자에 대해, 그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니 비록 악함이 있더라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악한 자에 대해 그가 악하기 때문에 악하게 여기는 것이니 비록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
 
당나라 때 유지기가 쓴 사학비평서 『사통(史通)』을 인용한 대목인데 승리했기 때문에 아니면 우리 편이기 때문에 결점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실패했거나 ‘다른 편’이라서 필사적으로 비난하고 그가 했던 좋은 의견도 거론하지 않는 ‘진영 논리’나 ‘내로남불’을 겨냥한 듯하지 않은가.
 
고전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주체적 읽기가 책의 주제인 만큼 지은이의 자세는 자못 엄정하다. 유가의 핵심은 인(仁)이 아니라 예(禮)이며 이는 시대를 수호하고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학설이란다. 여기엔 의복의 색깔과 재질을 신분별로 엄격히 제한하는 등 “미천한 자는 존귀한 자를 섬기고, 불초한 자는 현명한 자를 섬기니 이것이 천하에 통용되는 의리다”라고 했던 유가의 사상이란 설명이 뒤따른다.
 
지은이는 ‘경전 읽기’를 통해서 민족의 도덕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학자들이 그리는 ‘미덕 사회’는 누가 통치하던 어느 시대인지를 모르겠다고 비웃는데 이게 비단 중국에만 통용되는 지적일까.
 
학생들이 책을 보고 있는 모습. 지은이는 책을 읽는 자세와 관련하여 오래된 벗과 만나 무릎을 맞대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듯 읽으라고 권한다. 송봉근 기자

학생들이 책을 보고 있는 모습. 지은이는 책을 읽는 자세와 관련하여 오래된 벗과 만나 무릎을 맞대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듯 읽으라고 권한다. 송봉근 기자

 
책을 읽는 자세와 관련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을 담았다. 지은이의 고전독서법 핵심은 ‘무릎 꿇고 읽지 말라’ 한다. 대신 오래된 벗과 만나 무릎을 맞대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듯 읽으라고 권한다. “의심하지 않던 곳에서 의심이 생겨야 비로소 학문이 발전한다”며 “우리가 어떤 위대한 인물을 진정으로 존경한다면 그를 한 명의 지자(智者)로 여겨야지 신으로 떠받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시성(詩聖) 두보의 작품 중 ‘서경의 두 아들에 대해 읊다(徐卿二子歌)’를 예로 든다. “…공자와 부처가 꿈속에서 친히 아이를 안아서 건네주었으니 또한 뛰어나고 총명한 천상의 아들이로다…작은 아이는 다섯 살에 소를 잡아먹을 만큼 기운이 왕성하니…” 쓰촨 성 병마사였던 서지도의 아들을 상찬한 낯간지러운 시인데 단지 두보의 작품이라 무조건 떠받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은이의 그런 독서법은 세 문장으로 정리된다.
 
‘不死讀書 不讀死書 不讀書死’
죽도록 책만 읽지 말고, 죽은 책을 읽지 말고, 책만 읽다가 죽지는 말라는 뜻이다. 실천적 독서를 강조한 말인데 책을 왜 읽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처럼 교묘하게 압축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독서법을 일러주고 중국사의 이면을 들춰내는 데 있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숱한 중국 고전 관련서를 뛰어넘는다.
 
“사물은 반드시 먼저 부패한 뒤 벌레가 생기고,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경멸한 이후에 다른 사람이 경멸하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무너진 이후에 다른 사람이 파괴한다.”
 
“개를 키우는 것은 본래 짖기 때문이다. 지금 자주 짖는다는 이유로 죽여 버린다면 아마도 나중에는 다시는 짖는 개가 없을 것이다.”
 
곳곳에서 이런 글을 만나니 어찌 이를 독서인의 단순한 한담(閑談)이라 할 것인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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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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