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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퍼스펙티브] 신남방정책, 환인도양 전역으로 확대하라

중앙일보 2018.12.06 00:02 종합 29면 지면보기
한국 외교의 진로
6·25 이래 한국 외교가 4강에 매달린 것은 불가피했다. 현재 진행 중인 남·북·미 비핵·평화협상의 결과에 상관없이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의 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한국이 전쟁 억지력을 충분히 갖추고, 북한 김정은이 미국의 가공할 전략 자산을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핵·미사일 대신 경제 세우기에 역점을 둬야 하는 국내적 상황에 몰린 결과다.

인도·아세안 포함한 신남방정책
풍요의 바다 인도양 외면하면
반쪽짜리 남방정책 될 수 있어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이
유라시아와 인도·태평양 포함한
방대한 원을 그리는 구상해야

환인도양은 매력 넘치는 초대장
뉴델리를 외교 허브로 만들어
획기적으로 외교 인력 강화해야

 
이제 한국 외교는 4강 일변도라는 기형적 외교의 족쇄를 풀고 외교 다변화의 정상적 외교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외교 다변화의 가장 중요한 첫 사례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인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이다. 상·하반신을 다 갖춰야 하는 인체처럼 신북방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신남방정책은 필수적이다.
 
아세안과 인도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경제적인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아세안 전체 인구는 6억4000만 명이고, 국내총생산(GDP)은 2조4000억 달러, 한국과의 무역액은 1188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인도 인구 13억5400만 명(25세 이하가 50%), GDP 2조5900억 달러를 고려하면 아세안+인도를 제외한 미래 한국의 번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신남방정책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인도에 국한된 것은 유감이다. 환인도양 전역으로 지평을 넓혀 인도·태평양 정책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 왜 환인도양인가.
 
환인도양은 세계의 전략 요충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환인도양의 연안 37개국과 그 주변국들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산다. 위도상으로 80도, 경도상으로 100도, 7개의 시간대에 걸쳐 있다.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인도양의 동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모잠비크·잔지바르·소말리아를 북상하여 예멘과 오만·사우디아라비아가 위치한 아라비아 반도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 환인도양의 서해안이다. 좁은 호르무즈 해협 너머의 페르시아만은 동쪽의 이란, 서쪽의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같은 석유 부국들이 위치하는 풍요의 지대다.
 
해적으로 유명한 아프리카 북동부의 소말리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이란 고원, 인도 아(亞)대륙(Indian Subcontinent)을 거쳐 인도네시아 군도에 이르는 방대한 환인도양은 풍부한 자원과 엄청난 인구를 가진 세계의 주요 소비시장이요 자원 수출국이다. 특히 이란·인도·인도네시아는 유라시아의 내륙부(Heartland)와 연안지역(Rimland)이 만나는 지점으로 그 지정·전략적(Geostrategic)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포르투갈과 프랑스·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인도양 지역으로 진출하기 전부터 환인도양은 역내 무역이 활발했다. 특히 오만의 이슬람 상인들은 활발한 해상 활동으로, 1957년까지도 한 때 소련이 탐내고 지금 중국이 거액을 투자하여 석유와 해군 기지로 개발 중인 파키스탄의 과다르를 지배했다.
 
환인도양은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기적인 단일체와 같다. 그 유기적 단일체에서 인도만 떼어 내 신남방정책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과 아라비아 상인, 인도양의 인도와 페르시아 상인들이 철 따라 부는 계절풍에 힘입어 인도양을 세계에서 가장 풍요한 바다로 만든 역사적인 사실을 외면하는 구상이다.
 
아랍 상인들은 장사하면서 이슬람교를 인도와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전파했다. 인도 상인들도 힌두교를 오늘의 미얀마와 인도차이나까지 전파했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묶어 인도차이나라고 불렀던 것도 베트남 남반부가 한때 힌두문명권에 속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또 사이공(오늘의 호찌민)과 안남 지방을 합쳐 코친차이나라고 불렀다. ‘코친’은 인도 남부의 도시 이름이다. 김수로왕의 비 허황후가 인도 중부 아유타 왕국의 공주였음을 생각하면 힌두교의 왕성한 전파력을 알 수 있다. 벵골만을 사이에 두고 인도와 마주 보는 미얀마와 인도양의 최남단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는 에너지 부국에다 전략적 요충이다.
 
한·중·일의 생명줄 믈라카 해협
 
21세기의 인도·태평양은 유라시아 내륙부와 연안부의 경제적·군사적 제휴·협력과 대결을 되풀이하는 역동적인 무대가 되어 있다. 지역 파워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을 서태평양에서 밀어내는데 군사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인도가 균형자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믈라카 해협을 21세기의 풀다 회랑(Fulda Gap)이라고 부른다. 풀다 회랑은 독일 헤센과 튀링겐 주 경계선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의 지역이다. 거기 두 개의 저지대가 있어 냉전 시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탱크 부대가 기습 공격으로 큰 저항을 받지 않고 라인강까지 진격하여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가설에서다. 21세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믈라카 해협에서 전선이 열린다는 의미다.
 
믈라카 해협은 한국·중국·일본 경제의 생명줄이다. 해협은 길이 800㎞, 폭 320㎞인데, 싱가포르 앞 가장 좁고 항로의 체증이 심한 데는 폭이 18㎞에 불과하다. 2020년까지 에너지 물동량의 50%가 이 해협을 지나니 초전략적인 해협으로 아시아의 풀다 회랑이라고 부를 만하다.
 
중국은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파키스탄 과다르항~파스니항~스리랑카 남부 해안의 함반토타항~방글라데시 벵골만의 치타공항~미얀마의 벵골만 코코섬과 시트웨항에 에너지 저장기지와 해군의 감시·정찰기지를 건설했거나 건설 중이다. 중동산 원유를 믈라카 해협을 피하여 육로로 중국 서부지역으로 직송하는 전략이다.
 
긴 시야에서 주목할 대상은 아프가니스탄이다. 중국은 최서단 지역을 아프가니스탄 카불 남쪽 구리 산지와 연결하는 철도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통과하는 난공사이지만 중국 특유의 ‘뚝심’과 전략적 필요성에서 포기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중국과 인도의 러브콜 받는 아프간
 
인도도 야심적인 프로젝트로 대항한다. 인도는 이란의 차바하르항과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님루즈(Nimruz) 주를 연결하는 새 도로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이란과 에너지 하이웨이로 연결되면 정세가 아프가니스탄 못지않게 불안한 파키스탄을 비켜 바다로 나갈 수 있다.
 
이 하이웨이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페르시아만으로 직송할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 연안의 천연가스들도 이 길을 따라 인도양의 페르시아만으로 수송된다. 중앙아시아와 인도 아대륙을 잇는 대부분의 송유관이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도, 지금은 복잡한 내전에 휘말린 이 나라의 압도적인 전략적 중요성을 웅변한다. 소련이 79년부터 89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점령한 것도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의 에너지를 페르시아만으로 수출할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이 ‘제국의 무덤’이라는 알렉산더 대왕 이래의 역사적 교훈을 무시하다 체제 붕괴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인도는 이란의 차바하르항 개발에 투자하고 2005년 이란으로부터 25년간 연간 75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수십억 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의 이란 고립 정책에 뚫린 큰 구멍이다. 인도는 군사적으로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와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추가하여 항공모함·잠수함·이지스함으로 인도양과 서태평양에 걸친 2대양 해군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은 인도의 가세로 미국과 중국과 함께 세 강대국의 2대양 해군 전략의 무대가 됐다. 그러나 인도는 초대 총리 네루 이래 비동맹 전통에 따라 미국이나 중국 한쪽의 명시적인 동맹이 될 생각은 없다.
 
환인도양 외교에 총력 기울여야
 
한국의 신남방정책에 환인도양 연안 국가들, 특히 그 동서부 연안 지역이 포함되면 한반도에서 육로로 북상한 신북방정책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이란 에너지 하이웨이를 따라 내려가 페르시아만에서 신남방정책과 만나게 된다. 두 정책의 시너지가 정점을 찍을 지점이다. 신남방정책이 인도에서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과 인도·태평양 연안국 전체를 끌어들인 방대한 원을 그려야 한다.
 
중국과 인도는 2대양 해군을 지향하지만,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작다. 인도는 믈라카해협 입구 가까이에 27개 섬으로 구성된 안다만~니코바르 군도에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감시하는 초소와 최신예 해군기지를 설치했다. 중국은 인도의 배후를 노려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경제·군사 병용으로 개발을 서두르고, 동부 아프리카 아덴만 인근 지부티(Djibouti)에 중국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중국이 벵골만을 전략적으로 중요시하는 것도 중동산 석유 수입의 믈라카 해협 의존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중국과 인도의 상호 억지력이 전쟁의 가능성을 제로에 접근시킨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공격적·호전적 전략을 추진할수록 아세안이 하나의 힘으로 견제할 동기를 부여한다. 결국 아세안과 환인도양 연안 지역은 2030년을 고비로 군사보다는 경제에서 그 역동성을 발휘할 것이다. 북한·파키스탄, 북한·이란의 미사일 커넥션도 포괄적인 신남방정책으로만 끊을 수 있다.
 
환인도양은 한국의 신남방정책에 매력 넘치는 초대장이다.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이 환인도양에서 만날 때 비로소 남북으로 전개된 두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공짜 외교는 없다. 인도의 뉴델리를 환인도양 외교의 허브로 만들고, 이 지역의 외교 인력을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강화해야 한다.
 
김영희 전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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