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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보면 안다, 멍든 몸에도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중앙일보 2018.11.22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22)
민들레. [중앙포토]

민들레. [중앙포토]

 
민들레는 키가 크다
 
실컷 앓은 다음
세상 아름다움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길모퉁이 틈새에 비집고 나온 민들레는
해가 세상에 나오면 무엇보다 먼저
까치발로 노랗게 팔 벌려 안긴다
하늘에서 보면 키가 제일 크다
 
땅 위에 엎어져 샛노래지고
이왕, 쉬어가야 할 때
몸이 말하는 침묵의 소리 들린다
찔레꽃이 끙끙
멍든 몸에도 피어난다는 걸
 
한 사람의 손길이 우주만큼 크다는 걸
누군가에게 한세상이라는 걸
그의 키는 땅에서부터 재기도 하고
하늘로부터 재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해설]
 
나는 두 번씩이나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한 번은 근무처 약탕 실에서 불이 났다. 학원, 병원 등이 있는 이웃 칸으로 옮겨붙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불을 껐다. 불을 끄다가 당한 3도 화상으로 전신 20%에 물집이 잡혀 화상 전문병원에 스무날가량 입원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신 20% 화상은 사망률이 20%라는 뜻이다. 화상 치료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하다. 처음 중환자실서 겪은 통증은 너무 지독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출산 고통보다 더 아픈 화상 치료
화상 치료는 새살이 돋기까지 감염방지가 1차 목적이다. 그래서 고름이 잡힌 상처 부위를 세심하게 닦아내야 한다. 수세미로 솥 밑바닥을 긁어내듯이 피부를 박박 긁는다. 이때 얼마나 아픈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못 한다. 모든 환자는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진통 주사를 꼭 맞는다. 막상 진통 주사를 맞았어도 출산 고통보다 더 아프다고 말한다.
 
자신의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 뒤에 속 깊은 눈만 내놓고 묵묵히 일하는 치료사에게 점점 유대감이 느껴졌다. 인간 두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다. 그래서 같은 장소에 머무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느낌과 동작이 전염된다. 누군가 한 사람이 하품하면 곧이어 여기저기서 하품을 따라 하듯이.
 
이처럼 정서적으로 힘든 일을 마다치 않는 치료사에게 어떻게 하면 감사한 마음을 전할까 생각해 보았다. 다른 환자들처럼 진심 어린 선물로 또 말로, 표정으로 전하는 거 외에 나만의 특별한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한 화상 환자의 손. 화상 치료는 감염방지가 1차 목적이라 고름이 잡힌 상처 부위를 세심하게 닦아내야 한다. 이때 수세미로 솥 밑바닥을 긁어내듯이 피부를 박박 긁는데, 얼마나 아픈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못한다. 김춘식 기자

한 화상 환자의 손. 화상 치료는 감염방지가 1차 목적이라 고름이 잡힌 상처 부위를 세심하게 닦아내야 한다. 이때 수세미로 솥 밑바닥을 긁어내듯이 피부를 박박 긁는데, 얼마나 아픈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못한다. 김춘식 기자

 
삼국지에 보면 관우가 독화살을 맞아 상한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화타에게 받을 때 미동도 하지 않고 바둑을 두었다는 고사가 나온다. 관우의 자세는 자신의 의연함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화타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 행동했을 거다. 내가 한의사이기에 그런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걸 ‘심리적 피드백’이라 부른다.
 
나도 따라 하고 싶었다. 내 인터넷 아이디가 화타라 더 그랬다. 그래서 한 번쯤 주사도 맞지 않고 치료 중에도 아픈 표정을 짓지 않아보기로 했다. 바둑은 둘 수 없어도 대신 유머를 날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치료사의 인상이 정말로 활짝 펴지는 것이었다. 무척 흐뭇해했다. 심리적 피드백이 위력을 발휘했다. 나도 위안이 됐다. 신기하게 그 뒤에도 진통 주사 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다.
 
화상 치료는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여러 번 피부이식을 받아야 하는 데 의료보험 적용이 제한된다. 피부이식이라 하면 흔히 한두 번이면 되는 줄 안다. 이식한 피부는 사실 천연붕대 역할밖에 못 한다. 넓게 피부 괴사가 일어나 감염이 진행될 때 그 속도를 막아보자고 시행하는 거다.
 
이식한 피부가 살아남는 확률이 생각보다 적다. 자기 피부를 도려내면 그것은 또 다른 상처를 내는 결과가 된다. 이중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두 군데 상처가 아물려면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도 피부이식은 필요하다. 재활과 성형은 나중 이야기다.
 
화상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은 대개 한창 일할 나이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근로자가 많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뜨거운 국물에 데이거나, 전기공사를 하다가 감전돼 온다. 집안에서 부주의로 화상을 입은 아기도 많다. 심지어 가족 간의 갈등으로 홧김에 불을 질러 들어온 사람도 있다. 들을수록 안타까운 사연이다.
 
경포대 바닷가서 만난 떡장수 할머니
병원서 퇴원하고 외래진료를 받아도 될 즈음 겨울 바닷가에 가고 싶었다. 왼손목을 움직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고 차가운 바닷바람이라도 흠뻑 맞고 싶었다. 쓸쓸한 경포대 모래밭에 혼자 앉아 철석 대는 파도 소리를 듣는데, 마침 인절미와 따뜻한 차를 머리에 인 할머니가 내 곁을 지나갔다. 맛있는 떡을 사라고 한다. 
 
나와 눈을 마주친 할머니가 머리와 양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내 모습을 보고 놀라는 눈치다. 그러나 금세 표정이 달라졌다.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다가와 앉으며 머리에 인 떡 그릇을 내려놓더니만, 인절미를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사양할 틈도 없이 입에 들어온 인절미는 정말 부드럽고 따사로웠다. 찬찬히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할머니가 ‘젊은이 힘내요’ 한다.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 할머니는 곧장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경포대 해수욕장. 경포대 모래밭에 혼자 앉아 있는데 떡장수 할머니가 떡을 팔러 내게 다가왔다. 양팔을 붕대로 칭칭 감은 모습을 보곤 아무말 없이 인절미를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용솟음쳐 흘러내렸다. [중앙포토]

경포대 해수욕장. 경포대 모래밭에 혼자 앉아 있는데 떡장수 할머니가 떡을 팔러 내게 다가왔다. 양팔을 붕대로 칭칭 감은 모습을 보곤 아무말 없이 인절미를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용솟음쳐 흘러내렸다. [중앙포토]

 
어깨에 걸친 외투 안주머니에 지갑이 있었지만, 양손을 쓸 수 없었던 나는 입마저 다물 수밖에 없었다.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용솟음쳐 흘러내려도 훔쳐내지 못하고 그저 뿌연 할머니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푹푹 꺼지는 백사장 위를 성큼성큼 걷는 할머니 발자국은 내 가슴에도 선명히 찍혔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가죽처럼 굳어진 내 피부감각을 일깨웠다. 나는 그렇게 경포대의 하루 풍경에 녹아들었다.
 
왼손목은 다행히 성형외과 전문의인 선배의 희생적 치료 덕분에 피부와 근육이 오그라드는 구축현상을 막을 수 있었다. 약 5개월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주사를 맞았다. 지금은 손목이 멀쩡히 움직인다. 그럼에도 한동안 화상 흉터를 가리기 위해 무더운 여름에도 긴 소매 옷만 입고 다녔다. 10년쯤 흐른 뒤에야 비로소 반소매 옷을 입게 되었다.
 
애덤 그랜트가 지은 ‘기브 앤 테이크’란 책을 보면 사람은 세 부류가 있다. 늘 남에게 베푸는 사람과, 최대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 받은 만큼만 주려는 사람이다. 성공의 사다리를 분석해보면 잘 베푸는 사람이 최상위 수준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처음엔 성공하는 듯해도 조만간 본색이 드러난다. 받은 만큼만 주려 하면 중하위를 이룬다. 최상위 사람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어렵고 좁은 길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부류이다.
 
최근에 연구되는 대뇌생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학습과 기억에 작용하는 해마는 감정 작용을 위주로 하는 변연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성적 작용을 하는 대뇌피질과 원활히 연결될 때 기억과 학습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 말은 이성적 판단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감정의 교류가 원활해야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실수는 빨리 사과하는 게 최선
또한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이 자기가 저지른 실수와 오류를 감추지 말고 빨리 사과하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한다. 그 이유도 현대인이 감정의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걸 근거로 든다. 소통은 감동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키는 여태껏 땅을 기준으로 재어왔다. 그러나 하늘을 기준으로 재보면 어떻게 될까. 누가 제일 클까.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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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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