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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정 박사, 당신은 지금 미국 과학정책 투톱과 얘기하고 있소”

중앙일보 2018.12.03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한국과학원(KAIS)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한 1973년 부원장에서 물러난 나는 미국 코넬대의 프랭클린 롱 교수의 과학기술사회(STS) 연구소 초청을 받아들였다. STS는 1972년 미국 과학기술사학자인 엘팅 모리슨(1909~95년)이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처음 개척한 학제간 연구(서로 다른 학문 분야가 제휴해 하나의 대상을 다루는 연구) 분야다. 과학기술의 역사와 철학, 사회적 의미를 다룬다. 비슷한 시기에 이를 시작한 코넬대에선 롱 교수의 주도로 과학기술 정책 분야로 범위를 넓히고 전문화했다. 연구소는 과학기술 정책 분야 핵심 싱크탱크로 자리 잡아갔다. 
1968년 미국 화학회 주최로 열린 ‘기초 연구와 그 중요성’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석한 프랭클린 롱 코넬대 화학과 학과장(왼쪽에서 셋째). 왼쪽부터 아서 뷔헤 제너럴 엘렉트릭 부회장, 린든 존슨 대통령의 과학고문인 도널드 호니히 프린스턴대 교수, 롱 교수, 헨리 웨스트하이머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 로버트 모리슨 코넬대 신경생리학 교수. [사진 미국 스미소니언협회]

1968년 미국 화학회 주최로 열린 ‘기초 연구와 그 중요성’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석한 프랭클린 롱 코넬대 화학과 학과장(왼쪽에서 셋째). 왼쪽부터 아서 뷔헤 제너럴 엘렉트릭 부회장, 린든 존슨 대통령의 과학고문인 도널드 호니히 프린스턴대 교수, 롱 교수, 헨리 웨스트하이머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 로버트 모리슨 코넬대 신경생리학 교수. [사진 미국 스미소니언협회]

유기화학자인 롱 교수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의 세 대통령 아래에서 대통령 과학자문위원을 지내며 과학기술 정책에 깊숙이 개입했다. 핵무기 통제와 감축,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도 기여해 미 연방정부 기관인 ‘무기통제 및 군축국(ACDA)’의 부국장을 지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96)
<48> 롱 교수·와인버그 소장과 만남
새 학문 과학기술사회연구
코넬대는 정책과도 연결해
대통령 고문 출신 롱 교수
원자력 평화적 이용 추구
과학기술·산업 연결 전략
한국 미래에 활용 가능성

나는 STS 연구가 한국에서 과학기술을 산업으로 연결하고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마련할 기회라고 판단했다. 개인적으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롱 교수가 미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무게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어떻게 과학기술 정책으로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이끄는지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싶었다.  
코넬대 캠퍼스의 모습. 교수와 동문을 합쳐 58명의 노벨상 수상자을 배출했다. [사진 코넬대]

코넬대 캠퍼스의 모습. 교수와 동문을 합쳐 58명의 노벨상 수상자을 배출했다. [사진 코넬대]

미국에 도착해 뉴욕주 소도시 이사카에 있는 코넬대로 찾아가니 캠퍼스 안에 폭포가 흐르고 숲이 울창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도시 분위기인 하버드대, 매사추세츠 공대(MIT)나 뉴욕 공대와는 분위기가 달랐고 오히려 미시간 주립대와 비슷했다.  
코넬대 캠퍼스의 겨울 풍경. [사진 코넬대]

코넬대 캠퍼스의 겨울 풍경. [사진 코넬대]

코넬대 STS 연구소는 미 과학기술계에서 차지하는 코넬대의 명성과 연구소를 이끄는 롱 교수의 비중 때문에 세계적인 과학기술자들이 수시로 방문했다. 이들의 초청 강의를 듣고 과학기술 현안이나 정책 과제를 놓고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코넬대 안을 흐르는 폭포.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학업와 연구 스트레스를 식힐 수 있게 배려했다. [위키피디아]

코넬대 안을 흐르는 폭포.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학업와 연구 스트레스를 식힐 수 있게 배려했다. [위키피디아]

한번은 미 국립 오크리지 연구소장인 앨빈 와인버그(1915~2006년, 소장 재임 55~73년) 박사가 방문해 롱 교수 집에서 저녁을 함께하고 대화를 나눴다. 와인버그 박사는 60년대 초 미국원자력학회(ANS) 회장을 지내고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시절 대통령 과학자문위원을 맡았다. 세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나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1959년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를 방문한 존 F 케네디 당시 상원의원을 상대로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의 원리를 설명하는 앨빈 와인버그 소장. [미국 에너지부]

1959년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를 방문한 존 F 케네디 당시 상원의원을 상대로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의 원리를 설명하는 앨빈 와인버그 소장. [미국 에너지부]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누가 주도하고 있습니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 롱 교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정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기 두 사람을 보세요. 당신은 미국 과학기술정책을 선두에서 이끄는 두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롱 교수는 이처럼 자신감과 책임감이 넘치던 인물이었다. 이런 롱 교수와 함께했던 코넬대 STS 연구소에서의 연구 경험은 과학원의 첫 연구소인 ‘과학기술사회 연구소’에서 자신감 있게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 전략을 마련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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