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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과 한집 살지만 밥은 따로 해먹는다 왜?

중앙일보 2018.11.22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숨이 막힐 것 같은 깊은 바다에 빠진 것 같은 요즘. 어떻게 수면으로 올라가야 할지 모색 중. 지금은 그냥 숨 막혀 죽지 않을 정도의 호흡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은 아직도 나에게 수련이 모자란다고 하는가…. 배려심 없는 노인은 꼴불견일 뿐이다. 자립심 없는 노인도 꼴불견이다. 상대방의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꼴불견이다. 사람의 약점을 갖고 억누르려는 인간은 최악이다.”

 
수년 전 나의 블로그 내용이다. ‘꼴불견’이라고 험담을 한 노인은 시부모다. 각 방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 일본의 여름은 전기세가 평소의 두 배로 뛴다. 목욕탕에 물때가 끼고 곰팡이가 생기는 걸 두려워한 나는 환풍기를 켜놓았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시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게 됐다.
 
결국에는 다른 문제로까지 이야기가 번져 한바탕 하게 되었고, 시아버지는 나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내 말을 안 들을 거면 남편이랑 애들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가라.”
 
시아버지, 남편에게 ‘나가란 말' 안 했다고 발뺌 
아이들이 어렸을 적 조모와의 사진. 내가 목욕을 시키면 어머니가 받아서 닦아 주셨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됐다. 덕분에 외출할 때 아이 맡길 곳이 없어 곤란했던 적은 없었다. 시부모와 동거했을 때의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사진 양은심]

아이들이 어렸을 적 조모와의 사진. 내가 목욕을 시키면 어머니가 받아서 닦아 주셨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됐다. 덕분에 외출할 때 아이 맡길 곳이 없어 곤란했던 적은 없었다. 시부모와 동거했을 때의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사진 양은심]

 
저녁에 귀가한 남편은 시아버지가 ‘나가란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니, 진심으로 나갔으면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말은 결혼 후 18년 동안 한집에서 문제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해 온 나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주었다. 내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시부모를 내 부모처럼 모시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나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당장 4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을 찾아보기는 했으나 고2인 아들의 대입을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결국은 경제적으로 내가 아쉬워서 시부모의 집에 눌러앉은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시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때부터 나는 오지랖 넓은 며느리를 그만두었다. 부탁해 오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보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점점 거리를 두는 관계의 쾌적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하늘은 절묘한 순간에 시련을 내리고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마음의 상처는 밴드를 붙여놓으면 낫는 육체적 상처와는 다르다.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생리불순에 시달리며 통원치료를 해야만 했다. [중앙포토]

마음의 상처는 밴드를 붙여놓으면 낫는 육체적 상처와는 다르다.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생리불순에 시달리며 통원치료를 해야만 했다. [중앙포토]

 
마음의 상처는 밴드를 붙여놓으면 낫는 육체적 상처와는 다르다. 상처받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치유가 어렵다. 상처를 준 사람의 사과가 없을 땐 더더욱 힘들어진다.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생리불순에 시달리며 통원치료를 해야만 했다. 웃음을 잃어 팔자주름이 생겼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떻게 하면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나를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은 끝장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택한 치유법은 ‘나를 돌보며 살기’‘누군가에게 털어놓기’였다. 나는 친정 식구에게도 시댁 험담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부부싸움을 했을 때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여자가 입만 열면 시부모 험담을 하는 흉한 여자가 된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한동안 입만 열면 시부모 험담이 터져 나올 거다. 털어놓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 들어달라”라고. 친구들은 나의 하소연을 끈기 있게 들어주었고 나는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부모 험담으로 마음의 상처 치유
아이들 피아노 발표회 날 조부모와 아이들의 모습. 두 분 다 정정하셨던 때의 모습. 아들이 대를 잇는다는 것에 대해 한국보다 집착이 덜 한 일본이지만 그래도 두 손자를 보고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었다. 사진 오른쪽이 대학교 4학년인 큰아들이다. 집에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할아버지를 돌보려 한다. [사진 양은심]

아이들 피아노 발표회 날 조부모와 아이들의 모습. 두 분 다 정정하셨던 때의 모습. 아들이 대를 잇는다는 것에 대해 한국보다 집착이 덜 한 일본이지만 그래도 두 손자를 보고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었다. 사진 오른쪽이 대학교 4학년인 큰아들이다. 집에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할아버지를 돌보려 한다. [사진 양은심]

 
그렇게 내 나름의 방법으로 마음을 치유해 나갔고, 지금도 한 지붕 아래에서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만 90세. 시어머니는 작년 10월 83세로 돌아가셨다. 가벼운 치매 증상이 있는 시아버지는 나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나는 시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다. 당신 집에서 나가라던 사건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시아버지는 나와 이야기할 때 가장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입만 열면 ‘신세 져서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일본에도 고부갈등이 있고 ‘시월드’라는 것도 있다. 한국과 다르지 않다. 손주는 귀여우나 며느리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며느리가 멀어지려는 것은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같이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시부모와 같이 산다고 하면 ‘2세대 주택’인 경우가 많다. 같은 건물이지만 주거공간이 독립되어있는 경우이다. 1층 2층으로 나뉘거나, 좌우로 이어지는 구조도 있다. 우리 집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단, 우리 집이 독특한 것은 부엌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시부모와 식사를 따로 해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다. 한동안 내가 식사준비를 했으나, 며느리가 두 아이를 키워가며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것을 본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에게 둘이서 해결하자며 만든 시스템이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던가. 시아버지와 한바탕하기 전까지의 나는 시부모와 사는 장점을 선전하고 다니는 '이상한 여자'였다.
 
봉양으로 화목한 가정 복원 중
나는 지금 수행과도 같은 ‘봉양’을 통해 내가 이상으로 삼았던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회복시켜가고 있다. 이번에는 나 혼자의 노력이 아니다. 남편과 두 아들과 나, 넷이 협력하여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귀여워해 준 할아버지를 살뜰히 대한다. 큰아들인 경우는 책임감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 시기를 잘 살아내는 것이 우리 집 자녀교육의 완성이 될 듯하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zan32503@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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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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