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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돈 국구’라 비난받던 비례대표, 왜 늘려야 하나

중앙일보 2018.11.26 00:26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비례대표 의원이다. 이 대표는 1번, 윤소하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4번이다. 이들은 한국 정치의 한 축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이들이 제도권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가능한 모든 목소리를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치가 건강하다. 비례대표제는 좋은 장치다.
 

여론은 국회의원 줄이라 하지만
국회의원 없애면 나라가 잘될까
거수기 통법부 바람직하지 않고,
야대에 발목 잡힌 대통령도 불행
특권 줄여서라도 의석 늘리고
대통령-야당 협치 찾는 게 정도

그렇지만 비례대표에는 좋지 않은 추억이 많다. ‘전국구(錢國區)’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돈을 내고 산 ‘돈 국구’ 국회의원이란 말이다. 1988년 체제가 출범한 이후에도 그런 의혹이 이어졌다. 중앙선관위마저 당시에는 ‘필요악’으로 생각해 눈감았다. 명단은 당 총재 마음대로였다. 이제 ‘과거사’가 된 것 같지만, 사람들에게는 나쁜 기억으로 남았다.
 
그 탓인지 비례대표는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47명이다. 현재 국회 구성의 틀을 만든 13대 총선 때는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3분의 1인 75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야금야금 줄어들어 반 토막이 났다. 전문성을 살린다는 명분이 무색하다. 지역구별 인구 편차를 줄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요구에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지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 탓이다. 지역구를 유지하면서 편차를 줄이려니 만만한 게 비례 의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의원만 탓하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1995년 최소-최대 선거구 인구 편차를 4 대 1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그러다 2001년에 3 대 1, 2014년에 2 대 1 이하로 줄이라고 했다. 사람은 점점 더 대도시로 몰린다. 대도시 선거구가 늘어나고, 지방 선거구는 줄어드는 게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니 지방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에 문제가 생겼다.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홍천 선거구는 서울 면적의 10배다. 군청을 한 바퀴 도는 데 314㎞. 서울에서 부산 거리(325㎞)와 비슷하다. 강원도의 8개 선거구 중 2개가 5개 군이 묶인 선거구다. 지역구민이 의원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들다. 여기서 어떻게 더 줄이나.
 
그런데도 여론은 국회의원을 줄이라고 한다. 꼴 보기 싫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마다 신뢰도가 꼴찌다.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보다 못 믿는다는 조사도 있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면 속이 시원할까. 국회의원을 아예 없애버리면 나라가 잘될까. 권력자들은 대개 견제세력을 누르려 한다. 간섭을 참지 못하는 게 권력의 생리다. 교묘히 정치 혐오를 부추기며 의회의 힘을 뺀다. 그렇지만 의회란 효율로만 따질 수 없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유신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례대표를 없애버렸다. 대신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정회 의원으로 국회의 3분의 1을 채웠다. 5공 시절에는 전국구 의원이 3분의 1이었다. 그 가운데 3분의2를 지역구 의석이 가장 많은 정당에 먼저 배정했다. 나머지를 다른 정당에 나눠줬다. 명분은 대통령의 국정 안정이다. 입법부를 ‘통법부(通法府)’로 만들어야 정치가 안정되나.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 배분 방식이 폐지된 건 92년 14대 총선이다.
 
얼마 전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선거법을 다시 손보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여야 지도부와 환담하면서 “중앙선관위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2015년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낸 권고안을 말한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하자는 제안이다.
 
여야 모든 정당이 지난 대선 때 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전문가들 의견도 대부분 일치한다. 그런데 최근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에 발을 빼려는 움직임이 있다. 현행 제도가 거대 양당에는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군소정당만 애가 탄다.
 
한국당은 지역구에서 동반 당선하는 중·대 선거구제를 원한다. 5공 시절 즐겨본 제도다. 현역 의원이 유리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연동형을 도입하면 민주당이 비례의석을 얻기 어려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지지율이 언제 변할지 누가 아나. 하루 앞을 모르는 게 정치다. 내각제가 아니란 이유도 든다. 그러나 대통령제라도 통법부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만 하는 야대(野大)에 발목 잡힌 대통령도 불행하다. 국회를,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 함께 가는 게 바른길이다.
 
문제는 의석이다. 현재 비례의석으로는 득표율대로 의석을 나눌 수 없다. 권역별로 나눠 지역주의를 풀어갈 방법도 없다. 지역구를 줄이는 데는 한계에 부닥쳤다. 의석을 늘려야 한다. 없애면 모를까 지금 같은 맛보기 비례대표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보좌 인력 공유 폭을 넓히고, 다른 특권을 줄여서라도 의석을 늘리는 걸 검토할 때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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