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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조 굴리는 그의 조언 "한국, 자금 빼기 너무 쉽다"

중앙일보 2018.11.22 14:44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돈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빼 왔다. 미국 증시가 출렁였던 지난 10월도 예외는 아니었다. ‘ATM(현금 입출금기) 코리아’란 꼬리표가 언제나 한국 증시에 따라붙는 이유다.
 

앤디 버든 캐피탈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 인터뷰
시장 출렁일 때 가장 먼저 외국인 자금 빠져나가는 한국
꾸준히 배당 올리는 기업에 혜택 가도록 정책 바뀌어야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작아

한국을 방문한 앤디 버든 캐피탈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를 21일 인터뷰했다. 캐피탈그룹은 1931년 설립된 자산운용사다. 운용 자산 규모는 1조8700억 달러(약 2110조원)에 이른다. 관리자산 규모로는 세계 6위의 자산운용사다. 캐피탈그룹은 가치투자 부문(잠재력 있는 기업에 초기부터 장기에 걸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투자 방식)에서 원조격인 운용사다. 버든 CIO에게 한국 금융시장이 ‘ATM 코리아’ 오명을 벗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물었다.  
방한한 앤디 버든 캐피탈그룹 최고투자책임자를 21일 인터뷰했다. [사진 캐피탈그룹]

방한한 앤디 버든 캐피탈그룹 최고투자책임자를 21일 인터뷰했다. [사진 캐피탈그룹]

 
버든 CIO는 “외국인 투자자가 급하게 돈을 넣고 빼더라도 세금이나 규제 같은 ‘벌칙’이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 매우 적고, 특정 산업(IT 수출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지난 10월 한국 증시에서 유독 많은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유가 무엇일까.
“10월 한국 시장에서 대규모 매도가 이뤄졌다. 이로 인해 한국 증시가 큰 폭으로 폭락했는데, 이렇게까지 주가를 급락시킬 만한 한국 시장에 대한 새로운 변수와 정보는 사실 없었다. 그런데도 폭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한국은 매우 접근성이 높은 시장이다. 팔고 나올 때 사실상 벌칙(패널티)이 없다. 단기간에 사고팔아야 하는 투기 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접근성이다. (10월 한국 주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그리고 한국은 수출의 20~25%를 중국에 의존할 만큼 중국 변수에 많이 노출된 시장이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을 중국의 대체(프록시) 시장으로 본다. 중국이 흔들리면 한국에서 돈을 빼는 식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으로 인한 펀더멘털(기초 경제지표) 변화가 10월 한국 증시의 변동성을 키운 요소라고 본다.”
 
다른 주요 신흥국에 비해 주식ㆍ채권ㆍ외화를 사고팔 때 매기는 세금이 적고, 외국인 자금 유출입에 대한 규제 수준이 낮다는 걸 지적한듯하다. 한국이 ‘ATM 코리아’란 오명을 벗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금융 당국에선 10월 증시 급락을 계기로 증권거래세 인하 또는 폐지를 검토한 바 있다.  
“시장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지금으로도 충분하고 넘친다. 부족한 것은 없다. 다만 단기 투자자가 아닌 장기 투자자를 끌어들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배당이다. 배당을 억지로 높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올해 배당을 0%로 했다가 내년 5%로 올리란 뜻이 아니다. 배당이 꾸준히 늘어나는 시장이라는 인식을 투자자에게 심어줘야 한다. 올해 0.1%, 내년 0.2% 등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장기 투자자는 가장 중요한 건 단기 차익보다는 배당 같은, 꾸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수익이다. 배당을 꾸준히 늘려온 기업은 사업을 튼튼하게 운용하고 있는 데다 투자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장기 투자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다. 기업이 배당을 꾸준히 올리고, 이렇게 하는 회사에 혜택이 가도록 정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영국과 호주가 그렇다. 꾸준히 배당을 늘리는 회사에 혜택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앤디 버든 CIO는 한국의 저배당, 수출 정보기술(IT) 기업 같은 산업 쏠림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진 캐피탈그룹]

앤디 버든 CIO는 한국의 저배당, 수출 정보기술(IT) 기업 같은 산업 쏠림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진 캐피탈그룹]

 
배당 정책 외에도 한국 시장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다양성이다. 산업 중심을 정보기술(IT) 수출 제조업 등 한 곳에만 두지 말고 다양화된 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장기 투자자 입장에선 긴 안목을 가지고 여러 산업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시장이 이른바 ‘팡(FAANG, 페이스북ㆍ애플ㆍ아마존ㆍ넷플릭스ㆍ구글 영문 첫 글자를 딴 약어)’이라고 불리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본다. 기술주를 두고 거품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거품이라고 지적하는 측은) 매출 성장성을 문제 삼고 있는데 수익 성장성을 봐야 한다. 미국 경제 역시 언젠간 둔화하겠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구매관리자지수(PMI, 제조업 경기를 보여주는 지수)와 고용 지표를 보면 여전히 호조세다. 미국 중간 선거가 끝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 하나도 사라졌다고 본다.”
앤디 버든 CIO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은 작다“고 예상했다. [사진 캐피탈그룹]

앤디 버든 CIO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은 작다“고 예상했다. [사진 캐피탈그룹]

 
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위험 변수는 없나.
“무역 전쟁은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또 기술주가 흔들리는 것도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연구개발에 바탕을 두고 대량의 투자를 하는 회사, 디지털 구조 변화에 적응하는 회사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주요 IT 기업의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이 출렁이는 이유다. 기술주, 미국 경기, 기업 내재 가치 대비 주가(밸류에이션), 금리 상승, 무역 전쟁. 이 5가지는 시장 투자자라면 앞으로 계속 주의해야 할 변수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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