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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여제 무터, 40년 농익은 활과 현

중앙일보 2018.12.10 00:02 종합 22면 지면보기
7일 안네 소피 무터는 리오넬 브랑기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했다.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7일 안네 소피 무터는 리오넬 브랑기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했다.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별다른 부침을 겪지 않고 꾸준히 주목받는 이들이 클래식 음악계에도 존재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55)가 그중 하나다. 1976년 열세살 때 루체른 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열다섯에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5번을 녹음했다. 지금 들어봐도 좋은 연주다. 이후 무터는 40년 넘게 70여 장의 음반을 발매하고 세계 유수의 무대에 섰다.
 

서울시향과 2년 만의 한국 무대
음반 70장 낸 DG 120주년 기념
밀고 당기고 늘이고 조이고 달관

초창기부터 안정적인 기량이 검증된 무터의 연주는 이후에도 기복이 없었다. 섬세한 개성을 표출하며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는 연주였다.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더 과감해졌지만, 따스함은 그대로 남았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동시대 음악 해석에 주력하던 무터는 40대를 전후한 2000년대 들어 음영을 표현하는 폭이 넓어지고 뉘앙스의 변화도 풍부해졌다. 첫 남편 데틀레프 분덜리히와의 결혼과 사별, 두 번째 남편 앙드레 프레빈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었기 때문일까. 비 온 뒤 더욱 단단해진 예술적인 바탕 위에 선 그녀는 어떤 무대도 두렵지 않은 듯했다. 등산을 좋아하고 27세 딸, 24세 아들과 여행을 즐기는 안네 소피 무터는 “아이를 가지는 건 축복”이라고 말하는 평범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10월 무터는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르키스와 내한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섰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526에서 치밀한 밀도와 개성 있는 연주는 바이올린의 여제다웠다.
 
2년이 지난 12월 7일, 무터가 같은 무대에 섰다. 40년 동안 음반을 발매해 온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 12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콘서트였다. 리오넬 브랑기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오케스트라의 짧은 전주가 시작되고 바이올린 첫 음이 그 안에 녹아들었다. 뜨거운 수프 안에 버터가 녹아들 듯 감쪽같았다. 브랑기에는 곡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듯 느린 템포를 주문했다, 1악장에서 격정이 휘몰아칠 때 무터가 바라보는 시야가 광활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멀리 바라보며 극적인 굽이를 잘 살렸다. 더블스톱으로 두 음이 합쳐질 때 귓가에 닿는 광채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무터의 연주는 궤도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잠시도 곡을 가만 두지 않고 밀고 당기고 늘이고 줄였다. 능동적이던 무터는 어느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었다. 자유자재, 달관의 바이올린이었다. 예전 리사이틀에서 들려준 중후하고 버터같이 기름진 톤은 여전했다.
 
2악장에서는 긴장이 다소 느슨해졌고, 탄탄한 중역대가 빛나는 고음을 더 부각시켰다. 3악장은 한 음 한 음이 정면승부였다. 잰걸음으로 템포가 빨라졌다. 무터는 활을 긋지 않는 부분에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쳐다보고 고개를 까딱이며 독려했다. 총주 뒤에 마무리를 위해 수습하는 듯한 무터의 바이올린에서 자애로운 중음역이 흘렀다.
 
눈부신 고음과 여유 있는 중저음을 여유롭게 발산하는 연주는 무터가 여전히 바이올린의 여제임을 확인하게 했다. 50대 중반에 한치도 흐트럼 없이 자신 있게 서 있는 그녀의 그림자에 40여 년의 여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브라바’를 외치는 뜨거운 탄성이 객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무터는 앙코르를 두 곡이나 선사하며 청중의 요청에 화답했다. 모두 바흐 파르티타 2번 BWV1004 D단조 중에서 골랐다. 앙코르 첫곡 지그에서는 단련된 한 음 한 음이 귓가에 와 꽂혔다. 하루라도 연습을 거르면 저렇게 연주 못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앙코르는 사라방드였다. 달래는 듯 어르는 듯한 바이올린 음이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전곡, 일부, 앙코르로 많이들 연주하는 곡이다. 하지만 무터가 활 끝으로 그리는 큰 그림은 확연히 달랐다. 더 넓고 깊고 풍부했다. 무궁자재한 연주 뒤 득의만면한 무터의 모습은 벌써 다음 내한을 기대하게 했다.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kinsechs06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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