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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갔다오니 사라진 버스, 터키서 미아가 되다

중앙일보 2018.12.05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10)
사프란볼루(Safranbolu)는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420km가량 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오스만튀르크 도시이다.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된 향신료 사프란이 지역명에 들어갈 정도로 사프란이 많이 난 부유한 도시였고 캬라반 교역의 중심지였다. [사진 박재희]

사프란볼루(Safranbolu)는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420km가량 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오스만튀르크 도시이다.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된 향신료 사프란이 지역명에 들어갈 정도로 사프란이 많이 난 부유한 도시였고 캬라반 교역의 중심지였다. [사진 박재희]

 
‘안돼! 왜 하필 이 할머니야?’
 
오토갈(터키의 버스터미널)에서 봤던 바로 그분이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던 사람. 할머니는 당신의 차도르 자락으로 대합실 바닥 온 사방을 쓸고 다니다가 갑자기 내게로 돌진해왔다. 우뚝 솟은 배를 내 얼굴에, 흘러내린 옷가지로 내 무릎을 덮고 서서 대합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어쩌구 저쩌구 알라 알라아아아~” 
 
하필 내가 앉은 벽 뒤에 시계가 걸려있었는데 할머니는 1분 간격으로 돌진해 와서 시간을 확인했다. 할머니를 피해 최대한 몸을 쪼그려봤지만 그는 당장 인공호흡이 필요한 사람처럼 ‘하~흡~하~후~’ 몰아쉬던 밭고 가쁜 숨을 내 정수리로 쏟아부었다.
 
할머니로부터 도망쳐 시원한 대합실 의자를 포기하고 밖에서 버스를 기다렸었다. 바로 그 할머니가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이스탄불에서 사프란볼루까지 여섯 시간이 넘는 기나긴 버스 여행의 동석자가 하필이면 그이다.
 
“정말 짜증 나요. 제발 저를 그렇게 치지 마세요.”
사프란볼루 도시는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 문화유산이다. 선사시대 이래 11세기의  튀르크 족, 13세기 동서 교역에 중심지로서 모스크와 목욕탕, 모스크 등 초기 건물을 포함해 17세기 전성기의 유산도 잘 보전되어 있다. [사진 박재희]

사프란볼루 도시는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 문화유산이다. 선사시대 이래 11세기의 튀르크 족, 13세기 동서 교역에 중심지로서 모스크와 목욕탕, 모스크 등 초기 건물을 포함해 17세기 전성기의 유산도 잘 보전되어 있다. [사진 박재희]

 
상냥한 표정 가면을 쓰고 한국말로 속마음을 털었다. 소심한 화풀이를 시작한 것은 한참 당한 후였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시작된 할머니의 공격 혹은 구애는 집요했다. 할머니는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앉아 듣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쩌구 저쩌구 알라 알라아”
 
“벤 툭체 빌묘름(저는 터키말을 하지 못합니다.)”
 
나도 똑같이 외워둔 말을 반복하며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운 듯 양쪽 눈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가 두 번째로 택한 방법은 찌르기였다. 말 그대로 팔꿈치 공격.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마다 툭툭 잽을 던지며 눈을 깜박거렸다.
 
‘멋있지?’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 할머니는 자기 나라 풍경에 새삼 감동하는 듯했다. 문제는 이 팔꿈치 찌르기가 1분 간격이라는 것이다. 내가 책을 펼치거나 창에서 고개를 거둘라치면 어김없이 태클이 들어왔다. ‘저거 봐야지 뭐해’라는 듯 턱으로 밖을 가리키며 풍경을 보라고 보챘다.
 
사프란볼루는 전통 가옥과 관광지가 집중된 구시가지와 숙소가 모여있는 신 시장 예니 차르쉬는 언덕을 지나 20분 가량 걸어야 하기 때문에 주로 마을 버스를 이용한다. 좁은 도로를 구불구불 지나는 버스가 여행의 묘미를 선사한다. [사진 박재희]

사프란볼루는 전통 가옥과 관광지가 집중된 구시가지와 숙소가 모여있는 신 시장 예니 차르쉬는 언덕을 지나 20분 가량 걸어야 하기 때문에 주로 마을 버스를 이용한다. 좁은 도로를 구불구불 지나는 버스가 여행의 묘미를 선사한다. [사진 박재희]

 
그때 내 기분을 한마디로 하자면 ‘망했다!’ 되시겠다. 고요히 펼쳐질 예닐곱 시간을 고대했는데 엄청난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어떤 거부 반응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터키 할머니 말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육로 여행, 철기 문명의 나라 히타이트를 상상하며 터키의 땅을 지나고 싶었던 바람이 폭염 아래 아지랑이가 되고 있었다.
 
응대하기도 너무 성가셔 자는 척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커피색 땅을 뒤덮은 해바라기 벌판, 꿈꾸던 장관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할머니 때문에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제 여행을 할머니가 완전히 망치시는군요!”
 
착한 표정을 입에 물고 독한 소리를 하면서 할머니의 손을 떼어냈다.
 
“오늘 왜 이리 운이 나쁜지. 하필 할머니 옆자리에 앉았네요.” 
사프란볼루는 카라반 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수 세기에 걸쳐 동양과 유럽을 상업적으로 연결했고 개성있는 형태로 바자르가 번성했다. [사진 박재희]

사프란볼루는 카라반 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수 세기에 걸쳐 동양과 유럽을 상업적으로 연결했고 개성있는 형태로 바자르가 번성했다. [사진 박재희]

 
한국말을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 할 수 없을 못된 말과 함께 억지 친절 미소를 짓는 나를 누가 봤다면 정신 이상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름의 노력이었다. 할머니의 1분 공세를 견디며, 버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고, 그러니까 온전한 정신으로 무사히 사프란볼루까지 가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해두자.
 
웬만한 찌르기에는 반응을 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리라 결심했는데 어느 순간 할머니가 체중을 실어 내 어깨를 눌렀다. 푸르륵~ 새 날아가는 소리를 내시더니 목젖을 울리며 우렁찬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살았다! 타자의 코 고는 소리에 그렇게 깊고 평화로운 자유를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사프란볼루에서 토카틀리 협곡(Tokatli Kanyonu)으로 트래킹을 떠나 볼 수 있다. 청정공기를 마시며 협곡을 걷고 수도교를 따라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사진 박재희]

사프란볼루에서 토카틀리 협곡(Tokatli Kanyonu)으로 트래킹을 떠나 볼 수 있다. 청정공기를 마시며 협곡을 걷고 수도교를 따라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사진 박재희]

 
아무래도 커피가 문제였을까? 방광의 압박이 점점 심해져 참을 수 없었다. 손바닥 실금마다 땀이 맺히고 부드러운 버스 진동에도 고통스러웠다. 앞자리 의자를 잡고 엉덩이를 의자에서 뗀 채 사지의 근력으로 한참을 버틴 후였다.
 
한 번 휴게소에서 쉰다고 했는데 이미 세 시간이 지났다. 참다 참다 한계에 와서 결국 투 발렛~을 외치려는데(투 발렛(tuvalet) : 터키어로 화장실) 거짓말처럼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휴게소로 진입했다.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달려나가 버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용수철처럼 튀어 내렸다.
 
버스 내린 곳 맞은편 건물 맨 끝, 구석진 곳이 화장실이었다. 한 걸음이 힘든 상황인데 무슨 화장실을 이렇게 구석에 둔 것인지… 여하튼 겨우 찾아 1리라를 건네고(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듯 터키도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다) 마침내 평화를 얻었다.
 
손을 씻고 물을 털며 나와 3초가 지나기 전까지 나는 거기가 휴게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꿈에서도 하지 못했다. 나와보니 휴게소, 그러니까 내가 휴게소라고 생각했던 사카리야(Sakarya) 마을 터미널 도로는 텅 비어있었다. 버스는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차도르를 입고 아이들과 산책중인 여인. 차도르는 얼굴을 모두 노출하지만 전신을 가린다. 머리부분을 가리는 용도로는 스카프 형태의 히잡과 얼굴을 모두 가리고 눈만 내놓는 니캅이 있고 전신을 모두 가리고 눈마저 망사천으로 가리는 부르카와 구별된다. [사진 박재희]

차도르를 입고 아이들과 산책중인 여인. 차도르는 얼굴을 모두 노출하지만 전신을 가린다. 머리부분을 가리는 용도로는 스카프 형태의 히잡과 얼굴을 모두 가리고 눈만 내놓는 니캅이 있고 전신을 모두 가리고 눈마저 망사천으로 가리는 부르카와 구별된다. [사진 박재희]

 
믿기지 않았지만 버스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주유를 하는 걸까? 제발 그러기를 바라며 방향 없이 뛰면서 헤맸다. 허전한 공간 어디에도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꿈을 꾸듯 멍한 상태에서 습관처럼 주머니로 손을 넣어보았는데 휴대폰도 없다.
 
급히 튀어나오느라 화장실 요금 말고는 챙긴 것이 없었다. 지갑과 여권은 가방에 들어가 선반에 있을 테고 휴대폰은 여행 노트, 태블릿, 책과 함께 앞자리 그물에 담겨있을 것이다. 이를 어쩐다.
 
내가 아는 터키말이라고는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이것은 얼마입니까’ 정도이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터키말을 하지 못합니다’ 같은 말은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차라리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버스를 놓쳤습니다’와 같은 말을 외워둬야 했던 게 아닌가.
 
터키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신분증도 휴대폰도 없이 터키의 외진 시골 마을에 팽개쳐진 것이다. 그제야 오늘 아침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받았던 문자가 기억났다.
 
「터키 동부는 IS 출몰이 잦은 여행 위험지역입니다. 타지역으로의 여행을 자제하시고 사고 시에는 외교부로 연락 바랍니다. 전화번호 0000」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외교부 전화번호는 기억날 리가 없다. 사고 시에 전화하라니. 전화할 수 있다면 그게 사고란 말인가? 망연자실한 절망이 끈적끈적하게 시멘트 바닥을 녹이고 있었고 내 의식은 점점 또렷해졌다. 믿기지 않지만 꼼짝없이 국제 미아 신세였다. (계속)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jaehee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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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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