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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전해지는 두툼한 도금의 매끈한 감촉

중앙선데이 2018.11.24 02:00 611호 22면 지면보기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92> 로얄&컴퍼니의 수전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꼭 들르는 곳이 화장실이다. 하는 일이란 뻔하다. 닦고, 씻고, 싼다. 반복의 일상은 제 발로 걷지 못할 때까지 이어질게다.  
 
사람들의 아름다움은 화장실에서부터 비롯된다. 용모가 빛나기 위해선 맨얼굴을 다듬고 냄새를 지우는 게 순서다. 이곳에서만 속을 비우는 게 허용된다. 싸는 일은 아무 데서나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앉아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밀렸던 신문과 책도 읽는다. 외부의 시선이 차단된 밀실의 온전한 여유를 누릴 기회다. 화장실은 하루를 더하기 위해 비우고 초기화시키는 정화의 공간임이 틀림없다. 이토록 중요한 장소는 쾌적하고 아름다울수록 좋다.  
 
고급 호텔과 부자들의 집은 공통점이 있다. 화장실이 크고 깔끔하며 편리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멋진 예술품들이 놓여있는 점도 같다. 이런 곳을 둘러봤다면 “우리집 안방보다 더 좋더라”라는 볼멘소리나 감탄을 흘리게 될 터이다.  
 
강릉 씨마크 호텔의 화장실은 내가 겪어 본 최고라 할 만했다. 격벽이 없고, 툭 터져 있으며, 전면은 유리창이라 밖이 다 보인다. 욕조와 변기의 세련된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 변기에 앉으면 동해 바다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의 쾌감은 볼일의 후련함과 공명되어 증폭된다. 나오는 것은 감탄뿐이다. 세상에, 닦고 씻고 싸는 일이 이토록 각별할 수 있다니! 당연한 일상의 반복도 즐거움이 되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화장실이 편하고 쾌적해야 하는 이유
중국의 부자들이 집 짓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인테리어가 기가 막혔다. 거실 안쪽에 수로를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하고, 이태리산 대리석으로 치장을 했다. 호사의 극치는 화장실이었다. 세면대와 변기는 옥으로, 수전(水栓)은 황금으로 치장했다. 금 수도꼭지와 금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에도 금가루를 섞을 기세였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따라하면 안 된다. 이는 천박한 과시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화장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똥은 돈의 상징이다.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해 부를 접대한다는 생각의 실천이라면 수긍될지 모른다. 작은 습관에서 커다란 결과가 얻어진다는 경험론은 흘려버릴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의 호사가 화장실까지 뻗쳤다 해도 고개가 끄덕거려질 만 하다.  
 
화장실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넘치고 넘친다. 우선 사용 빈도가 높은 생활공간이라서다. 멀리 있는 행복보다 몸이 느끼는 쾌적함을 먼저 챙겨야 한다. 춥고 피곤한 날, 따뜻한 물이 담겨있는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보다 소박하고 절실한 기대는 없을 거다. 어쩌다 한 번의 강렬함을 기다리기엔 너무 멀다. 우리의 몸은 대단하지 않아도 반응하며, 반복되는 쾌감을 더욱 원한다. 몸과 물건이 만나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며 확실하게 반응하는 곳은 화장실 말고 없다.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눈과 코, 손과 몸에 전해지는 오감 충족을 고려해야한다. 편리한 기능과 아름다운 디자인은 필수다. 수도꼭지와 샤워기 세면대와 변기, 이를 둘러싸고 있는 벽면의 타일까지 일체화된 느낌이면 좋다. 구체적으로 이런 거다. 도기 표면은 매끈하고 치밀하며 수전의 정교한 디테일과 재질의 안도감이 어울려야 완결이다.  
 
로얄&컴퍼니 제품에 담긴 예술적 감수성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닐 때마다 다양한 세면대와 욕조, 변기의 디자인에 놀랐다. 당연한 필요를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역량 있는 디자이너가 참여해 멋진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위스의 공중 화장실에서 본 간결한 구조의 소변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의 키에 맞추어 높게 단 소변기에 오줌발을 적중시키느라 힘들긴 했다. 소변기도 그저 그런 천편일률의 디자인을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수전은 또 어떤가. 스테인리스강의 크롬 광택으로 빛나는 재질은 비슷하다. 물은 밑으로 떨어지고 손잡이는 사람이 쥘 수 있도록 위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전제도 똑같다.  
 
그런데 기능을 담은 디자인은 놀랍다. 장식을 걷어낸 단순한 형태가 마치 건축적 조형성을 담아놓은 듯 했다. 물건의 이력을 보니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에 어울리는 수전까지 디자인한 거다. 역시!란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아는 것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남의 나라에 있는 물건이거나 이미 단종된 디자인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다. 쓸 만한 국내 제품을 찾는 게 순서다. 나의 선택은 ‘로얄&컴퍼니’다. 앞서 말한 도기 표면이 매끈하고 치밀하며 수전의 금속재질과 정교한 디테일이 안도감을 준다는 이유다. 이들 물건을 직접 보았을 때 생활용품이 아니라 레디 메이드의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물건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지 놀랄 정도다.
 
내겐 ‘갤러리 로얄’에서 꽤 오랫동안 강의를 한 이력이 있다. 자연스레 일본 토토(TOTO)사와 일찍 기술제휴해서 욕실용품의 국산화를 이뤄낸 이 회사를 드나들었다. 처음부터 이곳의 분위기가 남다르게 여겨졌다. 주력 상품인 화장실용 도기와 욕실용 수전을 진열한 면적보다 디자인 책과 예술품이 놓인 면적이 더 컸으니까. 건물의 3분의 1은 갤러리와 문화 아카데미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관심과 방향을 실감했다. 예술적 감수성에서 자사의 디자인이 나온다는 확신이 있었던 거다.  
 
이후 로얄&컴퍼니는 예술경영에 더욱 힘써 작가와 전문 장인을 연결시키고, 예술과 디자인을 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작업이 이루어졌고 시설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관심 가는 물건은 수전이다. 수전은 일반적으로 황동 재질에 크롬 도금을 해 만든다. 금속 제품은 눈으로 보고 만져 보기만 해도 재질의 특성과 도금의 두께를 알아챌 수 있다. 본질이 배어나와 외부로 드러난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마치 독일에서 만든 기계 제품에서 풍겨나오는 단단한 치밀함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로얄&컴퍼니의 수전은 유난히 묵직하고 도금의 두께가 두텁게 느껴진다. 작동 부위의 움직임도 부드럽다. 내부 구조를 몰라도 어디 하나 소홀함이 없다는 감각적 판정을 내리게 된다. 오랜 세월 수전만 만들어온 전문 장인이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하는 품질을 얻기 위해 전량 국내에서만 생산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세월의 더께가 묻은 오래된 아파트의 화장실 구조와 내용물이란 안 봐도 뻔하다. 이들 제품을 보고 우리 집 화장실의 수전을 통째로 바꾸고 싶었다. 유난히 깔끔을 떠는 마누라가 몇 년 전 바꾼 수전들이 아직 멀쩡하다. 화장실은 손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용 빈도가 더 잦은 주방의 수도꼭지를 갈아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시장에서 본 로얄&컴퍼니의 제품 하나를 골랐다. 특별한 정보가 있던 것도 아니다. 눈에 확 뜨이는 물건 하나를 찍었을 뿐이다. 목이 긴 백조를 연상시키는 ‘스완’이었다. 둥근 곡선의 흐름이 아름다웠다. 냉온수를 조절하는 레버의 길이와 포름이 남달랐다. 굿 디자인상을 수상한 이력을 알아챘다.  
 
주방의 수도꼭지를 하나 갈았을 뿐인데, 분위기가 신선해졌다. 집을 바꾸는 것은 곤란해도 생활의 편리와 아름다움을 더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소확행’의 즐거움을 마누라가 전해줬다. 10만 원 정도 투자해서 다발로 칭찬받았다는 건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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