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이 들면 더 아프다

중앙일보 2018.12.06 11:00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26)
노인 관련 사업과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은 모두 '비노인'이다. 따라서 잘못하면 이상적이고 현실과 다소 거리가 먼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노인 관련 사업과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은 모두 '비노인'이다. 따라서 잘못하면 이상적이고 현실과 다소 거리가 먼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는 가수 서유석 씨가 2015년 작곡한 노래다. 서유석 씨는 1945년생으로 만 70세 때 이 곡을 발표했다. 고희를 넘긴 서유석 씨의 노랫말은 노년 시니어의 공감을 샀다. 노래 가사는 유쾌하면서 자못 비장하기도 하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놀려대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도 배우고 인터넷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나 볼 거야.”
 
서유석 씨는 1983년 김광정 씨가 만든 ‘가는 세월’이라는 노래를 불러 크게 유행시켰다.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나요”로 시작해 “이내 몸이 늙어가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라는 서정적인 후렴구로 마무리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서정적인 가사 말의 노래를 불렀을 때 그는 아직 젊음이 한창인 38세였다.
 
그 이후로 32년이 지나 ‘이내 몸이 늙어가도’의 노랫말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이내 몸이 늙었다’는 현재시제로 이야기하는 70대가 됐다. 그때 작곡해 부른 노래가 바로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다. 두 노랫말을 비교해 보면 38세의 젊은 서유석 씨 보다 70세의 나이든 서유석 씨의 노랫말이 훨씬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시하고 있다.
 
노인 관련 사업과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은 모두 은퇴 이전이기에 ‘비노인(非老人)’이다. 그러다 보니 늙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은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따라서 잘못하면 젊은 서유석 씨가 부른 ‘이내 몸이 늙어가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노랫말에서 보여주듯 노인 문제에 대해 이상적이고 현실과 다소 거리가 먼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자기 본위의 함정에 빠진 노인 제품 개발자
어르신이 한 요양병원 재활치료실에서 로봇자동보행기를 이용해 보행훈련을 하고 있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송봉근 기자

어르신이 한 요양병원 재활치료실에서 로봇자동보행기를 이용해 보행훈련을 하고 있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송봉근 기자

 
몇 년 전 실버로봇을 개발하는 업체로부터 컨설팅 의뢰가 왔다. 젊고 능력 있는 연구개발자들이 실버로봇을 개발해 출시한 업체였다. 그런데 출시하는 제품마다 여지없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분석해 달라는 것이다. 분석결과 개발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자기본위적 생각’에 함정이 있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연구개발자라 하더라도 막상 노인이 돼 본 적이 없다 보니 정작 노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간과하고 기술적인 면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크기를 작게 해 개발한 노인 전용 콤팩트 리모컨이 있었다. 크기가 작다 보니 쉽게 눈에 안 띄어 집안 어디에 두었는지 한 번 잃어버리면 노인이 도통 찾을 수 없었다. 
 
최첨단 이동 보조 로봇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360도 제자리 회전에 온갖 기능이 다 들어가 있지만 안장을 최대로 낮추어도 노인성 관절경직으로 발을 바닥에서 10cm도 들 수 없는 노인은 안장 자체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노인에겐 리모컨은 기능보다 크기가 중요하며, 이동 보조 로봇이 첨단기능을 탑재하고 있어도 노인성 관절경직으로 탑승 자체를 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노인 주변의 가족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못한 것도 눈에 띄었다. 노인복지시설에 입소한 노인을 위해 태블릿 PC처럼 큰 스크린의 영상장비에 앱을 설치해 언제든지 손주들과 쉽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업도 있었다. 장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했지만 문제는 정겹게 대화할 손주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부모의 강요로 한두 번 조부모에게 마지못해 전화를 걸 뿐,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주 정겹게 대화하려 들지 않았다.


공감과 연민, 노인 정책의 출발점
노인의 날 한 양로원에서 봉사단원이 어르신의 발을 씻겨 드리고 있다. 노인복지문제의 해결은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뉴스1]

노인의 날 한 양로원에서 봉사단원이 어르신의 발을 씻겨 드리고 있다. 노인복지문제의 해결은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뉴스1]

 
노인복지관련 장비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현역으로 일해 아직 노인이 되어보지 않은 비노인이 노인복지를 위한 세부정책, 프로그램개발, 맞춤형 서비스 등을 수립하고자 할 때는 많은 고민이 따라야 한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간접경험을 통해 노인과 가족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지 않는다면 많은 정책이 탁상공론이 될 수도 있다.
 
노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공감과 연민마저 없다면 노인을 ‘돌보아 드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직업상 마주하게 되는 귀찮은 사람’ 정도로 바라보게 된다. 노인복지문제의 해결은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노인을 타인으로 보지 말고 ‘미래 나의 모습’으로 본다면 조금은 더 공감과 연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Justin.lee@spireresearch.com
 
관련기사
공유하기
이한세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대표 필진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 10여년 전 치매에 걸린 부친을 어디에 모셔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시기를 놓친 경험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지는 부모님이 어느날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때가 온다. 향후 똑같은 상황이 되는 베이비부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집 이외의 대안에는 무엇이 있고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부양, 돌봄에 관한 대안을 상황별로 소개해 독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