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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로 줄 세우는 '학력고사'식 수능이 교육 망쳤다"

중앙일보 2018.12.10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남중 논설위원이 간다 
‘수능 창시자’ 박도순 명예교수에게 대입 개혁을 묻다
‘수능 창시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수능이 최소한의 대학수학능력 평가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과거의 점수로 한 줄 세우는 ‘학력고사’로 완전히 돌아갔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수능 창시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수능이 최소한의 대학수학능력 평가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과거의 점수로 한 줄 세우는 ‘학력고사’로 완전히 돌아갔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아버지에게서조차 내처진 자식’.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두고 하는 말이다. 5일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2019학년도 대학입시에서도 수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불수능’을 넘어 ‘마그마수능’이란 불만에다 역대 가장 많은 이의신청이 쏟아졌다. 난이도 조절에 발목이 잡힌 결과다. 대입제도 자체의 문제를 질타하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이가 있다. 수능을 설계해 ‘수능 창시자’ ‘수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도순(77) 고려대 명예교수다. 그는 수능이 본래 취지를 잃고 점수로 줄 세우는 ‘학력고사’로 돌아갔다고 단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양성 교육과 동떨어진 대입제도라는 진단도 내린다. 수능 논란 와중에 박 교수를 만나 미래 교육과 대입 개혁에 대해 물었다.

암기 위주 교육 폐해를 없애려
도입한 수능이 취지에서 변질돼

절대평가·자격고사로 수능 전환
정부는 대입 손 떼고 대학 자율로

정권마다 땜질식 대입 손질 악순환
국가위원회 만들어 장기 플랜 짜야

 
박 교수는 노태우 정부 이래 십수 년간 정부의 교육정책 자문에 참여하고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한국교육학회장, 교육평가학회장을 지냈다. 평생을 한국 교육이 가야 할 길과 입시 문제를 고민해 온 원로 교육학자다. 박 교수에게 ‘대입 공통시험’ 개선 작업의 키를 맡긴 건 노태우 대통령이다. 기존 학력고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학입학적성시험’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한 그의 글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1994학년도 대입에 처음 도입된 수능이다. 박 교수는 “수능은 본래 대학 입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통합교과형 시험”이라고 했다.
 
수능 도입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무엇보다 암기 위주 교육의 폐해를 없애자는 거였다. 암기라는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돼 있다. 일곱 번의 테스트를 거쳐 만든 수능 문제를 기자들에게 나눠주고 풀어보라고 했는데 대부분 점수가 좋았다. 암기에 의존하지 않는 이런 문제가 바람직하다고 봤다. 지나친 교과이기주의를 해소하고 개별 대학이 만들기 어려운 문제를 국가가 대신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대학 수학 능력을 보는 통합교과 시험이기 때문에 사교육비도 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이 수능을 중요 전형자료로 쓰는 등 애초 취지와 달라지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애초 취지와 왜 달라진 건가.
“대학 수학을 위해서는 교수 강의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필요하다. 또 논리적 사고가 있어야 하는데 이걸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수리력이다. 그래서 애초 수능은 언어영역과 수리영역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영어 독해능력을 넣어달라는 요구가 나와 영어 과목이 들어갔다. 그랬더니 과학계가 들고 일어나 과학탐구가 들어갔고 이어서 사회탐구마저 들어가게 됐다.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 이건 아니라고 했더니 ‘감당이 안 된다’고 하더라. 표를 의식한 ‘정무적 판단’으로 수능은 출발부터 뒤틀린 셈이다.”
 
그렇다면 현행 수능의 문제는.
“지금 수능은 완전히 과거의 학력고사로 돌아갔다. 암기식 교육을 유발하는 한 줄 세우기 시험이다. 문제는 세상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재상부터 달라졌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집단지성, 창의성, 상호협동능력, 소통능력을 갖춘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가르치는 교육에서 배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결과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그 결과에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당연히 시험도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의 수능과 대입은 저해 요소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박 교수는 ‘교육 평가’ 연구에 주력해 온 학자다. 지난해 10월 열린 서울국제교육포럼에서도 ‘미래 교육을 위한 평가의 혁신’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그런 박 교수가 한때 초·중학교 시험을 없애자는 주장을 했다. 잘못된 평가 방식이 교육을 망친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대입도 마찬가지다. 학교 교육을 망치는 수능과 대입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대입이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얘긴데.
“대입제도에 맞춰 고교 교육이 바뀌는 게 현실이다. 미래 인재 교육을 위해선 고교 교육과정이 자율화돼야 하는데 대입이 막고 있다. 대입 시험에 안 나오는데 전인교육에 공을 들이겠나. 수준별로 가르치라 해놓고 시험 잣대는 동일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고교는 그 특성과 목적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 목적이 다른 상위학교(대학)가 하위학교(고교)를 지배하는 건 문제다. 그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수능이 가야 할 방향은.
“절대평가 체제로 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 상대평가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일 뿐이다. 수학 능력을 재려는 목적에는 절대평가가 맞다. ‘점수’ 변별을 ‘능력’ 변별로 바꾸자는 얘기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입시 영향력을 줄여주는 게 바람직하다. 전형요소로 수능 성적을 꼭 필요로 하는 대학은 상위권 20~30개에 불과할 거란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수능이 고교 교육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과도한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대입제도 개선의 큰 방향은.
“입시 문제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어렵다. 결국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게 옳다. 입학사정관제의 효율을 높이고 잘 정착시키는 게 관건이다. 대학을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지만 신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학원 신입생 선발은 누구도 관여하지 않고 대학에 맡겨두지 않나. 자율화로 가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기본 원칙은 있어야 한다. 대학은 공정성 원칙을 지키고 책임을 져야 한다. 최근 고려대가 면접관 18명이 학생 1명을 인터뷰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더라. 이런 식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자율화 시대다. 국가는 입시에서 손 떼고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
 
박 교수가 상정하는 미래의 대입 완전 자율화의 그림은 이렇다. “개별 대학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계열별, 학부별 또는 학과별로 그 교육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자질의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입학전형제도를 구성해 운영한다. 획일적인 대입 전형은 사라지게 된다.”
 
근본적 대입제도 정착을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과거 정부에서 입시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1대1로 대응해 땜질식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사교육비 등 사회 병리를 해결하려는 수단으로 입시를 손질해 온 것도 문제다. 안정적인 대입제도 정착을 위해선 이번 정권 내에 성과를 낸다는 집착을 버리고 장기 플랜을 세워야 한다. 진보와 보수 인사를 아우르는 국가위원회를 만들어 10년 이후를 내다보고 5~10년이 걸리는 장기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국민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손을 대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대학 교육의 변화도 주문했다. “대학은 궁극적으로 우수 학생 선발 경쟁이 아니라 부족한 학생을 뽑아 잘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당부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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