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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노인 늘어나는데, 재개발로 아파트만 계속 짓는다면…

중앙일보 2018.11.27 09:00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18)
어느 전통시장의 모습. 부모님이 사는 동네에는 전통시장과 시장 끝에 위치한 식당, 노인복지회관 등이 있다. 이 동네는 부모님께 생활 환경이 좋은 아파트보다 훨씬 편리하고 일상에 재미를 주는 주거 환경이다.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어느 전통시장의 모습. 부모님이 사는 동네에는 전통시장과 시장 끝에 위치한 식당, 노인복지회관 등이 있다. 이 동네는 부모님께 생활 환경이 좋은 아파트보다 훨씬 편리하고 일상에 재미를 주는 주거 환경이다.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80대 중반의 부모님은 서울 외곽 동네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몇 번 이사하긴 했지만 그 동네에서 산 지 50년 가까이 됐다. 이곳은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많고 대부분의 골목이 좁다. 중간중간 새로 지은 다가구주택이 들어서긴 했어도 집 모양이 고전적이고 집 장사가 지은 집이 많다.
 
생활 환경이 좋은 아파트로 옮길 것을 권했더니 그 동네에서 오랜 세월 살아보니 여러 가지가 노인한테 편리하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걸어 5~10분 거리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 따져보았다.
 
우선 아주 활성화한 전통시장이 있다. 오래된 시장이고 규모도 크다. 약 500m에 걸친 시장 골목엔 온갖 먹거리와 과일, 야채, 잡화, 의류를 파는 점포가 늘어 서 있다.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모님이 지나가면 상인들은 인사를 건넨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단골집에서 아주 저렴하게 구매한다.
 
시장이 끝나는 양쪽 골목에는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음식 가격도 대부분 저렴하다. 한 그릇에 3000원 하는 자장면은 맛도 좋지만 양도 많아 노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어머니가 자주 찾는다.
 
배움의 열기로 가득한 노인복지관
어느 노인복지회관에서 노인들의 복약실태 강의 및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모습. 시장 끝 골목에 위치한 노인복지회관은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아버지는 외국어와 서예 공부를 하고 수채화 반 강사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어느 노인복지회관에서 노인들의 복약실태 강의 및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모습. 시장 끝 골목에 위치한 노인복지회관은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아버지는 외국어와 서예 공부를 하고 수채화 반 강사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시장 끝나는 골목에 있는 노인복지관은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배움에 대한 욕구가 있는 어르신들로 넘쳐난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외국어와 서예 공부를 한다. 배우기도 하지만 미술전공을 살려 수채화 반 강사를 하고 있다.
 
수강생은 대부분 할머니인데, 컴퓨터로 추첨해 모집한다고 한다. 그림 공부하려는 어르신이 많지만 교실이 한정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추첨으로 수강생을 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추첨에서 떨어진 어르신은 항의도 하고 막무가내로 수업에 들어오기도 하며 심지어 대성통곡을 하기도 한단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는 복지관이나 근처 지하철 역사 내에서 작품 전시회를 연다.
 
수강생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과 보릿고개를 넘어왔다. 전보를 치던 세상이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분들에겐 아날로그의 정서가 깊게 흐르고 있다. 대부분 험한 세상 살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제야 이루고 있다. 그림 전시회엔 온 가족이 출동하는 그야말로 큰 가족행사가 된다.
 
한강 지류인 중랑천은 과거에 오염이 심하고 장마 때엔 늘 범람 위험이 있던 하천이다. 그 중랑천이 지금은 각종 물고기가 살고 새가 찾아오며 사계절 꽃이 피는 멋진 공원이 되었다. 계절 따라 피는 벚꽃, 장미, 양귀비, 코스모스, 메밀, 억새 길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돼 있다.
 
어머니는 매일 이 길을 산책한다. 이 동네에 수십 년을 사셨으니 친구도 많다. 어머니는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어르신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아침에 집을 나서 중랑천 길을 따라 걷다가 과거에 살았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교회나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무료식사 정보를 어르신들끼리 공유한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위한 무료식사이니 가서 드시지 말라고 했더니 양이 충분해 남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동네 친구분들과 만나 식사하시고 또 동네 한 바퀴 돌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고 집에 들어오시는 일상이 참 재미있다고.
 
친구들과 전철로 하루 여행 즐기는 아버지
시장 끝에 위치한 전철역은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여행 교통 수단이다. 아침에 나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소래포구에 도착해 점심을 드시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인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시는 길은 아버지만의 교통비가 들지 않는 하루 여행 코스다. [중앙포토]

시장 끝에 위치한 전철역은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여행 교통 수단이다. 아침에 나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소래포구에 도착해 점심을 드시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인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시는 길은 아버지만의 교통비가 들지 않는 하루 여행 코스다. [중앙포토]

 
전철역도 시장 골목 끝나는 곳에 있다. 아버지는 평촌과 김포, 강화도 쪽에 사시는 친구분들과 가끔 전철 모임을 가진다. 집을 나서 시장을 지나 경의·중앙선 전철을 탄다. 왕십리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고 한참 내려가면 수원이다. 수원에서 국철로 금정 역으로 가서 4호선 갈아타고 조금 가면 오이도다. 오이도에서 수인선으로 갈아타면 곧바로 소래포구다. 이 소래포구가 친구분들이 모이는 장소다.
 
아침에 나선 길은 이곳에 도착하면 점심때가 된다. 여기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드시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시는 것이다. 집에 오는 길은 수인선으로 원인재역으로 가 인천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계양역으로 가신다. 거기서 공항철도로 서울역으로 온다. 서울 역에서 집까지는 대안이 많다. 서울과 수원 인천지역을 크게 한 바퀴 도는 하루 여행이다. 교통비가 들지 않는 여행이다.
 
보건소가 멀지 않고 동네 의원에는 그동안의 진료기록이 있으니 건강변화를 체크할 수 있다. 의사도 이제 노인 반열에 들었다. 무엇보다 교회가 가까운 것이 두 분께 편리하다. 연립주택 마당을 나서 맞은편 골목을 지나면 바로 교회다. 집을 나서면 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늘 만나는 어르신들이니 시골 마을처럼 집집마다의 사정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요즘 아파트 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동네 이집 저집의 가족사, 경조사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한다.
 
공동체 망치는 도시재생 사업
지금까지 지어진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이미 사람 간의 교류가 근본적으로 차단된 주거형태다.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지만 기존의 커뮤니티조차 해체되고 있어 기존 주거지 개발 계획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사진 KT&G 상상마당]

지금까지 지어진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이미 사람 간의 교류가 근본적으로 차단된 주거형태다.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지만 기존의 커뮤니티조차 해체되고 있어 기존 주거지 개발 계획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사진 KT&G 상상마당]

 
지금 우리는 도시재생 이야기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아주 잘 계획된 도시개발로 인해 오랜 세월 형성된 공동체가 다 망가졌다. 뒤늦게 공동체의 해체가 어떤 사회적 불안과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원래의 커뮤니티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 지어진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이미 사람 간의 교류가 근본적으로 차단된 주거형태다. 고령자가 더 고립되고 소외되는 구조다. 도시계획 이론에 충실한 도시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과거 관 주도형 개발 시절엔 더 쉬웠다.
 
그동안 진행된 도시개발엔 그곳에 사는 사람, 살게 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었다. 지구단위 계획으로 길을 반듯하게 넓히고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건물의 용도와 규모를 정해 획일화한 도시개발 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머지않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노인 1인 가구는 더 증가할 것이다.
 
눈앞에 닥친 고령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정부에서는 ‘커뮤니티 케어’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존의 커뮤니티조차도 해체되는 주거형태로 도시를 개발해 나간다면 초고령 사회는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아있는 기존 주거지에 대한 개발계획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손웅익 건축가 badasp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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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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