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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때리고 잘 받고 … 배구 도사 정지석

중앙일보 2018.11.29 00:02 경제 7면 지면보기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은 이번 시즌 프로배구의 최고 선수로 꼽힌다. 그는 ’올해도 우승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트리플 크라운(서브·후위공격·블로킹 3개 이상씩)이 꿈“이라고 했다. [변선구 기자]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은 이번 시즌 프로배구의 최고 선수로 꼽힌다. 그는 ’올해도 우승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트리플 크라운(서브·후위공격·블로킹 3개 이상씩)이 꿈“이라고 했다. [변선구 기자]

“정지석? 수퍼스타지.”
 

공수 겸비한 대한항공 1위 견인차
내년 FA 앞두고 구애 눈길 줄이어
모든 포지션 경험, 기본기 탄탄해
“기대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

경기도 용인의 연습 체육관에서 22일 만난 프로배구 대한항공 박기원(67) 감독은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23·1m95㎝)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 감독은 엄지까지 치켜세웠다. 지난 시즌까지 “발전하고 있다” “잘한다” 정도였던 칭찬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번 시즌 정지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기록이 말해준다. 27일까지 11경기에서 179점을 올렸다. 득점 부문 8위, 국내 선수만 따지면 3위다. 공격 성공률이 59.67%인데, 리버만 아가메즈(우리카드), 타이스 덜 호스트(삼성화재), 크리스티안 파다르(현대캐피탈) 등 외국인 강타자들을 제치고 전체 2위다. 서브 득점은 세트당 0.44개로 전체 5위, 국내 선수 중 1위다.
 
정지석이 호평을 받는 건 공격보다 수비다. 서브 리시브 순위 1위(59.85%)에 올라있고, 디그와 리시브를 합한 수비 종합에서도 세트당 5.26개로 2위다. 수비 전담 선수인 리베로보다도 수비를 잘한다. 대한항공이 1위(9승 2패·승점 27)를 달리는 이유, 바로 정지석이다. 그는 “개인 기록을 가끔 보는데 솔직히 나도 놀란다. 우리 팀이 전원 공격의 ‘벌떼 배구’를 하다 보니 내게 공격 기회가 많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 변선구 기자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 변선구 기자

정지석은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실업배구 선수를 거쳐 프로심판으로 활동한 아버지(정재숙·57)로부터 어릴 때 배구를 배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그는 “그 당시가 2002 한·일 월드컵 직후라서 축구 인기가 높았다. 나도 축구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배구장에 오면 맛있는 간식을 사주겠다’고 해서 배구에 입문했다”며 웃었다. 그는 어린 시절 세터·리베로·센터·레프트·라이트 등 모든 포지션을 다 경험하면서 탄탄하게 기본기를 다졌다. 그는 “서브가 약한 편이었는데, 감독님과 일대일 서브 훈련을 하면서 많이 늘었다. 감독님이 ‘듀스라도 맘 놓고 때려라’고 하셔서 과감하게 서브를 넣는다”고 전했다.
 
정지석은 프로배구 출범 이후 고졸 신인 1호다. 그는 “아버지가 ‘도전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대학 생활을 누리지 못한 건 아쉽지만, 프로에 일찍 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18세이던 2013년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그는 어느새 6시즌을 보냈다. 내년에 FA(자유계약선수)가 된다. 공격과 수비가 모두 걸출하고 나이도 어려 V리그 모든 팀이 정지석을 노린다.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 변선구 기자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 변선구 기자

지난달 개막 직전 미디어데이 행사 때 ‘영입하고 싶은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7개 팀 감독 모두 정지석을 꼽았다. 신진식 삼성화재 감독은 “올 시즌 뒤 FA인 정지석을 데려오고 싶다”고 했고, 김철수 한국전력 감독도 “기본기, 공격이 월등한 정지석을 영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세진 감독은 “정지석에게 꾸준히 애정표현을 했다. 그런데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당시 옆에 있던 정지석은 감독들의 적극적인 구애에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 당시 많이 당황했다. ‘어느새 이런 위치에 올라왔구나’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기대가 실망이 될까 봐, 거품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 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배구에 눈이 뜨인 2015년, 왼쪽 어깨에 영어 문신을 새겼다.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 the crown(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는 “주전이 됐어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기억하기 위해 새겼다”고 설명했다.
 
하얀 피부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정지석에겐 젊은 여성 팬이 많다. 성격까지 쾌활해서 ‘잘 노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다. 막상 만나 속내를 들어보니 보이는 것과 달랐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연구와 훈련에 더 깊이 몰두하는 그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낸 그는 유튜브를 열더니 “많이 보는 동영상이 다 나와 있다. 이탈리아·러시아·일본 배구 영상이다. 경기에 진 날은 밤새워 경기 영상을 돌려본다”고 했다.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싶다. 기술이 다양해지면 배구가 더 재밌을 것 같다. 나는 배구를 정말 잘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빛났다.
 
정지석은 …
생년월일: 1995년 3월 10일
체격: 키 1m95㎝, 몸무게 88㎏
포지션: 레프트
프로 입단: 2013년
수상: 2015년 아시아 U-23 선수권 준우승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
별명: 씻은 배추 줄기(피부가 희고 키가 훤칠해서)
 
용인=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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