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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아재’와의 대화

중앙일보 2018.12.07 00:23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아재’라는 말이 이토록 널리 쓰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아재 개그’에서 시작해 ‘아재 패션’에 이르기까지 ‘아재’라는 말은 단순히 국어사전상의 정의인 “아저씨의 낮춤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사회학적 의미를 함축하게 됐다. 구글 트렌드에 의하면 아재라는 말은 2016년에 와서야 비로소 폭발적으로 새롭게 쓰이게 됐다고 한다. 아마 그 말 속에는 우리의 현재적 갈등과 권력의 문제가 숨어 있을 것이다.
 
‘아재’라는 말은 단순히 고상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취향의 투박성만을 지적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또한 ‘아재 개그’가 유행에 뒤떨어진 언어 유희(pun)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농담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있어 왔다. ‘아재 개그’의 본질은 사실 농담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담을 던지는 사람의 자기애(自己愛)적 성향과 농담을 듣는 이와의 권력관계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아재 개그의 핵심은 그것이 재미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 농담을 끝까지 던질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재’라는 말은 주변과 이웃의 분위기를 배려하지 않는 한국 중년 남성들의 자기 중심성에 대한 고발의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아재’라는 말의 여성형이라 할 ‘아줌마’라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고, ‘아저씨’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상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아재’라는 말을 우리의 언중(言衆)이 새롭게 쓰게 된 것은 권력관계의 전복이라 할 만하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 운전석에 앉아 공동체를 독점적으로 이끌어 갔던 이들을 끌어내리고 극복하는 것은 이들을 부를 멸칭을 고안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정치적·이념적 갈등에 부가적으로 남녀·세대 간의 멸칭 부르기가 난무하는 곳이다. 아재와 아줌마, 한남과 김치녀의 갈등이, 노년과 중년과 청년이 서로 낮춰 부르는 이름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물론 모든 갈등이 나쁜 것은 아니며 때로는 갈등의 폭발과 조정을 통해 사회가 조금씩 전진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갈등이 생래적(生來的)으로 소속된 집단, 선택의 여지 없이 내가 소속된 집단의 아이덴티티 사이의 싸움, 우리 편과 적이 대립하는 피아 간의 전쟁이 되는 순간 갈등의 탈출구는 요원해진다.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한남’으로 태어났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아재’가 돼 있었고, 그러한 존재임을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아재들을 ‘아재’라고 부르는 순간 모든 구체적 문제들은 단순화되고 개별적 삶의 파토스는 증발한다. 예컨대 오늘의 아재들도 한때는 청년이었으며 꿈과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의 아버지에게 억압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졌을 따름이다. 이전 세대의 가부장 흉내를 내보려고 하지만 부모 세대와 달리 미처 충분히 안락한 집을 장만하지 못했고, 충분히 안정적인 직장을 얻지 못했으며, 트로트 음악에 미처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자식 세대와 달리 충분히 빠른 컴퓨터와 전화기가 어색할 따름이며, 충분히 세련되고 국제적인 취향과 매너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걸그룹의 이름은 여전히 헷갈리기만 한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스스로를 ‘중도 진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지만 막상 월급 명세서를 받아보는 날엔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아재의 변명’은 매우 재미 없지만 적어도 이들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말 걸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체적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여성과 청년들 또한 들려주기를 희망한다.
 
2018년이 한국의 정치에 던진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전까지 정치적으로 소외돼 있었던 여성과 청년을 어떻게 정치의 중심에서 받아들이고 이들의 문제를 공동체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아재’로 지칭되는 이들이 여성과 청년의 여집합이라는 사실이 새삼 의미심장하다.
 
정치 공동체는 싫건 좋건 이렇게 다른 입장과 이해를 지닌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곳이며, 그 존속의 비결은 이들 사이의 갈등을 공동체 내에서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아재’들이 귀와 마음을 열고 여성과 청년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그리고 이들이 ‘아재’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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