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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제까지 정치논리로 수수료 인하할 건가

중앙일보 2018.11.27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신용카드 수수료가 또다시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됐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카드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년부터 중소형 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기로 했다. 연 매출 5억~30억원인 소상공인까지 우대수수료율을 확대 적용키로 한 것이다. 이는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의 93%에 해당하는 규모로, 카드업계는 당장 연 8000억원가량의 순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등 돌린 자영업자 잡기 위한 무리수
최저임금 등 실정 보완 아닌 미봉책
엉뚱한 고통전가 말고 혁신 유도해야

극심한 내수 부진에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당장 생업을 이어가기도 어려운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걸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가뜩이나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카드사 팔을 비틀어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건 시장이 납득할 만한 정공법이 아닐뿐더러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전 세계는 혁신적인 핀테크(IT기술을 결합한 금융) 기업이 내놓는 새로운 서비스로 금융 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지며 자연스레 금융 관련 각종 수수료가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대신 혁신과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카드사와 자영업자, 소비자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거꾸로 핀테크 관련 각종 규제는 움켜쥔 채로 카드 수수료 인하와 같은 비정상적인 시장 개입을 반복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수수료 인하가 곤경에 처한 자영업자를 구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번 수수료 인하로 편의점·식당 등 개별 자영업자가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연 147만~505만원 수준이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지만 최저임금 인상 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번 수수료 인하가 카드사를 희생양 삼아 정부 실정(失政)으로 등 돌린 자영업자의 마음을 사겠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8월 거리로 나선 영세 자영업자들이 요구한 것도 최저임금 정책 수정이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가 아니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단순히 인건비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각종 운영·거래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수요가 줄고 결국 일자리마저 없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수수료 인하 역시 카드사의 대규모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업계 카드사의 올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지난해 대비 25.6%나 줄었다. 이런 와중에 막대한 추가 수수료 부담까지 떠안아 순익이 더 줄어들면 결국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오만한 정책결정도 문제다. 아무리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어도 소비자에 고통을 떠넘기고 그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카드 회원이 누리는 부가서비스가 연회비의 7배 이상으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며 마치 소비자들이 지금까지 공짜 밥을 얻어먹기라도 한 것처럼 합리화했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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