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분배 악화, 완화되고 있다”는 정부의 착각

중앙일보 2018.11.27 00:29 종합 29면 지면보기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정부 정책 노력 등에 힘입어 (분배) 악화세는 점차 완화되는 모습’.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공식 평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양극화 수준을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이 3분기 기준으로 11년 만에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소득 격차가 커졌다는 뜻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는데, 기재부는 이와 결이 다른 평가를 했다.
 
기재부가 판단한 근거는 이렇다. 올해와 지난해 분기별 소득 5분위 배율의 격차가 1분기에는 0.6(5.35→5.95)이었는데, 2분기는 0.5(4.73→5.23), 3분기는 0.34(5.18→5.52)로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일자리·저소득층 지원정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저소득층 소득 상황은 점차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을 곁들였다.
 
소득 관련 통계는 명절·성과급 지급 시기 등 계절적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같은 해라도 1분기와 2분기 수치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같은 분기 기준으로 과거 연도가 어땠는지를 견준다. 주요 통계에 ‘전년 동기 대비’라는 말이 늘 등장하는 이유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런데 기재부는 거꾸로 지난해와 올해의 소득 5분위 배율 차이를 분기별로 단순 비교해 분배 완화라는 결론을 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를 시계열이 아닌 분기별로 비교하는 건 통계의 계절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매 분기마다 5분위 배율이 전년보다 커지고, 11년 만에 가장 악화한 수치가 나왔다는 점이 이번 통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통계 오독’ 논란이 문재인 정부 들어 끊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주문했다. 8~10월 자동차 생산실적 증가, 조선업의 10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탈환이 근거다. 그러나 자동차·조선업계에서는 ‘어디서 물이 들어오느냐’는 반응이다. 주력 산업의 부진이 심화하고, 고용·생산·투자 등에 전방위적으로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앞서 정부는 신규 취업자 증가 폭 급감의 원인으로 생산 가능인구(15~64세) 감소를 꼽았지만, 실업자는 오히려 증가하는 등 앞뒤가 안 맞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구미에 맞는 숫자만 골라 기존 정책을 변호하는 사이에 한국 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곪아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일부 통계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오도하는 청와대 경제팀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적을 정부와 청와대는 아는가.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