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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우리만 못 하는 혁신 성장, 우리만 하겠다는 소득주도 성장

중앙일보 2018.12.05 00:21 종합 31면 지면보기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소득주도 성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혁신 성장 역시 기를 펴지 못하는 기색이다. 기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구호가 박근혜 시절 ‘창조경제’ 와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 있었다. 하나 적어도 정권의 추진 의지만큼은 가늠할만한 잣대가 있었다. 바로 공유경제다. 구(舊)산업과 신(新)산업의 갈등이 가장 첨예한 싸움터가 차량 공유, 그중에서도 승차공유(카풀) 아닌가 싶다. 친환경·자율주행·인공지능·빅데이터 같은 첨단기술이 각개약진하다가 융복합에 다가선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가 미래 4차산업혁명의 총아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혁신성장은 첫 단추 공유경제부터 막혀 1년째 게 걸음
외국 공조 없으면 우리만 고달픈 소득주도 성장은 고집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지난해 말 첫 정책과제로 내세운 것이 승차공유였다. 하지만 택시업계 반발에 밀려 한 해 동안 논의다운 논의도 해보지 못했다. 25만명 택시기사와 가족 100만명의 생계라는 명분 앞에 카카오 카풀 서비스는 꼼짝없이 묶여 있다. 벤처 사업가 출신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최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모임에서 “우리도 뛰지만,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은 날고 있다”고 탄식했다. 블록체인·핀테크·바이오·헬스케어 같은 미래 먹거리들도 뛰는지 걷는지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카풀업체에 50억원 투자했다가 “현대차 불매운동 벌이겠다”는 택시업계 으름장에 지분을 서둘러 되팔았다. 동남아 등지의 카풀업체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혁신해 성장하겠다는 정부라면 치열한 맛이 있어야 한다. 낡은 제도 뜯어고치고 구산업·신산업 간 갈등, 혁신과 생계의 불화를 녹이는 일부터 팔걷고 나서야 마땅하다. 카풀을 허용하되 택시요금을 자율화해 주는 규제 완화의 주고받기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보이는 건 택시와 승객 눈치 보기에 급급한 당국이다. “미래는 생각보다 가깝다. 혁신이 불편해도 결국 혁신 당한다.” 다음 포털을 만든 벤처창업 1세대 이재웅 소카 대표가 최근 기획재정부 혁신성장 민간본부장 자격으로 던진 공개 경고다.
 
다른 나라들은 ‘날고 있는’ 혁신성장이 갈지자걸음인 반면, 아무도 안 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밀어붙이려고 안간힘이다. 몇달 전부터 부쩍 ‘포용적 성장’ 이란 말로 갈아타긴 했지만 문재인 표 J노믹스의 상징 ‘소득주도’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지갑 채워주면 경제가 성장한다, 사람 중심 경제, 다 함께 잘사는 나라 만들자는 구호, 얼마나 설레는가. 하지만 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시장의 보복, 가격의 역습이 뒤따른다.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지고 수출 산업에 주름살을 준다. 특히 한국 같은 개방경제에선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일자리는 되레 줄어들고 당초 정책의 선의는 온데간데없어진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국제기후협약처럼 소득주도 성장 협약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임금을 올리겠다고 정부가 약속하는 나라가 있을까.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가 못 견디고 떠난 미국 우버, 무섭게 뜨는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 그랩 같은 차량 공유 업체들이 10년 뒤 한국에 들어와 스마트 모밀리티 플랫폼의 식민지를 건설할지 모른다. 2030년이면 국내 택시의 상당 수가 자율주행차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지구촌 기업가치 10대 스타트업 중 4곳이 공유업체인데, 우리는 공유경제의 갈라파고스로 남으려 한다.
 
문 대통령이 최근 주요 20국(G20) 정상회담에서도 설파한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을 두 축으로 삼는다. 소득주도 성장은 고위험 정책에 대한 벤처투자인 셈이다. 정작 모험투자여야 할 혁신성장 정책엔 정부의 투자 의지가 의심스럽다. 되레 이 두 정책이 최빈국 북한에나 맞을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역설은 대한민국 포용적 성장의 순탄치 않은 길을 예견하는 듯하다.
 
“(산업의 기득권이 없는) 북한은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하는 첫 국가가 될 수 있다.”(유발 하라리)
 
“핵 개발에 들어갈 돈을 주민에게 돌린다면 북한은 소득주도 성장의 첫 성공국가가 될 수 있다.”(김병연 서울대 교수)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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