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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vs. AKB

중앙선데이 2018.11.24 02:00 611호 29면 지면보기
culture talk
BTS

BTS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맞물려 일본 내 ‘혐한’ 기류가 재발했다. 최근 일본 투어를 시작한 BTS도 TV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출연이 취소되고, 후지TV ‘FNS가요제’, NHK ‘홍백가합전’ 등 검토중이던 메인 음악방송 출연도 무산됐다. 지민의 원폭 투하 프린트 의상 착용과 RM의 광복절 트윗 내용을 극우파들이 문제삼은 것이 발단이다. 이후 DVD 대여점에서 BTS를 비난한 손님을 협박한 알바생의 대학 홈페이지에 학교 폭파 위협 게시글이 올라오는 등, 한류 팬들과 극우파 간 대립이 험악해지고 있다. 대중음악 분야에서 일본이 미국 다음으로 큰 거대 시장이라는 점에서 민감한 문제다.  
 
이 와중에 눈길을 끄는 건 최근 데뷔한 걸그룹 ‘아이즈원’이다. 최초의 한일 합작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Mnet ‘프로듀스48’을 통해 선발된 12명인데, 일본인 멤버가 3명에 일본어 곡도 앨범에 수록됐다. 서바이벌 방송 때부터 연습생들이 J팝을 부르고, 한국인 출연자들이 당연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노출됐다. 일본인들은 이미 ‘AKB48’그룹으로 활동중인 인기 멤버들이었는데, 미완성 상태로 데뷔해 성장을 응원하는 게 일본 아이돌의 컨셉트인 탓에 오히려 뒤처진 실력으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전국에 걸친 ‘AKB48’그룹이 매년 실시하는 총선거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의 정상급 멤버들이 왜 굳이 한국에 와서 눈물을 쏟았을까.  
 
여기서 일본 아이돌 비즈니스의 전략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거대한 자국 시장을 보유했기에 굳이 해외진출을 도모하지 않던 태도를 바꿔 아시아권으로 적극적인 세력 확장에 나선 것이다. 단순한 특정 아이돌의 해외원정 형태가 아닌 포맷 수출이다. 지난해 태국에서 탄생한 BNK48이 대표적이다. ‘AKB48그룹’을 기른 거물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가 프로듀스한 현지 아이돌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태국 아이돌 시장 자체를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BNK의 폭발적 인기는 일본 아이돌 문화와 태국 문화의 절묘한 조화 덕으로 분석된다. AKB곡의 태국어 버전이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올렸고, 일반인이 따라 부른 동영상 업로드 경쟁은 사회현상이 됐다. 방콕시내 쇼핑몰에 전용극장도 지어졌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JKT48(인도네시아 자카르타), TPE48(대만 타이페이), MNL48(필리핀 마닐라), MUM48(인도 뭄바이), SNH48(중국 상하이) 등이 이미 활동중이다.  
 
사실 해외원정 중심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팬덤을 확보한 톱 아이돌이 아니라면 장사가 안된다. 출장비, 현지 코디네이터 확보, 비자 취득 등 장애도 많다. 반면 이미 숙성된 국내모델을 활용한 현지 비즈니스는 훨씬 안정적이다. 현지인 멤버들이니 BTS처럼 정치외교적 영향을 받을 일도 없다. 해외 원정의 막대한 비용 없이 프로듀싱 라이선스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저위험 고수익 비즈니스’인 것이다.  
 
물론 한국의 ‘프로듀스48’은 다른 경우다. 자발적인 ‘AKB48그룹’ 벤치마킹으로 시작해 AKB 멤버까지 가세한 ‘아이즈원’이 일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역습’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 일본식 아이돌 문화가 깊숙이 침투 중이란 것도 직시해야 한다. 케이블 방송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어 노래를 불러도 위화감이 들지 않고, 미완성 상태부터 즐기는 일본식 아이돌 시스템이 이미 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세계를 제패해온 일본이 대중음악시장까지 접수에 나선 셈이다. BTS를 위시한 한류 돌풍에도 원조 ‘콘텐츠 대국’의 존재감이 굳건한 이유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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