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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100포기하던 시절…온갖 그릇, 김치통으로 총출동

중앙일보 2018.11.26 13:01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14)

“말도 안 되는 가격이죠. 10kg에 5만9900원! 고춧가루값도 안 나오는 특가입니다.”

 
TV를 켜자 호들갑스러운 홈쇼핑 쇼호스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면엔 갓 지은 밥 위에 먹음직한 김치를 쭉 찢어 올려 먹는 모델이 등장한다. 침이 저절로 고이는 순간이다. 해남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배추로 담갔다는 김치, 재깍재깍 재깍재깍 곧 마감이란다. 지금 전화기를 들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밀려온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채널을 돌려본다.
 
이번엔 내 기준으로는 ‘신문물’인 김장 매트를 팔고 있다. 귀퉁이에 각이 잡혀있는 넓고 이상한 그것은 아이들 서넛이 들어가서 놀아도 될 만큼 속이 넓었다. 오호라~ 요즘은 저런 매트 위에 재료를 다 올려놓고 김장을 하는가 보다.
 
왠지 저위에 버무린 양념 속을 올리고 절인 배추에 풍성하게 옷을 입히면 세상에서 젤 맛난 김장김치가 탄생할 것만 같다. 지름신 강령의 순간이다. 바야흐로 김장철인가? 아니, 위쪽 지방은 벌써 김장을 마치고 에헴~ 하는 집도 있겠다.
 
어린 내겐 잔칫날 같았던 김장 하던 날
1980년 중반 김장하던 날. [그림 홍미옥,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1980년 중반 김장하던 날. [그림 홍미옥,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배춧속이 꽉 찬 것 같지 않은데? 아무래도 길 건너 가게로 가야 할 것 같다.” 평소와는 다르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어머니, 바쁘게 오가는 도매상인들과 알뜰주부들, 바닥에 흩어진 배춧잎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던 시장, 그곳은 김장 시장이다.
 
새우젓을 맛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가 싶더니 튼실하고 뽀얀 무에 흠이라도 있나 실눈을 뜨기도 한다. 그 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장을 다닐 때면 늘 보던 장면이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가정주부의 한해 농사라고 해도 과하지 않던 우리의 김장은 이렇게 어머니의 매서운 입맛과 눈썰미로 시작됐다.
 
그리 옛날 같지 않은데도 벌써 30여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겨울을 지나고 대보름을 며칠 넘겨 시장에 파릇하고 고소한 봄동 배추가 선을 보일 때까지 가족의 식탁을 책임져 줄 김장이라는 큰일은 몽땅 주부의 몫이었다. 그때만 해도 재래시장엔 배달 오토바이와 미니 용달도 흔치 않았던 모양이다.
 
시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이 리어카에 배추와 무를 가득 싣고 집 마당에 부려놓곤 했다. 내 기억에도 배추 100포기는 기본으로 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처럼 김치냉장고도 없고 소도시에 살던 우리 집은 김치 항아리를 묻을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100포기도 넘는 김치를 보관하려니 집 안에 있는 온갖 그릇을 총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빨간 플라스틱 통, 은빛 스테인리스 김치통, 장독대에 올망졸망 놓여있던 항아리 등등.
 
동네에서 손맛이 매섭기로 소문난 어르신과 무채를 유난히 잘 썰어서 초빙(?)된 친척 아주머니들이 한데 모였다. 별 도움이 될 건 같진 않지만 제대 후 시간이 남아돌던 오빠와 그야말로 양념 통이나 나르던 단발머리 고등학생인 나까지! 어린 동생은 마치 명절 전날처럼 어수선한 분위기가 신이 났는지 하굣길에 보온 도시락통을 흔들어대며 부엌으로 뛰듯이 들어온다.
 
싱겁다, 아니 삼삼하다, 아니다, 젓국을 더 넣어야 한다 등등 저마다의 솜씨 자랑이 벌어지던 김장 하던 날. 식구들의 겨울을 준비하던 정성스럽고 떠들썩하던 그 광경이 눈앞에 지나간다. 요즘 주방에선 구경하기 힘든 조미료 봉지, 두툼한 흰설탕 봉투, 김장을 마치고 따끈하게 속을 달래줄 인스턴트 커피 병까지.
 
2018년 11월. 김장철을 맞이한 동네 시장 모습. [사진 홍미옥]

2018년 11월. 김장철을 맞이한 동네 시장 모습. [사진 홍미옥]

 
매운 김치는 달콤하고 따뜻한 이웃사랑으로 변신하고
요즘엔 김장 100포기라고 하면 다들 기함할 수준이다. 아까 그 홈쇼핑에서 팔던 10kg이면 충분한 집도 많고 아니면 열 포기 이내로 간단하게 끝내곤 한다. 확실히 김장에서도 많은 게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지인 중에선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텃밭 농사를 하시는 분이 있다. 하지만 이 텃밭의 무 배추를 온전히 어려운 이웃을 위한 김장김치를 위해 가꾸고 있다.
 
따뜻한 이웃사랑을 품고 피어나는 배추, 무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나 마나 그 무는 꿀처럼 달고 배추는 깨소금처럼 고소할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나 기사를 봐도 그렇다. 김장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고 그 김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소외된 이웃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 가족만의 김장이 주위를 돌아보는 김장으로 바뀌는 거 같다. 매운 김치가 이렇게 달콤한 이웃사랑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감동이다.
 
은퇴 후 이웃봉사를 위해 배추를 경작하는 전명옥 님의 텃밭 사진. [사진 전명옥]

은퇴 후 이웃봉사를 위해 배추를 경작하는 전명옥 님의 텃밭 사진. [사진 전명옥]

 
2013년 유네스코에서는 우리의 김장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렸다. 독창적인 식재료와 나눔의 정서를 등재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부쩍 추워진 어제, 먼지를 이고 있던 김치통을 정리했다. 요즘엔 100포기 김장이라고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기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눈처럼 하얀 밥 위에 빨갛게 버무려진 김치는 거부할 수 없는 공인 밥도둑 아니던가?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고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드로잉팁
스크래치(scratch) 기법의 추억을 소환하고 싶으세요?
 
어릴 적 색색의 크레용으로 덧칠한 도화지 위를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면 나타나는 알록달록한 선을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스마트하게 폰으로 추억의 스크래치를!
 
앱 실행 후 되도록 다양한 색으로 화면을 채워준다. 거의 모든 앱에서 가능하다. [사진 홍미옥]

앱 실행 후 되도록 다양한 색으로 화면을 채워준다. 거의 모든 앱에서 가능하다. [사진 홍미옥]

 
다음에 레이어를 한 장 만든 후, 전의 화면을 잠근다(눈을 감기는 것). 그리고 화면을 검은색으로 채워준다. [사진 홍미옥]

다음에 레이어를 한 장 만든 후, 전의 화면을 잠근다(눈을 감기는 것). 그리고 화면을 검은색으로 채워준다. [사진 홍미옥]

 
이젠 지우개를 선택해서 줄을 긋거나 문양을 그려 본다(아까 감겼던 눈을 띄워주는 것 잊지 말기). [사진 홍미옥]

이젠 지우개를 선택해서 줄을 긋거나 문양을 그려 본다(아까 감겼던 눈을 띄워주는 것 잊지 말기). [사진 홍미옥]

 
바탕에 오묘하게 매력 있는 선들이 추억과 함께 소환된다. 예전 미술 시간엔 스크래치 그림을 그리고 나면 손에 온통 검은색이 묻어났지만 폰 그림은?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 작가 keepan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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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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