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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전직 대통령의 삭발…대중은 이런 부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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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89세 전직 대통령의 삭발…대중은 이런 부시에 빠졌다

중앙일보 2018.12.05 17:30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조지 H W 부시 미국 41대 대통령이 5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국장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시는 94년 5개월 19일의 삶은 살면서 무엇을 남겼을까.  

부시는 분명 4년간 대통령, 8년간 부통령을 각각 지내며 91년 소련 붕괴로 냉전 시대를 마무리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쿠웨이트를 무단으로 침공한 사담 후세인에 대항하기 위해 다국적군을 건설하고 90~91년 이라크전을 벌여 완벽하게 승리한 대통령으로도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여기까지는 세계 최강의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공적인 업적이다.  
 
'배려의 삶'이 최고의 유산 
개인 부시는 인간적인 교훈도 숱하게 남겼다. 인간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삶을 살았다. 부시의 유산 중 앞으로 가장 오랫동안 남을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이러한 ‘배려의 삶’을 꼽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본인 명의로 냈지만, 부시는 솔선수범으로 ‘배려의 가치’를 우리에게 확인시켰다. 부시가 걸어왔던 배려의 길을 살펴본다.  
2013년 7월 당시 89세의 부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삭발하고 나타났다.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경호원의 아들 패트릭(당시 2살)에게 용기를 주려고 경호원들이 삭발을 하자 본인도 자진헤서 동참했다. [사진 트위터]

2013년 7월 당시 89세의 부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삭발하고 나타났다.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경호원의 아들 패트릭(당시 2살)에게 용기를 주려고 경호원들이 삭발을 하자 본인도 자진헤서 동참했다. [사진 트위터]

 
89세의 전직 대통령의 삭발
인간 부시의 매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삭발 사건’이다. 2013년 7월 당시 89세의 부시는 갑자기 삭발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일부러 삭발한 것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경호원의 아들로 당시 만 두 살이던 패트릭이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을 잃은 것이 계기였다. 패트릭 아버지의 동료들이 아이에게 용기를 주려고 집단으로 동조 삭발을 했다. 그러자 이들과 늘 함께 지내던 부시 대통령이 자신도 삭발한 것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미국 백악관 비밀경호실 직원들의 경호를 받는다. 따라서 경호원들은 국가공무원이다. 부시는 이들에게 경호를 받는 전직 대통령을 넘어 늘 함께 지내는 동료로 다가간 셈이다. 삭발은 이럴 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부시의 표정은 밝고 해맑기까지 했다.  
2013년 7월 당시 89세의 부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삭발하고 나타났다.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경호원의 아들 패트릭(당시 2살)에게 용기를 주려고 경호원들이 삭발을 하자 본인도 자진헤서 동참했다. [사진 트위터]

2013년 7월 당시 89세의 부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삭발하고 나타났다.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경호원의 아들 패트릭(당시 2살)에게 용기를 주려고 경호원들이 삭발을 하자 본인도 자진헤서 동참했다. [사진 트위터]

당시 이런 사연과 사진은 ‘패트릭의 친구들(www.patrickspals.org)’이란 홈페이지에 실리면서 외부에 공개됐다. 패트릭에게 용기를 주고 모금으로 그를 돕던 사이트다. 당시 부시가 패트릭과 둘이서, 패트릭과 삭발한 모든 경호원과 함께 찍은 사진도 실렸는데 부시의 공보 담당이던 짐 맥그레스가 트위터(@jgm41)를 통해 널리 알렸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인 면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을 목격한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41이란 숫자로 불린 조지 H W 부시  
이를 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41, 보기 좋아요. 당신이 한 일을 사랑합니다”라는 존경의 트윗을 올렸다. 41은 41대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를 가리킨다. 클린턴의 트윗은 다시 한번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소속 정당이 다른 것은 물론 대선에서 서로 맞붙기까지 했던 클린턴이 부시를 이렇게 칭찬한 것도, '41'이라고 격의 없이 부른 것도 화제를 불렀다. 부시의 삭발과 클린턴의 트윗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전 세계에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왼쪽 사진은 2013년 7월 삭발한 부시가 백혈병 치료 중인 경호원 아들 패트릭을 무릎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은 부시(가운데)가 장녀 로빈(오른쪽)을 무릎에 안은고 있는 장면이다. 부시는 만 4살 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로빈을 평생 그리워했다. 부시 뒷쪽에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서있다. [사진 트위터]

왼쪽 사진은 2013년 7월 삭발한 부시가 백혈병 치료 중인 경호원 아들 패트릭을 무릎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은 부시(가운데)가 장녀 로빈(오른쪽)을 무릎에 안은고 있는 장면이다. 부시는 만 4살 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로빈을 평생 그리워했다. 부시 뒷쪽에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서있다. [사진 트위터]

부시는 49년 태어난 장녀 로빈을 53년 백혈병으로 잃었다. 46년생인 조지 W 부시 43대 대통령에 이어 둘째로 얻은 자녀였다.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부시의 부인 바버라는 생전에 “로빈의 짧은 삶이 우리 부부가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끈 것 같다”며 “남편이 종종 ‘세상을 떠나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이 로빈’이라는 말을 한다”라고 말했다.  
  
경호원들이 텍사스에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CNN화면 캡처]

경호원들이 텍사스에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CNN화면 캡처]

 
경호원들 가족과 지내라고 명절 두문불출
CNN방송에 따르면 부시의 경호원에 대한 배려는 각별했다. 부시는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미국의 전통적인 명절에는 아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경호원들의 업무를 줄여 그 시기에 한 명이라도 더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움직이면 경호원들도 따라서 출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 경호원 교황 만나게  
부시는 재임 중 89년 5월 27일과 91년 11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바티칸을 방문해 다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다. 당시 그는 경호원 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는지를 확인해 교황을 만나는 자리에 반드시 대동했다. 특히 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근접 경호를 맡겨 교황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교황에게 이들을 소개하고 인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난해  5월 24일 바티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때 자리 부족을 이유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을 빼고 자신의 가족과 주요 측근만 만났다는 보도가 떠오른다.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의 존경 받아 
모든 전·현직 대통령은 가까이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을 보호하는 비밀경호실 요원들에게 각별한 태도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시는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경호원들과 격의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부시의 경호원들은 텍사스에서 워싱턴으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관을 운구하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존경심이 묻어나 보였다. 부시는 경호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했으며, 경호원들은 그를 사랑했다. ‘경호원들’을 ‘미국 국민’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정적인 비판도 당연히 존재
물론 부시도 다른 모든 인간처럼 장단점이 모두 있기는 마찬가지다. 별세 직후 미국 인터넷 매체인 디인터셉트를 비롯한 일부 미디어에서 그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한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부시에 대한 불편한 진실’ 등의 제목으로 그가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대통령 시절 전쟁 범죄, 인종주의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비판할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시의 인간적인 매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평생 보여준 인간적이고 소탈하며 사람을 존중하는 ‘배려의 길’이 그가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배려의 길'로 만인의 친구가 되다
사실 부시는 돈·권력·학력·명예 모두를 거머쥔 드문 인물이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권력 최정상까지 올랐다. 장남 조지 W 부시는 43대 대통령, 차남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를 각각 지냈다. 민주국가이자 공화국이며 신분제가 없는 국가 미국의 ‘귀족 중의 귀족’이다. 그런 부시를 미국 국민이 ‘높은 자리에 군림한 나으리’가 아니고 ‘우리 곁의 친구’로 여기며 추모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배려의 길’ 때문일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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