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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내년 요양병원 퇴원 대혼돈…노인 3만명 갈 곳 마땅찮다

중앙일보 2018.12.05 00:17 종합 33면 지면보기
송봉근 기자.

송봉근 기자.

전병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주임과장

전병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주임과장

전국의 요양병원에서 환자 퇴원을 놓고 적잖은 혼선이 지금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보건복지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침대와 침대 사이를 1m 이상 띄우도록 의료법을 강화했다. 이유는 누군가 감기가 들어 기침하면 침이 튀는 거리가 그러하니 최소 1m 이상은 돼야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침대 간격 1m 이상 유지하도록
의료법 강화해 병상 많이 줄어
약 3만 명 연말까지 퇴원 추산
현장 고려한 의료정책 필요해

입원환자가 치료하는 공간이 넓어질수록 더 쾌적하고 안전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바람직한 의료정책이고 사전에 고지했기에 행정 절차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실제로 2016년 7월 의료법시행규칙 개정안이 공포됐고, 신설 요양병원에 대해 2017년 2월 3일자로 시행하도록 했으며, 기존 요양병원은 2018년 12월 31일까지 유예기간을 두도록 했다.
 
그런데 정책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에게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침대 간격을 더 띄우게 되면 병원마다 허가 병상, 즉 침대 수를 줄여야 한다. 200병상 규모의 요양병원은 대부분 160~170병상 규모로 축소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입원환자를 요양원이나 집으로 보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산·울산 지역의 경우 병원마다 약 30~40명의 환자를 연말까지는 퇴원하도록 준비를 해 왔다. 하지만 막상 퇴원이 임박해지자 환자나 가족들은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어 현장에서는 적잖은 혼란을 겪고 있다.
 
전국에는 약 1500개 요양병원이 있다. 요양병원마다 병상이 줄게 되면 전국적으로 약 3만 명은 퇴원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에 절반은 의료진이 상주하지 않는 요양원으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환자들은 부득이 집으로 모셔야 한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요양원 사정은 어떤가. 전국에 약 5000개의 요양원이 있다. 이런 사정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요양원은 올해 들어 수용시설을 늘리거나 신설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하지만 정작 환자를 돌봐야 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요양보호사가 모자라 더는 수용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수용시설을 갖췄다 하더라도 요양원에서 근무를 원하는 요양보호사가 없으면 환자를 수용할 수가 없는 딱한 실정이다.
 
시론 12/05

시론 12/05

각 가정의 형편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자녀들은 치매에 걸린 부모가 대소변을 가지리 못하고, 자식에게 갑자기 욕설을 퍼붓는 등 이상행동을 계속해 할 수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켜왔다. 그런데 이젠 다시 집으로 모셔야 할 상황이다. 또한 ‘사회적 입원 환자’들도 앞으로는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치매, 공격적 이상 행동을 하는 환자, 전신 쇠약 등으로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말한다.
 
결국 병든 부모를 24시간 가정에서 수발해야 하니 자식들은 그나마 얻은 일자리도 그만둬야 하고 부부간에 새로운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저런 사정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던 환자는 이제 퇴원해 의사·간호사가 없는 요양원에 수용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정서적으로 시설 등에 수용되기를 꺼리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래서 일부 환자나 가족들은 퇴원을 거부하는 황망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치매에 걸렸거나 노환을 앓고 있는 부모와 형제를 더는 모실 수가 없게 됐다. 곧 한파가 닥쳐오는데 상당수 환자가 큰 불편이 우려된다.
 
수면 아래에서 쉬쉬해오던 문제가 지금 백일하에 드러나 대혼란을 맞이하고 있다. 선의로 개정된 의료법이 막상 시행되려는 시점에 일선에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병상 간격을 넓혀 감염을 예방한다거나, 사회적 입원 환자를 퇴원시켜 국가 경상 의료비를 줄이려는 정책 의지는 이해할 수 있다. 또 내년부터 요양병원에서 환자가 퇴원하면 지역사회가 다 함께 돌보는 정책 즉, ‘커뮤니티 케어’가 시행된다. 이 역시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거친 정책이지만 지역사회의 현실을 고려해 현장을 존중하고 그분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선진 보건의료정책이라도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 있다. 요양 병상이 줄면 고용 감소도 유발된다. 간호사·간호조무사·간병인·조리원 등 상당수 직원이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고용창출로 고민하는 문재인 정부의 시책에 역행하는 점이 없지 않다.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요양병원에는 충분히 고지됐지만, 환자들 입장에서는 홍보와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유예기간을 다소 연장해 환자와 가족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부득이하게 급박한 실직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
 
전병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주임과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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