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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차라리 ‘유신’이 좋다고 하지

중앙일보 2018.12.10 00:02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한다. 원수 같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손잡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선거법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모든 후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표를 얻기 위해서다. 그것이 바른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도 2015년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한국에 맞게 손질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다수 학자가 이 안을 지지했다. 그런데 왜 이제 반대할까. 다음 총선까지 1년4개월 남았다. 현실적인 득실 계산이 앞선다.
 
현행 선거제도 개혁에 팔 걷고 나선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부산에서 지역주의와 맞부딪치며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 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P. 289)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P. 290)면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다고 추천했다.
 
불과 한 달 전 문재인 대통령도 여야 지도부에 “중앙선관위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공약을 재확인하고,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생각임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도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민주당이 지역구를 다수 확보해 비례 의석을 얻기 어렵다”며 조정을 요구했다. 정치 지형이 유리해진 탓이다.
 
6·13 지방선거 광역비례투표를 총선으로 바꿔보면 알 수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라면 민주당 243석, 한국당 47석이다. 나머지 10석을 다른 당이 나눠 갖는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민주당 153석, 한국당 80석, 정의당 31석, 바른미래당 27석, 민주평화당 5석…. 민주당 의석이 90석이나 줄어든다. 그러니 바꾸고 싶지 않을 것이다.
 
김진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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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집권당이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어 국정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현행 제도라고 집권당이 항상 과반수를 차지하나. 아니다. 과반을 차지하면 거수기가 되고, 거꾸로면 사사건건 국회와 대통령이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서로 어긋난다. 군소 정당이 참여할 때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운명이다』)에 훨씬 가까워진다.
 
국정 안정을 강조한 건 권위주의 정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없애고, 국회 의석 3분의 1을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선거구마다 2명씩 동반 당선시킨 뒤 전국구 92석의 3분의 2를 지역구 의석이 가장 많은 정당에 먼저 배정했다. 나머지 31석을 지역구 당선 의석 비율로 나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설마 이런 제도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지 않나.
 
한국당은 왜 반대하나. 현행 제도는 두 개 정당으로 표가 쏠린다. 한국당이 싫어도 민주당을 더 싫어하는 사람은 한국당을 찍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바른미래당은 살아남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 선거는 본인이 잘해서라기보다 상대방 실수로 이기는 경우가 많다. 경쟁 야당을 만들기 싫다. 제1 야당이 보장되니 훨씬 매력적이다.
 
한국당은 또 연동형에 ‘도농복합선거구제’라는 조건을 붙였다. 선거구가 넓은 시골은 현행대로 소선거구, 대도시는 대선거구로 하자고 한다. 지방은 지역주의로 가르고, 대도시는 나눠 먹는 그림이다. 대도시에서 밀리는 한국당 의원들은 떨고 있다. 6·13 서울지역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24명인 데 반해, 한국당은 1명밖에 당선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당선을 보장받으려는 속셈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선거구제는 일본에서도 부패의 원인으로 지목돼 사라지고,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선거구제에서는 선거에 당 조직이 아닌 사조직을 동원해야 하므로 정당 정치가 죽고, 파벌이 살아나며, 돈 선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지역구에서 30%로 당선된 후보와 5%를 얻어 당선된 후보가 나온다. 누가 대표인지도 혼란스럽고, 책임감도 떨어진다.
 
군소정당들이 선거법 개정에 목을 매는 것은 의석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명분도 있다. 거대 양당은 “우리만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양보가 아니다. 유권자들의 뜻대로 국회를 구성하는 건 국민의 권리다. 정치는 수시로 바뀐다. 서북풍이 불다 동남풍이 불기도 한다. 해가 뜰 때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옳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바보’는 바보가 아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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