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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논란' 산이에 반격…래퍼 슬릭 "사람들 속시원해졌으면"

중앙일보 2018.11.29 01:00
"한국에서 여성래퍼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라는 질문을 던지자 래퍼 슬릭(27)은 웃으며 되물었다.
 
"제가 만약 기자님께 '여기자로 사는 기분 어떠세요?'라고 여쭤본다면 뭐라 하실 것 같아요?"
 
말문이 막혔다. "저는 그냥 랩 하는 사람이고 성별이 여자일 뿐이에요. 그게 딱히 랩할 때 장벽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만 제가 노래를 냈을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건 있죠. '여자 래퍼치곤 잘하네?'"
 
지난 26일 슬릭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탁영건 인턴기자

지난 26일 슬릭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탁영건 인턴기자

 
얼마 전 래퍼 산이가 낸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야 그렇게 권리를 원하면 왜 군댄 안 가냐 왜 데이트 할 땐 돈은 왜 내가 내 뭘 더 바래 지하철 버스 주차장 자리 다 내줬는데 대체 왜.' 슬릭은 바로 맞받아쳤다. 디스곡 '이퀄리스트(equalist)'를 통해서다. 다음은 이퀄리스트의 마지막 구절이다.
 
'니가 바라는 거 여자도 군대 가기, 데이트 할 때 더치페이 하기, 여자만 앉을 수 있는 지하철 임산부석 없애기 (중략) 내가 바라는 것 죽이지 않기, 강간하지 않기, 폭행하지 않기, 죽이고 강간하고 폭행하면서 그걸 피해자 탓하지 않기, 시스템을 탓하라면서 시스템 밖으로 추방하지 않기.'
 
노래가 나오고 일주일쯤 뒤인 26일 슬릭을 만났다. 슬릭은 이 곡을 "답답했던 사람들이 듣고 속이 시원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했다. 산이 랩을 제일 먼저 반박한 래퍼 제리케이의 곡 'no you are not'을 듣다가 '다 좋은데 여성의 목소리로 듣고 싶다'는 댓글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단다. 가사를 쓰는 데 3~4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지난 17일 슬릭이 발표한 곡 '이퀄리스트'. 전날 산이가 공개한 곡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디스곡이다. [인터넷 캡처]

지난 17일 슬릭이 발표한 곡 '이퀄리스트'. 전날 산이가 공개한 곡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디스곡이다. [인터넷 캡처]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일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현재 슬릭이 속한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가 유튜브에 올린 이퀄리스트 조회수는 30만 회를 넘겼다) 제 개인 SNS 댓글에 악플이 좀 많았는데 더 많을 거 같은 유튜브나 힙합 커뮤니티 댓글은 아예 안 봤어요. 봐도 득 될 거 없으니까."
 
힙합 장르에 뿌리깊게 내재된 '여성혐오'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슬릭은 2016년 유튜브 콘텐츠 '마이크 스웨거2'에서 랩을 통해 '여긴 아직도 계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안다면서, 아직도 게이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 (중략) 그게 힙합이라고 하면 난 오늘부터 힙합 관둠'이라며 한국 힙합 주류를 꼬집었다. 랩 가사에서는 자신을 'I'm hell'a feminist'라고 소개했다.
 
"한국 힙합 주류와는 제 스스로 거리를 두고 있어요. 물론 그쪽에서도 제 이야기를 잘 안 하죠.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저를 '볼드모트('해리포터'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라고 하더라고요. 제 이름이 커뮤니티에 나오면 게시판이 엉망진창 된다고.(웃음)"
 
그런 슬릭에게 "한국 힙합에서 여혐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슬릭은 "없어지는 것보다는 여혐 표현들이 '별로다''구리다'라는 인식이 생길 거 같긴 해요. '무슨 이런 말을 써''옛날 사람 같다' 이런 식의 비난이 주어진다면 래퍼들도 가사 쓸 때 눈치 보겠죠. 눈치 안 볼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살다 가겠지만"이라고 답했다.
 
슬릭은 앞으로 더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랩에 담고 싶다고 했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자신의 노래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팔리는 노래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군가를 '살리는' 노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터뷰 막간을 이용해 취재팀은 슬릭에게 직접 랩을 배워봤는데요. 슬릭에게 전수받은 기자의 랩 실력이 궁금하신 분은 살짝 보러오세요!: https://youtu.be/FJ9RueotOu0
 
'뜨거운 감자 미식회' 일동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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