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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날두’ 10년 제국 무너뜨린 유고 난민 모드리치

중앙일보 2018.12.05 00:02 경제 6면 지면보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 트로피에 입 맞추는 모드리치. 체격이 왜소한 단점을 날카로운 패스와 강한 체력, 정확한 판단력으로 극복한 그는 FIFA 올해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에 이어 3관왕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 트로피에 입 맞추는 모드리치. 체격이 왜소한 단점을 날카로운 패스와 강한 체력, 정확한 판단력으로 극복한 그는 FIFA 올해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에 이어 3관왕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33·크로아티아)는 몸담았던 거의 모든 팀에서 가장 왜소했다. 키 1m72㎝에 몸무게 66㎏, 푹 꺼진 두 뺨과 비쩍 마른 팔다리는 ‘훅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서면 눈빛이 달라졌다. 덩치 큰 선수들 사이로 한 발 먼저, 한 발 더 뛰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창의적인 플레이로 ‘발칸의 크루이프’라는 영광스런 별명도 얻었다.
 

프랑스 풋볼 ‘발롱도르’ 수상
2위 호날두, 3위 그리즈만 물리쳐
소속팀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크로아티아 월드컵 준우승 이끌어
“힘들 때마다 노력으로 이겨냈다”

프랑스 축구전문지 ‘프랑스 풋볼’이 4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발롱도르(Ballon d ’Or) 2018’ 시상식은 모드리치의 대관식이었다. 전 세계 193개국 축구기자 투표로 선정하는 발롱도르에서 모드리치는 753점을 받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포르투갈·478점), 앙투안 그리즈만(27·프랑스·414점)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우뚝 섰다.
 
서른 살을 훌쩍 넘겨 비로소 ‘최고 축구선수’로 인정받은 모드리치는 “어린 시절 그라운드에 서면, 양 팀 합쳐 항상 내가 가장 작고 약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체격을 키울 때 나는 실력을 키웠다”며 “최고 순간은 절대 쉽게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드리치의 수상으로,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31·아르헨티나)가 2008년 이후 이끌어왔던 이른바 ‘메날두(메시+호날두) 천하’는 10년 만에 막을 내렸다. 2008년 호날두의 발롱도르 수상을 시작으로 두 선수는 5차례씩 수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올해 호날두는 2위, 메시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메시가 발롱도르 투표 최종 3인에 들지 못한 건 2007년 이후 11년 만이다. 모두 클럽팀에선 높은 성과를 거뒀지만,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게 두 선수 순위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모드리치는 소속 클럽팀과 대표팀에서 고르게 활약했다. 지난 5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올려놓았는데, 대회 3연패의 위업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는 크로아티아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선수상 모두 모드리치가 가져갔다.
 
모드리치는 전쟁과 이로 인한 가난, 배고픔을 이겨낸 난민 출신이다. 난민 소년의 ‘인생 역전’ 스토리가 이번 발롱도르 수상이 주는 감동의 원천이다. 모드리치와 그의 가족은 1991년 조국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직후, 들이닥친 세르비아 민병대 총탄에 할아버지와 친척을 잃었다. 집이 불타버린 뒤 수년간 국경 근처의 싸구려 숙소를 전전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잘 먹지 못해 작고 비쩍 말랐던 소년의 피난 중 친구는 축구공이었다. 신가드(정강이 보호대)를 살 돈이 없어 나무판자를 다리에 붙이고 뛰었다. 그래도 축구 경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 당시에 대해 모드리치는 “가족끼리 항상 긍정적인 이야기만 나누려고 노력했다.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주차장에서 낡은 공을 차며 노는 내 모습을 보는 게 가족의 즐거움이었다”고 회상했다.
 
‘동네축구’를 즐기던 모드리치가 선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희생 덕분이었다. 크로아티아군에서 기술자로 근무한 아버지는 자국 축구클럽 NK자다르 유소년팀에 입단한 모드리치를 위해 박봉을 쪼개서 축구화를 사주는 등 지원했다. 맨땅에서 잔디로, 낡은 운동화에서 신형 축구화로 환경이 달라진 모드리치는 곧 천재성을 드러냈다. 이어 17살이던 2002년 자국 명문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200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빅리그를 밟았다. 2012년부터 지구촌 축구 스타가 즐비한 레알 마드리드에서 중원 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33살에 비로소 발롱도르를 손에 쥔 모드리치는 “유서 깊은 상의 주인공으로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니 믿을 수 없다”며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더욱 노력했다.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력 한 가지뿐이었다”고 말했다.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소속팀 동료들도 따뜻한 축하를 건넸다. 가레스 베일(29·웨일스)은 소셜미디어에 “엄청난 1년을 보낸 내 친구, 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썼다. 세르히오 라모스(35·스페인)는 “나의 크로아티아 친구이자 형제에게 축하 인사를 보낸다”고 적었다.
 
여자 발롱도르 수상자 헤게르베르그(왼쪽)와 코파트로피 수상자 음바페. [AFP=연합뉴스]

여자 발롱도르 수상자 헤게르베르그(왼쪽)와 코파트로피 수상자 음바페. [AFP=연합뉴스]

한편, 21세 이하 기대주에 주는 ‘코파 트로피’의 첫 수상자로는 킬리안 음바페(20·파리생제르맹)가 선정됐다. 또 함께 첫선을 보인 여자축구 발롱도르 트로피는 노르웨이 출신 공격수 아다 헤게르베르그(23·올림피크 리옹)에게 돌아갔다.
 
루카 모드리치는 …
출생: 1985년 9월9일(크로아티아 자다르)
체격: 키 1m72㎝, 몸무게 66㎏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포지션: 미드필더
별명: 발칸의 크루이프, 마에스트로
전소속팀: 디나모 자그레브(2002~2008),
토트넘 홋스퍼(2008~2012)
주요 이력: 러시아 월드컵 골든볼,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이상 2018)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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