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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놈의 자서전?" 하시던 어머니의 인생 노트

중앙일보 2018.12.03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6)
어머니의 여든번 째 생신이 다가온다. 생신을 어떻게 해드릴까 생각하다가 지난해 이맘때 어머니의 자서전을 만들어 생신 선물 겸 미리 전해드렸던 기억이 났다. 여름부터 시작한 일이 감나무의 빨갛던 감이 드문드문해질 때쯤에야 끝났다.
 
부모님은 은퇴 후 서울 외곽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즐기셨다. 어머니와 나의 큰딸 (1999년 봄). 지금보다 한결 젊고 밝은 모습이다.[사진 박헌정]

부모님은 은퇴 후 서울 외곽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즐기셨다. 어머니와 나의 큰딸 (1999년 봄). 지금보다 한결 젊고 밝은 모습이다.[사진 박헌정]

 
책이 예술품처럼 예쁘게 만들어지는 시대인데, 내가 직접 타이핑하고, 교정 보고, 워드로 편집하고, 디자인까지 구상하며 만들었기에 자서전의 겉모습은 평범하고 소박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일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받아들고는 무척 신기해하고 기뻐하셨다.
 
어머니는 배울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지만 늘 책을 가까이하셨다. 삭막하고 딱딱한 시댁의 문화에, 공무원 남편의 박봉에 꿋꿋이 맞서 일생을 활기차게 사셨고 특히 강단 있고 요령 있게 세상과 ‘맞짱’ 떠서 고단하던 가난을 끊어냈다. 자식 삼 형제를 중산층으로 만들어놓고, 책임 완수하신 아버님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먼저 가시도록 잘 보내드린 후 이제 신앙에 기대어 단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다.
 
그러던 어머니께서 언젠가부터 내가 쓰지 않는다며 가져다 드린 빈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지나온 이야기들을 기억나는 대로 조금씩 쓰기 시작하셨는데, 깔끔하게 정리해 책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며 원고를 가져다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쓰신 옛이야기들을 조금씩 가져다 타이핑하다가 본격적인 자서전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책의 첫 페이지 도입부. [사진 박헌정]

어머니께서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쓰신 옛이야기들을 조금씩 가져다 타이핑하다가 본격적인 자서전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책의 첫 페이지 도입부. [사진 박헌정]

 
어머니 세대의 우리나라 여인들 가운데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더 된다."고 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가 눈치챌세라 어머니께서는 쉬쉬하며 남들 몰래 이 막내아들과 비밀리에 진행하셨지만 자서전이 으레 그렇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는 때때로 과거의 사실을 바꾸거나 타협하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누군가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염려해서 밝히지 않은 내용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조금도 포함하지 않으셨다. 한 사람의 일생이 담담하게 이야기되었다.
 
자서전을 만들어보자는 나의 제안에 처음부터 동의하신 것은 아니다. 예상대로 "무슨 놈의 자서전?" 하시다가, 자서전이란 게 자기 이름이나 팔아먹으려는 경박한 졸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설명과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설득에 멋쩍게 슬그머니 응낙하셨다. 
 
그러고는 한번 잘 써보겠다는 열의가 생기셨는데 그래서인지 그때부터는 오히려 글에 불필요한 힘과 근원을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어가고 이야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로서도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급기야 어머니는 "아무래도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일 같다."며 보름 정도 태업을 하셨다.
 
금산군청 공무원이던 아버님이 서울 내무부 본청으로 발령받아 50여년 전 상경한 우리 가족. 아버님(좌측), 외할머님(가운데), 어머니, 그리고 나의 두 형들 (1967년 서울 남산). 가난을 끊어내고 기반을 마련하신 어머니는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고 이제 신앙에 기대어 단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다. [사진 박헌정]

금산군청 공무원이던 아버님이 서울 내무부 본청으로 발령받아 50여년 전 상경한 우리 가족. 아버님(좌측), 외할머님(가운데), 어머니, 그리고 나의 두 형들 (1967년 서울 남산). 가난을 끊어내고 기반을 마련하신 어머니는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고 이제 신앙에 기대어 단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다. [사진 박헌정]

 
그래서 타이핑해서 편집한 원고를 보여드리며 '솔직하게만 쓰시면 돈 들여 국문학과 보내놓은 막내아들이 이렇게 앞뒤 맞춰가며 잘 다듬어드린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시 힘을 내서 잘 마무리하셨다.
 
제목을 놓고 한참 고민했다. 그 시간이 내겐 혈육, 가정, 가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특히 평생 강하게 살았다고만 생각했던 어머니의 고통과 상처들을 같이 느껴보게 된 시간이었다. 
 
결국 어렵고 복잡한, 아니 멋들어지고 그럴싸한 수백가지 표현들을 돌고 돌아 ‘가족’이라는, 가장 단순명료하면서도 원초적인 두 음절 단어가 떠올랐다. 평생을 울고 웃으며, 종국에는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는 그 순간이 온다 한들 우리에게 남은 바로 그 근원적인 것, 가족 말이다. 어머니도 어머니의 일생을 함축할 단어로서 흔쾌히 동의하셨다.
 
여든이 되신 어머니, 어머니 자서전의 독자는 누구일까. 당신 스스로 쓰기와 읽기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보셨으면 좋겠다는 것, 내 바람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신 후 우리 삼 형제 아들 며느리가 가끔 펼쳐보며 눈물 쏟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선 빙긋 웃으시며 어머니께 '정리 잘했네' 하며 생전에는 인색하던 칭찬을 하실지도 모르고, 주위 친척들은 어머니 평생에 그런 어려움과 곡절이 있었음을 미안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자서전 『가족』의 표지 디자인. [사진 박헌정]

어머니 자서전 『가족』의 표지 디자인. [사진 박헌정]

 
모른다. 어찌 될지 정말 모르겠다. 유명인들이 목적을 가지고 돈 들여 펴낸, 자신의 역사를 은폐한 채 원하는 방향으로 꾸미고 과장하고 날조하는 그런 자서전이 아니니까. 하여튼 내가 가진, 아마추어로서는 준수하고 전문가 수준은 안 되는 문장력과 편집력을 총동원해서 잘 만들어 드리려고 했다.
 
이 책은 어머니의 회고록이자, 등장인물만 있고 스토리도 플롯도 없는 우리 반남 박씨 족보보다 백배 천배 가치 있는, 강 마리아 여사와 박 씨 사부자 가정의 50여년 역사서다. 책이 나온 후 가족이 모여 세상에서 가장 조촐하면서 가장 기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제 어머니는 긴 비행기 여행도 힘드시다. 유럽이나 가까운 이웃 나라는 그런대로 다녀보셨지만 그토록 궁금해하시던 미국은 자식들만 보내 공부시켜주시곤 정작 당신께선 짧은 여행조차 못 하셨다. 죄송스러울 뿐이다. 이 자서전으로 다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책을 만들면서 미처 모르던 것도 많이 알게 되었고 가족의 의미와 나의 근원을 깊게 느껴보았다. 그동안 부모님께서 말씀하실 때 '저런 말씀을 왜 하시나?' 하며 듣던 것들이 전부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이었다. 자식이 아니라 막힌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셨을 테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많이 후회되고, 뒤늦게 철 드는 느낌이다.
 
박헌정 수필가 portugal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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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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