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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인터넷 없이 살기

중앙일보 2018.11.28 00:25 종합 35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1주일간 인터넷 없이 살기.’ 2010년 2월 영국 BBC가 이런 실험을 했다. 대상은 한국이었다. ‘거의 모든 가정이 초고속 인터넷에 연결된 초연결(hyper connected) 국가’라는 이유였다. BBC는 서울 동작구 극동강변아파트에서 참가자를 구했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 숙제를 인터넷으로 제출한다”느니,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는 등 거절이 이어졌다. “인터넷 없이 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주민도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1주일 동안 돌아다닌 끝에 겨우 두 가구의 허락을 받았다. 실험을 시작하고 얼마 안 가 한 가정의 어머니가 당황했다. “교육 정보를 나누는 엄마들 모임을 어떻게 잡지? 늘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었는데.” 또 다른 가정은 장을 보러 나가며 BBC 취재진에게 슬쩍 툴툴거렸다. “가격 비교도 못 하고…. 날씨도 추운데….”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자녀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고 책을 많이 읽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나 보다. 실험이 끝나고 인터넷에 다시 연결하는 순간, 이들은 “안도의 한숨(sighs of relief)을 내쉬었다”고 BBC는 기록했다. BBC는 또 “친구에게 이런 생활을 권해 보겠느냐”고 참여했던 대학생에게 물었다. 답은 “물론”이었다. “겪어 봐야 인터넷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숨 막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시는 국내에 스마트폰이 본격 보급되기 전이었다. 지금은 비교할 수 없는 ‘울트라 초연결’ 사회다. 통신망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그저 ‘중독이 아닌가 해서 인터넷·스마트폰 없이 살기를 해 보는 중’이라는 글이 이따금 올라오는 정도일 뿐이다(인터넷을 끊었다면서 어떻게 블로그에 수기를 올렸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요즘, 시민들이 타의에 의해 ‘유·무선 인터넷과 통신이 끊어진 삶’을 체험했다. KT 서울 아현지사 화재 때문이다. 전화·문자·채팅·SNS·게임에서 길찾기·내비게이션·뉴스 검색·날씨·디지털 쇼핑·송금·전자결제·영화 예매·음식 주문·멤버십 사용·버스 노선 확인·택시 부르기·대리운전 신청까지 뭐 하나 되는 게 없었다. 휴대전화 가족요금제를 선택해 집안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했던 직장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이래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구나.”
 
미국에는 인터넷·통신이 여의치 않을 때 대비한 행동 매뉴얼이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참에 통신 두절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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