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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맥주는 왜 외국산처럼 '4캔1만원'에 못 팔까

중앙일보 2018.12.06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5)
얼마 전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의 맥주 시장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본 현지에서는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등의 맥주 매출이 점점 줄고 있지만 한국으로의 수출량은 크게 늘고 있다며 한국에서 일본 맥주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일본 맥주들. [사진 flickr]

일본 맥주들. [사진 flickr]

 
NHK 기자는 한국인이 일본 맥주에 열광한다는 주제로 기사를 쓰고 싶어 했다. 일본 맥주를 마시는 한국 사람이 증가하는 이유를 비롯해 왜 일본 맥주 사진을 SNS에 올리는지, 한국 맥주와 일본 맥주의 맛 차이 등을 물었다.
 
나는 한국인이 일본 맥주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소위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많이 마신다는 취지로 답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일본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저렴하면서 더 맛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맥주 자괴감을 느끼게 하다니…. 이게 다 대한민국 주세법 때문이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일본 맥주가 ‘4캔 1만원’ 마케팅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을 꽤 오랫동안 봐 왔다. 외국산 맥주 수입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일본 맥주의 수입량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맥주 수입액 추이. [표 한국무역협회, 제작 유솔]

맥주 수입액 추이. [표 한국무역협회, 제작 유솔]

 
2017년 우리나라의 전체 맥주 수입량은 10년 전인 2008년에 비해 7배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 맥주의 수입량은 12배가량 폭증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전체 수입 맥주 중 일본 맥주의 비중은 24%고 금액으로는 7141만 달러(약 793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대일 맥주 무역 적자는 6894만 달러였다.
 
2017년 대일 맥주 무역 수지. [표 관세청, 제작 유솔]

2017년 대일 맥주 무역 수지. [표 관세청, 제작 유솔]

 
정작 일본 현지의 맥주 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일본 주류 대기업 5개사의 2017년 맥주류(맥주, 발포주, 제3의 맥주) 출하량은 전년 대비 2.6% 감소해 13년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일본에서 취재하러 올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NHK 기타큐슈 지역 방송이었는데, 기타큐슈 인근 지역에는 아사히, 기린 등의 공장이 있어 한국과 가까운 하카타 항을 통해 많은 물량이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수입된 일본 맥주 500㎖ 캔은 한국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4캔 묶음에 1만원 이하로 판매된다. 1캔당 2500원 미만이다. 일본 현지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반면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 같은 한국 맥주는 같은 유통망에서 500㎖ 캔당 2500원 이상에 팔린다.
 
국산과 수입산, 과세 기준 달라
이는 주세법에서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에 세금을 다르게 부과하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는 제조 원가에 이윤과 판매관리비를 포함한 출고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데 비해 수입 맥주에 대해서는 이윤이나 판매관리비를 뺀 수입 신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과세 표준이 달라 수입 맥주가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을 부과받는 것이다. 만약 의도적으로 수입가를 낮춰 신고한다면 국산 맥주보다 더 큰 폭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수입 맥주는 4~6캔 1만원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서 만든 맥주는 이런 가격 구조가 나오기 어렵다.
 
카스 월드컵 에디션. [사진 제공 오비맥주]

카스 월드컵 에디션. [사진 제공 오비맥주]

 
주세법은 오비맥주가 카스를 미국에서 만들어 역수입하도록 하기도 했다. 오비맥주는 올 6월 카스의 러시아월드컵 패키지 중 740mL 캔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해 국내로 들여왔다. 맥주를 역수입해 국내 생산 맥주보다 낮은 세금을 내게 되면서 실제 카스 740mL 캔 가격은 기존의 같은 용량 제품보다 12% 낮아졌다.
 
일본 대기업 맥주는 전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 3대 맥주 대회 월드 비어 컵에서 아사히의 대표 제품인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금메달(인터내셔널 비어 부문)을 따내기도 했다. 맥주 대회 심사위원이 아니더라도 일본 맥주를 마셔보면 한국 맥주보다 맛과 향이 깊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일본은 다른 OECD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주세법에서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생산하는 맥주의 양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이다. 어떤 맥주든 1ℓ에 220엔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맥주의 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체계다. 맥주 생산량이나 판매량과 관계없이 맥주를 만들 때 들어가는 비용이 많으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이에 따라 일본 맥주 회사들은 품질 좋은 몰트, 홉을 다량 투입해 프리미엄급 맥주를 만들어도 세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비싼 양조 장비를 도입해도 되고 인재 영입도 자유롭다. 어차피 출고량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받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한정판 맥주 등 다양한 맥주를 소량 생산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 단가가 높지만 세금 부담이 없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맥주 재료에 대한 제한까지 풀어주면서 올해 아사히는 레몬그라스를 넣은 알코올 도수 7%의 ‘그란 마일드’를 내놨고 산토리는 오렌지 필 등을 첨가해 만든 ‘비어 레시피’ 시리즈를 한정 출시했다. 일본 조세 당국은 맥주에 대한 주세도 단계별로 낮춰줄 예정이다.
 
반면 종가세에 묶여 있는 한국 대기업 맥주 회사들은 가장 저렴한 원가로 만들 수 있는 ‘페일 라거’ 스타일만 고수하고 있다. 좋은 재료를 많이 넣어 맛있게 만들수록 세금이 높아져 가격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맥주의 주세는 출고가의 72%고 여기에 교육세(주세의 30%), 부가가치세(주세와 교육세를 합한 것의 10%)가 더 붙는다. 세율이 워낙 높기 때문에 원가가 조금만 높아져도 부담이 확 커진다. 한국의 수제 맥주 가격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라이트는 주세법상 맥주 아냐
필라이트는 주세법상 맥주가 아니다. 맥아의 비중이 낮은 '기타 주류'로 분류돼 주세율이 30%로 뚝 떨어진다. [사진 하이트진로]

필라이트는 주세법상 맥주가 아니다. 맥아의 비중이 낮은 '기타 주류'로 분류돼 주세율이 30%로 뚝 떨어진다. [사진 하이트진로]

 
그렇다면 필라이트는 어떻게 355mL 12캔에 1만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을까. 현재 시점 국내 생산 제품 중 유일하게 수입 맥주보다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필라이트는 주세법상 맥주가 아니다. 주세법에 정의된 맥주보다 맥아의 비중이 낮은 ‘기타 주류’로 분류돼 주세율이 30%로 뚝 떨어진다.
 
지난 11월 맥주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맥주 1L당 835원) 종량세가 반영된 주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통과에 실패했다. 주세법 개정은 내년 4월 정기국회를 기약하게 됐다.
 
종량세로 개정되면 수입 맥주 가격이 상승한다는 일부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한국수제 맥주협회의 시뮬레이션 결과 수입 맥주에도 유리하다. 종량세 시대가 열려 마트에서 싸고 맛있는 한국 맥주를 자신 있게 집어 들고 싶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jhhwang@bepla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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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혜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필진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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