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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맛, 실망했다고? 토박이들 단골집은 따로 있다

중앙선데이 2018.12.01 00:02 612호 21면 지면보기
 전북 전주를 미향(味鄕) 또는 ‘음식 1번지’라 한다. 유네스코 미식 도시(City of Gastronomy: 2012년 가입 승인)의 자부심이 실린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 들은 얘기는 그런 찬사와 사뭇 다르다. “유네스코 미식도시가 이런 거냐”는 실망의 소리가 크다.
 

이택희의 맛따라기 - 전주 뿌리 깊은 맛집 5선

한옥마을 잠깐 돌아본 여행자들
기대 컸던 맛 못 찾아 실망 일쑤
“유네스코 미식도시가 이런 거냐”

그래도 대 이어 전주의 맛 지키는
비빔밥·설렁탕·칼국수·콩나물국밥
도심 곳곳에 저력의 맛집들 쟁쟁

혼란에 빠진 전주 음식을 재정립하는 게 인생의 숙제다. 

-전주 요리연구가  

전주에 와서 먹으면 안 되는 게 비빔밥이래.

-비빔밥 축제 행사장 앞 중학생 3명 “ 

전주, 하도 되바라져서 몇 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여행 전문기자  
 
 10월 마지막 주 전주에서 하룻밤 묵고 오면서 그런 의견에 상당 부분 공감했다. 전주 도착 후 첫 점심 소감을 불만스럽다고 SNS에 썼더니 전주 맛집 소식에 밝은 전문가가 저녁에 만나기를 청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지만, 밤에 둘이서 3곳을 돌아다니며 먹고 사고 마셨다. 다음날 새벽에 시식할 해장국 집도 추천해줘 혼자 찾아가 봤다. 
전주를 대표하는 메뉴 전주비빔밥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다. 제대로 전주비빔밥을 내놓는 식당이 '한국집'이다. 한국집에서 판매하는 육회비빔밥. 신인섭 기자

전주를 대표하는 메뉴 전주비빔밥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다. 제대로 전주비빔밥을 내놓는 식당이 '한국집'이다. 한국집에서 판매하는 육회비빔밥. 신인섭 기자

 그는 “한옥마을만 보면 전주 음식이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전주 사람이 많이 가는 맛집은 따로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사람들의 혹평이 마치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듯, 곡진한 표정으로 여러 집을 거명하며 소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5일 동안 그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주 토박이 맛집 5곳을 골랐다. 여행자가 찾아가기 쉽고, 맛도 있는 집을 선정했다. 
 지난달 20일 중년의 세 남자가 10시간 동안 5곳을 다니며 분석적으로 음식을 먹어봤다. 일반 손님으로 들어가 음식 주문해 조용히 사진 찍고 오로지 맛에 집중해 먹기만 하고 나왔다. 묵묵히 맛을 지킨 이 집들이 미식 도시 전주를 지키고 되살릴 버팀목이자 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장만 있는 순대국밥 - 덕천식당
덕천식당의 막창국밥(왼쪽)과 순대국밥.. 신인섭 기자

덕천식당의 막창국밥(왼쪽)과 순대국밥.. 신인섭 기자

순대국밥에 순대가 안 들어가서 처음 가는 외지인은 실소하는 국밥집이다. 내용을 보면 내장국밥인데 이름은 순대국밥이다. 전주에선 선지 섞인 순대가 들어가면 피순댓국, 순대 없이 내장만 넣으면 순댓국이라 한다. 지역민이 보기에 전주는 비빔밥보다 국밥이 대세다. 특히 덕천식당이 있는 전북대 주변에 기본 이상의 맛을 내는 국밥집이 많다. 
 국밥의 내장과 막창은 거북한 냄새가 없고 질감이 부드럽다. 씹히는 탄력이 경쾌하다. 솜씨 있게 삶았다는 느낌이 입안 가득 퍼졌다. 돼지 뼈 우린 국에 들깨와 매운 양념이 들어가 맛이 묵직하다. 칼칼한 국물은 밥을 말기 전후의 차이가 크다. 밥에서 전분이 우러나 섞이면 맛이 훨씬 부드럽고 구수해진다. 순대국밥(5500원)은 밥을 말아서 내오고, 막창국밥(6500원)은 밥이 따로 나온다. 국밥의 건지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담쟁이 넝쿨이 전체를 감싼 2층 적벽돌 건물은 외관이 고풍스러워 음식점보다는 갤러리나 연구소를 연상시킨다. 보기만 그런 건 아니다. 1976년 9월 28일 양종숙(73) 여사가 개업해 42년을 넘겼다. 지금은 자녀들이 운영한다. 매일 오전 7시 30분 문을 연다. 
 
오후 1시 문 닫는 국밥집 - 오거리콩나물해장국
 좌석이 8개뿐인 오거 리콩나물해장국에서 파는 콩나물국밥. 현금만 받는다. 신인섭 기자

좌석이 8개뿐인 오거 리콩나물해장국에서 파는 콩나물국밥. 현금만 받는다. 신인섭 기자

예전엔 전주 콩나물국을 ‘탁배기국’이라 한 모양이다. 1929년 ‘별건곤’에 실린 글에 콩나물·소금·물로 끓이고 마늘은 조금 넣거나 말거나 한다 했다. 이처럼 콩나물 맛으로 즐기는 옛날 스타일을 찾는다면 이 집이다. 
 아주머니가 밥을 담은 뚝배기에 찬물에 담가둔 삶은 콩나물을 건져 올려 부뚜막에 놓자, 아저씨는 국물이 끓는 솥 턱에 뚝배기를 비스듬히 걸치고 국자로 국물을 열 번쯤 퍼부었다. 국물은 밥과 콩나물을 데우고 솥으로 돌아갔다. 국밥을 만드는 오랜 방법인 토렴이다. 아주머니는 그사이 대파 하얀 대와 푸른 잎을 나란히 잡고 가늘게 썬다. 토렴을 끝낸 뚝배기에 잘게 썬 묵은지 한술 올리고 국물을 찰랑찰랑 채운 뒤 다진 파 한 줌 올리면 완성이다(6000원). 
콩나물 해장국과 같이 제공되는 수란. 신인섭 기자

콩나물 해장국과 같이 제공되는 수란. 신인섭 기자

 멸치와 건어물 향이 나는 국물은 시원하면서 감칠맛이 남실댄다. 질긴 듯 아삭한 콩나물은 꼭꼭 씹으면 고소하고 시원한 즙이 혀에 고인다. 아주머니가 남부시장 콩나물국 집에서 1년 반 배우고 2005년 독립했다. 메뉴는 매운·중간·순한 맛 3종류. 중간도 맵다. 중앙시장 오거리에서 매일 오전 5시에 시작해 국물 두 솥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보통은 오후 1시 30분까지. 카드는 안 된다. 
 
전설의 칼국숫집 - 베테랑분식
베테랑분식에서 파는 베테랑칼국수. 고춧가루, 김 가루, 들깻가루가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덮여 있다. 신인섭 기자

베테랑분식에서 파는 베테랑칼국수. 고춧가루, 김 가루, 들깻가루가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덮여 있다. 신인섭 기자

상호보다 ‘베테랑칼국수(6500원)’가 더 유명하다. 국수는 중면보다 조금 굵은 둥근 기계면. 면발이 부드럽고 하늘거린다. 계란을 가늘게 풀어 살짝 덜 익힌 상태로 상에 낸다. 국물이 걸쭉하다. 국수에 볶은 들깻가루, 김 가루, 고춧가루가 삼원색 벤 다이어그램처럼 얹혀 있다. 
 맛과 스타일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전주에서는 이미 흔들리지 않는 아성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200명이 들어가는 본점에선 보통 하루 몇천 그릇이 나간다. 많이 팔리면 7000~8000그릇. 명절 다음날 1만1000그릇을 팔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 집의 숨은 맛은 국수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다. 취향에 따라 깍두기 국물을 두어 술 더 넣어도 색다른 맛이다. 밥은 팔지 않으니 원하면 준비해야 한다. 밥 반입을 막지는 않는다.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사 전자레인지로 데워서 가지고 가면 될 듯하다. 
 공식 개업은 1977년. 현재는 아들이 운영하지만, 창업주인 어머니는 아직도 주방 현역이다. 경기전 건너편 성심여중 앞에 있다. 매일 오전 9시 문을 연다. 서울·수원에 직영 분점 4곳이 있다. 
 
원조 전주비빔밥의 저력- 한국집
 한국집의 육회. 채 썬 배는 함께 섞지 않고 따로 조금씩 얹어 먹는다. 신인섭 기자

한국집의 육회. 채 썬 배는 함께 섞지 않고 따로 조금씩 얹어 먹는다. 신인섭 기자

전주비빔밥을 처음 팔기 시작한 음식점이다. 고(故) 이분례 여사가 1952년 창업하고, 딸 주순옥(88) 여사가 물려받아 아직도 본점 장독대를 관리하고 주방을 감독한다. 서울에 분점이 9곳이나 있다. 70년 된 씨간장이 자랑이다. 어렵게 간장 독을 들여다보고 맛을 봤다. 캐러멜처럼 끈적이는 간장은 맛이 복잡하고 약 같지만, 뒤로 갈수록 단맛이 살아났다. 
한국집의 씨 간장. 점도가 높아 끈적이고 뒷맛으로 묘한 단맛이 난다. 신인섭 기자

한국집의 씨 간장. 점도가 높아 끈적이고 뒷맛으로 묘한 단맛이 난다. 신인섭 기자

 전주비빔밥에 불만인 사람이 많다. 전주비빔밥의 명성만 믿고 대충 만드는 집들이 있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 집은 달랐다. 원조의 자존심이 음식에 녹아 있다. 비빔밥(1만1000~1만3000원)도 좋지만, 비법 양념으로 무쳤다는 한우 업진과 우둔살 육회(3만5000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솜씨였다. 
 마을 원로들은 둘이서 육회 한 접시 시켜 반주하고, 남은 육회를 몇 가닥씩 밥에 얹어 식사하는 걸 추억의 외식으로 꼽는다. 메뉴판 음식은 아니지만 ‘전동 스타일’이라 한다. 그렇게 먹어봤다. 양념의 깊은 맛을 머금은 쇠고기가 입안에서 밥과 섞이면서 씹히는 맛이 절묘했다. 장·기름을 잘 쓰는 듯했다. 기본적으로는 밥이 좋았다. 경기전 뒤 본점은 매일 아침 9시 30분 문을 연다. 
 
들어는 봤나? 현미수육 - 연지본관
연지본관의 모듬수육. 우설, 알도가니, 꼬 리 등 거의 소의 전 부위를 먹는 셈이다.신인섭 기자

연지본관의 모듬수육. 우설, 알도가니, 꼬 리 등 거의 소의 전 부위를 먹는 셈이다.신인섭 기자

소고기 탕과 수육 집이다. 주차장에 내리자 탕 끓이는 고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메뉴판에 낯선 음식 이름이 보인다. 처음 보는 현미수육(4만원)과 모듬탕(1만3000원)이다. 현미수육은 혀밑살 수육이라 한다. 전주 사람은 이 집 도가니탕(1만3000원)을 높이 친다. 수육에 힘줄이 아닌 진짜 도가니 두어 점이 섞인 것으로 봐 수긍이 간다. 
 모듬수육(4만원) 첫 점에 “그렇지, 이런 게 고기 맛이지”라고 쾌재를 불렀다. 접시에는 우설·머릿고기·알도가니·힘줄(스지)·꼬리·우족 토막 등이 수북이 담겼다. 초고추장 찍어 먹는 게 기본이다. 채 쳐 무친 무장아찌나 마늘장아찌를 올려 먹어도 맛있다. 때로 양념하지 않은 깻잎장아찌나 묵은김치도 나오는데, 수육에 곁들여 먹으면 또한 별미다. 
 수육에 따라 나온 설렁탕은 국물이 탁한 듯 진한 듯, 뚝배기 안에서 구름 같은 것이 뭉게뭉게 대류를 한다. 전문가 2명이 잡내 잡기 위해 메밀가루를 넣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주인에게 물으니 아무것도 넣지 않은 뼈와 고기만의 국물이라고 했다. 1987년 4월 27일 개업해 지금은 창업주가 아들에게 10년째 가마솥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쉬는 날 없이 매일 오전 9시 문을 연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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