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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되살리는 길|이인호<서울대교수·역사학>

중앙일보 1989.03.15 00:00 종합 3면 지면보기
총장선출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고려대학교에서 발생한 사태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앞이 캄캄해짐을 느끼게 한다.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집기를 부수는 일등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이고 이 모든 일을 민주화 도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쉽게 보아 넘기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제간에, 동창간에, 교수와 직원간에 인화가 잘되는 것을 특히 자랑으로 여겨 오던 전통 있는 명문 사학에서 학내 문제를 앞에 놓고 교수와 학생 및 직원들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 사회에서 이성과 신뢰가 살아 움직이는 영역이 어디 한구석이라도 남아 있는가 하는 절망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남의 일인가>

학생들의 수업 거부에 맞서 폐강을 선언한 교수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양대 석간의 평가가 서로 상반되게 나온 것만 보아도 지금 이 사회에서 이성적 합의의 영역을 확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에 가장 민감하게 대처해야 할 교수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옷에 직접 불이 댕기기까지는 냉소적 무관심 속에 안주하려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이 관망만 할 수 있는 남의 일인가. 비단 대학만의 일인가. 한 사회의 최고 두뇌집단에서 이성이 작동하지 못할 때 사회전체가 마비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사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우리는 이렇게까지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옳게 밝혀 내고 대중적 요법에 만족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대학이 오늘의 지경에 이른 근본원인이 물리적 힘으로 비판적 이성의 힘을 억누르려 한 오랜 군 권 정치에 있었음은 말할 것 도 없다. 이성의 힘은 그 결과 제도권내에서 작동해야 하는 대학에서 대거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지하화 했으며 대체로 권력과 타협을 잘하는 세력이 대학에서 주름잡게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젊은 세대의 눈에 대학의 권위가 실추되었음은 물론 교수 사회 내에서도 사회의 두뇌와 양심의 관리자로서의 대학인의 본연의 자세를 지키려는 측과 대학교수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던 것이 사실이다. 언론 통폐합 이후 언론계에서 나타난 현상이 대학에서는 보다 일찍이 교수 재임용제가 실시되기 시작한 후부터 심각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희생이 된 사람들은 1차적으로 학생과 교수였으나 보다 심각한 결과는 사회에서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예산·경영실적 공개>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의 집합체인 국가공동체 전반에서는 물론 이성적 대화의 개발을 그 존재이유로 삼는 대학에서조차 이성적 대화나 합의의 기저가 무너져 버렸으며 이성을 빙자하며 사적 이기심을 비호하는 궤변이 판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젊은 학생들은 이성의 행사라는 점에서 교수들을 앞지르지 못한다. 일그러진 형태로나마 교수들은 그래도 이성적 사유의 훈련과 경력을 젊은이들보다는 좀더 쌓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불의를 감지해 내는 능력으로는 젊은 학생들이 자기 전공의 좁은 영역에 몰두하는 교수들을 앞지를 수도 있으며 젊음의 오기와 성급함으로 모든 교수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완전불신을 선고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도덕적 본능에 이성적 판단을 종속시키는 젊은이들이 대학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성적 대학의 시도에 앞서 불신의 벽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제도적 개선이라는 구체적 표현을 가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으로는 교수회를 활성화해 학사행정에 관한 한 최고 의결기관으로 기능 하게 모든 행정적 뒷받침을 하고 동시에 학생대표들이 참관 자와 참고인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학생들의 요구가 교수회에서 신중한 고려대상이 되게 하는 등 교수와 학생대표 상호간의 책임감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힘 합쳐 압력 막아야>

둘째로 필요한 것은 대학의 예산 및 경영실적의 공개다. 지금까지는 실제로 학생은 고사하고 교수나 심지어 보직 자까지도 학교의 예산이 어떻게 쓰여지는 지를 알 수 없었고 연구와 교수에 필요한 재정적 뒷받침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지 못했다.

연구비조차도 흔히 위로부터 베풀어지는 시혜와 같은 식으로 분배되는 실태였으므로 실제로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보다는 정치를 잘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셋째로 필요한 것이 교수 공개채용 절차의 보완이다. 형식적으로는 지금도 공개채용 원칙이 채택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공개적 심사가 형식뿐인 경우가 많으며 학생들이 교수채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도 절차의 미흡으로 인한 불공정성이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학생에게 표결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무리이나 후보자의 논문 공개발표 등 심사절차 일부에 참관하고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과격한 요구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첩경일 것이다.

위의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총장이 누가 되는 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며 직선제가 반드시 가장 좋은 방법도 아닐 것이다.

학생들을 대변해서 동창회나 학부모 대표가 이사회와 교수회에서 선정한 대표들과 함께 전형위원을 구성하는 방법 등 대학마다의 사정에 맞는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학이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직원·학생들의 개인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연구와 교육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특수기능 공익집단이라는 사실이 잊혀져서는 안되고 총장으로 선출되는 인사는 한 특정한 대학 내에서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공인으로서 명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대학과 이성의 힘에 대한 위협이 주로 정부측으로부터 왔으나 이제는 그 반대 방향에서 오는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어느 쪽에서부터 오든지 힘으로 이성을 압도하고 대학을 정치도구화 하려는 압력은 모든 대학인이 민족의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생각에서 힘을 합쳐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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