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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북·일 관계에서도 우려되는 한국 패싱

중앙일보 2018.11.29 00:27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의 귀중한 합의가 정권교체 때마다 흔들리거나 깨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과의 약속은 지키면서 일본과의 약속은 어겨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모순된 자세다.”
 
지난 24일 도쿄에서 마주한 언론인은 이날 자 도쿄신문 사설을 내밀었다. 도쿄신문은 일본 내 손꼽히는 진보지다. 한국과 잘 지내자는 논조를 유지해 왔다. 그런 신문이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에 비판적인 사설을 썼다. 우리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우려를 나타냈다.  
 
방문하는 나라에서마다 “북한 제재를 풀어 달라”며 ‘학부모식’ 외교를 펼치는 문 대통령의 북한 중시 태도를 대비해 가면서다. 사설을 보여준 언론인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재단 해산이 맞물리며 ‘한국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확대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도쿄 유명 대학의 한국인 교수를 만났다. 북한 전문가다. 그는 “이번 학기 북한 강의 수강자가 늘었다. 몇몇 대학에선 관련 강좌가 신설됐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이 일본에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양측은 직접 교섭을 희망하고, 실제 진행 중이라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다.
 
늦가을 도쿄에서 맞닥뜨린 한국은 쓸쓸했다. 한·일 관계의 냉랭함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여기에 더해 우리 정부가 올인하다시피 하는 북한을 향한 일본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었다. 지금껏 일본의 대북 접촉은 한·일 기본조약 3조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에 기준을 두었다. 그래서 남북이 화해무드일 때 북·일은 교섭했다.
 
지금은 우리 정부가 북한을 보증해 주는 시절 아닌가. 일본은 눈치 볼 게 없다. 게다가 북·일은 독자 전개가 가능한 ‘납치’의 테마가 있다. 인권문제이기도 한 납치를 두고 양측이 대화하면 우리의 틈은 없다. 일본이 미국과 손잡고 북한 인권을 문제 삼아 대북 압박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거다. 쓰타주쿠대 박정진 교수는 “대북 정책에서 일본과 공조하려면 설득이 필요한데 우리 정부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북·일이 우리의 의도와 달리 가거나 교섭 자체가 중단되면 큰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재팬 패싱’이라며 좋아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을 싫어하는 것과 북·일 관계를 직시하는 건 별개”라고 말했다. 북·일 관계의 양상에 따라 ‘재팬 패싱’이 아닌 ‘한국 패싱’이 발생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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