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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려움이 만들다, 밀림 속 난공불락 공중도시

중앙선데이 2018.12.01 01:10 612호 20면 지면보기
“믿을 수 없어.” 밀림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요새, 스리랑카 시기리야(Sigiriya).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높이 200m 수직 바위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5세기 공중도시의 존재를 인정하기 힘들었다. 암벽등반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어떻게 절벽을 타고 올라가 도시를 만들었는지, 물음표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기리야는 깎아지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줄을 잡고 기듯 올라야 한다.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낸 난공불락의 요새는 아이러니하게도 1500년이 지난 지금 스리랑카 최고 여행지가 되어 전 세계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세계문화유산 스리랑카 '시기리야'

고대국가 형제의 난으로 탄생
200m 암벽 사다리 타고 하이킹
5세기 벽화, 건축 흔적 그대로
1500년 전으로 시간여행한 듯

높이 200m의 고대 도시 '시기리야'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주는 유적이다. [사진 채지형]

높이 200m의 고대 도시 '시기리야'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주는 유적이다. [사진 채지형]

아찔한 바위산 위에 오르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채지형]

아찔한 바위산 위에 오르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채지형]

 
2019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칭송한 나라,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이 ‘2019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위로 꼽은 나라. 스리랑카는 이름 자체가 ‘빛나는 섬’이란 뜻이다. 스리랑카 하면 홍차와 불교가 떠오른다. 실제로 세계 최대 차 수출국으로, 1972년 스리랑카공화국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나라 이름도 ‘실론’이었다. 불교도가 인구의 69%에 달하고, 버스를 타도 승려 자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불교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불교 유적을 볼 수 있는 ‘캔디’와 차밭 넘실거리는 ‘하푸탈레’를 꼭 들른다. 그러나 단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스리랑카 중부의 시기리야를 꼽고 싶다.
시기리야 모형.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 모습이다. [사진 채지형]

시기리야 모형.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 모습이다. [사진 채지형]

고대도시 시기리야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있다. 고대국가 아누라다푸라의 왕 다투세나는 두 아들이 있었다. 평민 아내가 낳은 장남 카샤파와 왕족 출신 부인이 낳은 목갈라나. 카샤파는 동생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아버지를 살해한 뒤 왕좌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동생이 복수하러 오리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은 광기로 변해,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요새를 짓게 했다.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인도로 망명한 동생 목갈라나가 시기리야에 쳐들어오자 카샤파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평원에 우뚝 솟은 바위산에 오르면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사진 채지형]

평원에 우뚝 솟은 바위산에 오르면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사진 채지형]

밀림 속 바위 요새 사진을 보고 시기리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품었는데 카샤파 이야기를 듣고는 시기리야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수도 콜롬보에서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와 폴로나루와 방향으로 169㎞를 달려 시기리야에 도착했다.
누구보다 먼저 시기리야를 만나고 싶었다. 유적지 문이 잠긴 오전 6시에 도착해 어슬렁거렸다. 성 주변을 두르고 있는 연못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해자(垓子)였다. 연못은 무채색 성곽과 달리 진분홍 연꽃으로 화려했다. 수다스러운 새들은 1500년 전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화롭게 노래하고 있었다.
고대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터와 길. [사진 채지형]

고대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터와 길. [사진 채지형]

드디어 7시.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바위산이 눈을 사로잡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가 실제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공중도시로 향하는 길옆에는 수조와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물의 정원’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공중도시만 있었다면 흥미로운 전설처럼 여겨졌을 텐데 평지에 남아있는 유적 덕분에 실제 역사로 다가왔다.
 
욕망과 두려움의 끝 
요새를 오르기 위해서는 심호흡이 필요했다. 가파른 계단 때문이었다. 아슬아슬 걸쳐 있는 철제 사다리를 숨죽이며 걸었다. 아래로 눈길 한 번 줬다가 발을 헛디딜 뻔했다. 초록이 넘실대는 밀림이 펼쳐져 있었지만 듬성듬성한 철제 사다리 탓에 여유롭게 풍광을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절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보려면 올라가야 하는 나선형 계단. [사진 채지형]

절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보려면 올라가야 하는 나선형 계단. [사진 채지형]

절벽을 타고 가다 보니 나선형 회전계단이 나타났다. 프레스코화를 보러 가는 계단이다. 카샤파 왕이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미인도가 보였다. ‘시기리야 레이디’라고도 불리는 여인들이 주인공이다. 빼어난 고대 벽화기술 덕에 1500년 전 그림이 지금까지 잘 남아있다. 물감이 지워지지 않도록 바위 표면에 그림판을 만든 후 그림을 새겼다고 한다.
1500년 전 프레스코화. 박물관에 전시된 기록용 사진이다. [사진 채지형]

1500년 전 프레스코화. 박물관에 전시된 기록용 사진이다. [사진 채지형]

미인도를 보고 나오니, 사자 발 모양의 거대 바위가 버티고 있는 ‘사자의 테라스’가 나타났다. 참고로 스리랑카 사람들은 스스로 사자의 후예라고 믿는다. 국기에도 사자 문양이 들어있다. 사자의 두 발 사이를 지나 지그재그로 이어진 철제 계단을 따라 올랐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도 60도 경사의 암벽 앞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릴 수밖에 없었다. 난간을 잡은 두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거대한 사자 발 모양의 사자 테라스. 지그재그 철계단을 따라 오른다. [사진 채지형]

거대한 사자 발 모양의 사자 테라스. 지그재그 철계단을 따라 오른다. [사진 채지형]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사다리를 걷는 여행자들. [사진 채지형]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사다리를 걷는 여행자들. [사진 채지형]

무려 1200여 계단을 밟고 나서야, 공중도시의 정상에 닿았다. 바람이 고생했다며 훅 달려들었다. 타임머신을 탄 듯 150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렸다. 평화로운 숲을 앞에 두고도 마음은 두려움의 바다를 헤맸을 카샤파 왕, 수직절벽을 타고 올라와 왕을 보필했을 신하들을 떠올렸다. 상상 속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살피니 카샤파 왕국의 폐허만 쓸쓸하게 펼쳐져 있었다. 야외 목욕탕처럼 보이는 대형 수조와 연회장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당시 모습을 상상하긴 힘들었다.
시기리야 정상부, 목욕탕처럼 보이는 대형 수조. [사진 채지형]

시기리야 정상부, 목욕탕처럼 보이는 대형 수조. [사진 채지형]

평평한 바위산 한가운데 놓인 왕좌는 더없이 외로워 보였다. 욕망이 결국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그 끝은 얼마나 허망한지 생각했다. 마치 거세게 불어왔다 사라지는 바람처럼 말이다.
 
여행정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대한항공이 인천~콜롬보 직항편을 주 3회 운항한다. 약 8시간 10분 소요. 한국보다 3시간 30분 느리다. 미국달러를 가져가서 환전하는 게 낫다.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도착 비자는 40달러, 스리랑카 관광부 홈페이지(eta.gov.lk/slvisa)에서 신청하는 인터넷 비자는 35달러.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시기리야 부근의 칸달라마 호텔을 놓치지 말자. 스리랑카가 자랑하는 건축가 제프리 바와가 설계한 자연주의 호텔이다.
 
 
채지형 여행작가 travelguru@naver.com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오늘부터 여행작가』『안녕, 여행』『지구별 워커홀릭』 등을 펴냈다. 시장 구경과 세계의 인형 모으기를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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