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BTS 부러운 한국 원전

중앙일보 2018.11.27 00:20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어느 분야든 생태계가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인 한류 역시 그 경쟁력은 탄탄한 생태계로부터 나온다. 춤과 노래에 능한 걸그룹·보이그룹을 다년간 키워온 연예기획사가 도처에 있고, 여기에 들어가려는 스타 지망생들이 넘쳐난다. 방탄소년단(BTS)의 등장도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류 인프라와 예비 스타를 버무려 글로벌 스타로 만들어내는 한국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금언이 딱 들어맞는다.
 
원전 역시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이승만 정부 시절 실험용 원자로를 들여오고 한양대와 서울대에 원자력학과를 설치해 인재를 육성하는 데서부터 한국의 원전 생태계가 시작됐다. 나아가 한국은 기술 자립을 통해 한국형 원전 APR 1400을 상업용으로 개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 결과 세계 강대국에만 있는 원전 기술자 인재풀이 한국에도 구축돼 있다.
 
그런데 한국의 원전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KAIST 원자력학과 지원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게 신호탄이었다. 멀쩡하게 돌아가던 원전도 가동을 중단시키고 2030년까지 원전 10기가 폐쇄되며 추가 원전은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기술을 누가 배우려 하겠나. 현업에서도 기술인력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원전을 설계하는 한국전력기술은 탈원전 여파로 담당 직원이 지난해 1062명에서 2030년에는 743명으로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감이 사라지자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력도 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핵심 직원 12명은 지난해부터 UAE 원전 관련 기업으로 이직했다. 원전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의 원전사업 인력도 2112명에서 2030년 1462명으로,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관련 국내 직원이 7012명에서 2030년엔 5008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더구나 해외 원전 인력은 해외 원전 수주에 실패할 경우 1467명에서 2030년 346명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체코를 찾아가 21조원 규모의 원전 세일즈에 나선다고 하는데 글쎄다. 내 자식 먹이지 않는 음식을 파는 격이니 그게 먹힐 수 있을까. 이 정부 들어 이미 영국·사우디아라비아로의 원전 수출이 다 틀어졌다. 탈원전 여파가 아닐 수 없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구가 어렵다. 무너져 내리는 원전 생태계는 그저 한류 생태계가 부러울 따름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