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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국과학원 병역특례 주저하던 박정희, 과기처 설득에 OK

중앙일보 2018.11.27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은 서울 창경궁 근처의 과학관에서 개원 업무를 시작했다. 국립서울과학관을 거쳐 2017년 국립어린이과학관이 자리 잡은 곳이다. 개원 업무의 핵심은 홍릉 과학단지에 있는 13만2000㎡(당시 도량형으로 4만 평)의 부지에 홍릉 캠퍼스(현재 카이스트 서울 캠퍼스)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국립어린이과학관의 설계 공모 당선작(왼쪽)과 현재 모습. 과거 국립서울과학관이 있던 자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 학원(KAIS)가 초기 업무를 보던 곳이다. [사진 스케일]

국립어린이과학관의 설계 공모 당선작(왼쪽)과 현재 모습. 과거 국립서울과학관이 있던 자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 학원(KAIS)가 초기 업무를 보던 곳이다. [사진 스케일]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92)
<44> 한국과학원 인재유치 전략
인재 확보 위한 병역특례 제도
군·안보 우선시 정부에서 반대
두뇌 유출 막자는 끈질긴 설득
박정희 대통령 결국 받아들여
과학원 둥지 홍릉 캠퍼스 신설
학생 학업몰두, 연구협력 위해
기숙사 먼저 짓고 본관 나중에
교수 주거와 자녀 교육도 신경

과학원 건설에서 처음 지은 건물은 기숙사였다. 다른 학교와 달리 모든 학생에게 기숙사를 제공하기로 했다. 학교를 시작할 때 강의 시설은 당분간 주변 시설을 빌려도 되지만 기숙사만큼은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학생들이 학업과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과학기술자로서 필요한 개척자 정신을 공유하고 협동생활·연구협력의 분위기를 익히는 데 1년간의 기숙사 공동생활이 유익할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이는 과학원을 과학기술입국(科學技術立國)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과학기술 사관학교로 키우겠다는 구상에도 맞았다. 모든 학생에게 학비를 면제하고 생활비로 쓸 장학금까지 지급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둘째 시설은 본관 건물이었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대학원이 목표이니 건물도 잘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창기 교수들은 개원 업무 뒤에도 늦은 시간까지 공사 현장에서 할 일을 찾았다. 건설 중인 본관 건물에 타설한 콘크리트를 보다 완벽하게 양생하기 위해 물을 뿜어 습도를 맞춰주는 일까지 나서서 했다. 과학원을 위해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그분들의 애착과 헌신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셋째 건물은 교수 연구실과 이에 인접한 실험실이었다. 과학기술은 분야마다 특성이 있으므로 이를 살리려고 애썼다. 교정 너머에 택지를 지정해 교수 사택이 될 아파트도 마련했다. 교수 가족들을 위해 인근 경희대 유치원과 초등학교로 연결되는 작은 길도 마련했다. 교수들에겐 제자 교육만큼 자녀 교육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1973년 1월 경희대 공학동에서 치러진 한국과학원(KAIS) 제 1회 신입생 선발 시험. 학비 면제와 기숙사 제공, 병역 특례라는 호조건에 경쟁률이 5대 1을 넘었다. [사진 카이스트]

1973년 1월 경희대 공학동에서 치러진 한국과학원(KAIS) 제 1회 신입생 선발 시험. 학비 면제와 기숙사 제공, 병역 특례라는 호조건에 경쟁률이 5대 1을 넘었다. [사진 카이스트]

이제 남은 것은 과학원에 인재를 유치하는 대책이었다. 터만 보고서에선 “매년 수백 명의 한국 과학기술 인재가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귀국자는 이 중 일부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세운 것이 과학원이 아닌가. 이에 따라 인재 유출을 막고 과학원이 품을 수 있도록 과학기술처와 과학원은 특단의 대책을 수립했다. 그래서 나온 파격적인 방안이 병역 특례다. 73년 입학할 1기부터 3년간의 군 복무 대신 10주 내의 군사훈련만으로 병역을 마치고 졸업 뒤 연구소나 산업 현장 등에 일정 기간 근무하게 하자는 안이다. 당시로선 놀라운 조건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오자 정부에선 난리가 났다. 군과 안보를 최우선시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인재를 해외에 빼앗기지 않고 과학원에 데려오고 국내에 머물게 하려면 병역 특례가 최선의 방책이라는 과기처와 과학원의 끈질긴 설득에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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