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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고 남겨두는 것

중앙선데이 2018.11.24 02:00 611호 34면 지면보기
김하나의 만다꼬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 엄마가 ‘학부모 1일 교사’로 우리 반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집에서만 보던 엄마가 교단에 서서 반 친구들에게 강의를 하니 나로선 처음에 좀 어색했지만, 엄마는 청소년 카운슬링 과정을 이수한 바 있고 말씀도 잘하는 편이어서 재미있게 들었다. 그때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중 이것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두 사람에게 생선이 한 상자씩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매번 그중 가장 크고 싱싱한 생선을 골라서 먹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가장 크고 싱싱한 것을 먹는 기쁨을 맨 마지막에 누리기 위해 매번 가장 작고 덜 싱싱한 것부터 골라서 먹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첫 번째 사람은 늘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생선만을 먹은 셈이고, 두 번째 사람은 마지막까지 가진 것 중 가장 안 좋은 생선만 먹은 셈입니다. 그러니 첫 번째 사람이 두 번째 사람에 비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대략 이런 요지의 이야기였다. 왜그랬는지 나는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고 늘 첫 번째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살면서 좋은 것을 아껴두었다가 못 쓰게 된 적이 있었고, 잘 넣어둔다고 깊은 곳에 보관했다가 잊어버리는 바람에 무용지물로 만든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의 저 이야기를 떠올리며 좋은 것을 미루기보다는 현재에 잘 활용해야지 마음먹곤 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물건에 대한 교훈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이미 가진 것들의 좋은 점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뜻 이 이야기는 미당 서정주의 이 시론과 반대되는 듯도 하다. ‘바닷속에서 전복 따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 전복도 제일 좋은 건 거기 두어라’  
 
하지만 앞서 엄마의 이야기와 이 이야기에서 ‘제일 좋은 것’은 가리키는 바가 다르다. 이 시론에서 말하는 ‘제일 좋은 것’은 여러 가지 병렬적인 것 중 제일 좋은 것이 아니라 시 창작의 원천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일컫는 말이리라. 가수가 노래할 때 제 가진 능력의 100퍼센트를 다 써버리면 좋은 노래로 들리지 않는다는 말과도 통할 것이다.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미당의 시론은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남겨두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세상의 먼 곳들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하려다 못한 일들, 그 도시에서 가려다 못 간 곳들이 생겼다. 그것들을 남겨두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라고 위안하면서.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그곳들을 다시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가 결국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곳들은 몇 번이고 다시 가서 정말로 남겨뒀던 일들을 하기도 했다.  
 
2주에 한 번씩 ‘김하나의 만다꼬’를 쓰면서, 언젠가 좋은 시점에 쓰려고 남겨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늘 마지막은 갑작스레 다가오고 남겨둔 이야기들은 쓰지 못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생선을 먼저 먹지 않은 일이 될지,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를 위한 여지가 될지 지금으로선 모를 일이다. 이렇든 저렇든, 그동안 이 지면에 글을 쓰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부디 그려셨기를.  
 
브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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