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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중 하나 골라야 했던 맥주, 지금은 수백가지로

중앙일보 2018.11.22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4)
대형마트 맥주 판매대 앞에 서니 머리가 아득해진다. 선반 가득 알록달록한 맥주들이 줄지어 있고 반대편 냉장고 안에도 처음 보는 맥주들이 한가득 대기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맥주를 살 때 전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카스’ 아니면 ‘하이트’였으니까. 언제부터인가 마트의 맥주 종류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제 신제품 따라잡기를 포기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맥주가 왜 갑자기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일까?
 
일제로부터 시작된 맥주 제조 역사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에 있는 ‘대한민국 맥주의 시초’ 기념물. [사진 황지혜]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에 있는 ‘대한민국 맥주의 시초’ 기념물. [사진 황지혜]

 
이 땅에 처음 맥주가 들어온 시기는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1년 강화도에 정박한 미군 함에서 몇 병의 맥주가 전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에서 들어온 물건 중에 맥주가 있었다.
 
한반도에서 최초로 양조 된 맥주도 일본에 의해서였다. 1933년 8월 대일본맥주가 서울 영등포에 조선맥주를 설립하면서 한국에서 맥주 제조가 시작됐다. 같은 해 12월 역시 일본 기린 맥주에 의해 영등포에 쇼와 기린 맥주가 문을 열었다. 쇼와 기린 맥주는 1948년 동양 맥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 일본 맥주 회사들은 광복 이후 미군정에 귀속됐다가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민간의 손에 넘어왔다. 조선맥주가 있던 최초의 맥주 공장 자리는 지금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기념물이 남아있다.
 
또 쇼와 기린 맥주 공장 자리는 1997년 오비맥주가 경기도 이천으로 이전하면서 영등포공원이 됐다. 영등포공원 중심에는 최초의 담금 솥이 남아 맥주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비맥주 공장터였던 영등포공원에 남아있는 담금솥. [사진 황지혜]

오비맥주 공장터였던 영등포공원에 남아있는 담금솥. [사진 황지혜]

 
껍데기만 바뀐 맥주
크라운 맥주와 OB맥주, 그리고 하이트, 오비 라거, 맥스, 카스…. 60년 이상 우리 곁에 있어 준 친구 같은 맥주들이다. 몇 번의 최대주주 손바뀜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일본강점기부터 시작된 두 개 회사에서 만든 맥주다.
 
두 맥주 회사는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다양한 마케팅, 그리고 인수합병으로 경쟁했다. 1993년 조선맥주가 하이트 맥주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지하 150m 암반수로 만든 맥주’라는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한 이른바 ‘페놀 사건’ 때문에 자회사였던 OB맥주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OB맥주에 수질 오염의 주범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면서 하이트는 맑은 물로 만든 맥주라는 것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하이트 맥주가 맥주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후 배우 박중훈을 앞세운 오비 라거 광고가 대히트를 치면서 시장 점유율을 치고 올라왔고 카스는 젊은 맥주로 포지셔닝 하는 등 맥주 업계는 거의 같은 맛의 맥주를 가지고 마케팅만으로 시장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마케팅이 중요해지면서 1995년 동양 맥주는 맥주 브랜드에 따라 오비맥주로 사명을 바꾸고 이어 1998년 조선맥주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IMF 때 맥주 업계는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OB맥주는 외국 기업에 매각되고 진로그룹이 내놨던 카스 역시 외국 기업의 품으로 들어갔다. 이후 여러 번 최대주주가 바뀌었던 OB는 현재 세계 최대 맥주 기업인 AB인베브의 100% 자회사고 하이트는 진로와 합병해 하이트진로가 됐다. 2014년 롯데주류가 클라우드를 출시하면서 한국 맥주 시장은 대기업 3사가 양분하고 있다.
 
진짜 우리 맥주 역사가 시작된다
두 회사가 만든 비슷한 맛의 맥주를 소주에 말아 먹고, 위스키에 말아 먹고, 보드카에 말아 먹던 주당들에게 비로소 이 땅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맥주가 소개된 것은 2002년이 되어서다. 이때부터 시작된 한국 맥주 다양성의 역사는 규제 완화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다양한 맥주. [사진 맥파이 제공]

다양한 맥주. [사진 맥파이 제공]

 
2002년 매장에서 직접 만든 맥주들이 ‘하우스 맥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생산량이 큰 대기업들만 맥주 제조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맥주 만드는 기계가 훤히 보이는 독일식 맥줏집들이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 생겨났다.
 
처음 맛보는 필스너, 바이젠, 둔켈의 맛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열풍처럼 번져나갔다. 그러나 2~3년 만에 유행이 사그라졌다. 당시 소규모로 맥주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매장밖에 유통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업이 규모를 키울 수 없었다. 또 맥주 전문 인력이 모자랐던 탓에 맥주 품질이 유지되기도 어려웠다.
 
잠잠했던 한국 맥주 시장은 2010년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외국인들이 주축이 돼 크래프트 웍스, 맥파이 등 수제 맥주 펍들이 들어서면서다. 이 펍들은 큰 맥주 공장에 위탁해서 개성 있는 맥주를 생산하면서 새로운 맥주 맛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미국 수제 맥주의 수입도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은 신세계를 맛보게 됐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수제맥주 펍 ‘맥파이’. [사진 맥파이 제공]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수제맥주 펍 ‘맥파이’. [사진 맥파이 제공]

 
이어 2014년 소규모 맥주 업체의 발목을 잡았던 외부 유통 금지 규정이 풀리면서 맥주 양조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4년 만에 양조장이 100개를 넘어섰고 전국에 수제 맥주 전문점도 잇달아 생겨났다. 다양한 맥주에 대한 시장 수요가 확인되자 대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맥주를 수입해 마트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대기업 맥주, 하우스 맥주에 이어 이제 한국 맥주의 세 번째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획일적인 맥주가 아니라 한국 스타일로 재해석한 독일식, 영국식, 벨기에식 맥주가 나온다. 또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오미자 맥주, 깻잎 맥주, 유자 맥주 등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다.
 
개성 있는 ‘진짜배기’ 한국 맥주 역사가 시작된 것은 이제 고작 4년 남짓이다.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아기 같은 한국 수제 맥주지만 내딛는 발걸음은 당당하다. 성장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맥주 종주국에 수출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다양한 맥주를 접한 청년들이 맥주 양조사를, 국제 맥주 대회 심사위원을, 맥주 소믈리에를, 또 맥주 설비 제조 전문가를 꿈꾼다.
 
미국에서는 수제 맥주가 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6300개가 넘는 맥주 양조장이 설립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5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한다. 한국 맥주가 그려낼 미래가 기대된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jhhwang@bepla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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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혜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필진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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