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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올리는 주범""자판기 커피값도 안돼" 쌀값의 진실

중앙일보 2018.11.22 05:00
올해 수확한 쌀을 수매하기 위해 전남 해남군 화원면 미곡종합처리장(RPC)를 찾은 장수익(69)씨가 트럭에 실린 쌀포대를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올해 수확한 쌀을 수매하기 위해 전남 해남군 화원면 미곡종합처리장(RPC)를 찾은 장수익(69)씨가 트럭에 실린 쌀포대를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밥 한공기 240원' vs '쌀값 28% 폭등'
“자판기 커피 한 잔보다 못한 쌀값을 두고 ‘폭등’이라는 말들을 쓰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지난 16일 전남 무안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이석하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은 “밥 한 공기(100g) 쌀값이 300원은 돼야 최소한의 쌀 생산비를 맞출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농 측은 지난 14일부터 쌀 목표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민주당 전남도당에서 점거 농성을 벌여왔다.이들은 22일 국회 앞 농민대회를 통해 쌀값 인상을 촉구할 계획이다.
 

농민들, 22일 국회 앞서 대규모 집회
일각선 “쌀값이 물가 끌어올려” 주장
“개사료만도 못해…농민 울리지 마라”

이 사무처장은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올해 80㎏당 쌀 목표가격(19만6000원)은 5년 전보다 후퇴했다”며 “물가는 매년 3%씩 오르는데 2013년 발의한 법안(21만7719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쌀 목표가격은 정부가 농민에게 변동직불금을 지급하기 위한 기준값이다. 쌀값이 내려갈 경우 목표가격과 산지 가격 차액의 85%를 농민에게 보전해 준다. 쌀 산지가는 농민으로부터 벼를 수매한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대형마트나 농협마트 등에 공급하는 도매가를 말한다.
 
지난 14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에서 점거농성을 해온 전국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설치한 '쌀값인상 촉구' 플래카드.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4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에서 점거농성을 해온 전국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설치한 '쌀값인상 촉구' 플래카드. 프리랜서 장정필

농민들 “밥 한 공기 300원 관철 투쟁”
 
정부의 쌀 목표가격 확정과 공공비축미 5만t 방출을 앞두고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부 소비자단체와 언론 등에서 “쌀값이 폭등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정부가 북한에 쌀을 퍼주는 바람에 곡간이 비었다’는 가짜 뉴스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쌀값이 폭등한 것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현재 쌀 한 가마(80㎏)의 산지 가격은 19만3696원이다. 20㎏당 4만8424원꼴로 밥 한 공기(100g)로 따지면 242원이다. 밥 한 공기의 가격이 자판기 커피 1잔 평균(300원)을 밑도는 셈이다. 이를 정부가 발표한 쌀 목표가격(19만6000원)으로 환산하면 한 공기당 245원이 된다. 농민들은 22일 상경 집회의 목표를 ‘밥 한 공기 300원 쟁취’로 잡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에서 점거농성을 해온 전국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설치한 '쌀값인상 촉구' 플래카드.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4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에서 점거농성을 해온 전국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설치한 '쌀값인상 촉구' 플래카드. 프리랜서 장정필

 
“30년간 짜장면 7배, 버스비 10배 올랐는데…”
쌀값 인상을 둘러싼 농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30년간 가격 추이로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서울의 평균 쌀 판매가는 20㎏당 6만1467원이다. 이를 30년 전인 1987년 평균 쌀값(2만858원)으로 환산하면 2.9배 올랐다. 국내 물가변화의 지표격인 짜장면값이 같은 기간 6.9배(707원→4885원) 오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낮다. 같은 기간 서울의 시내버스요금과 목욕요금은 각각 10.8배(120원→1300원), 7.2배(968원→6962원) 올랐다.
 
그렇다면 “쌀값이 너무 많이 뛰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유는 뭘까. 산지 쌀값이 1년 전인 지난해 10월(15만1013원)보다 28%(4만2683원) 높아져서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과 식당 업주 등은 “쌀값이 물가인상을 부추긴다”는 입장이다. 반면 농민들은 “쌀값이 적정수준을 회복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과거 5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하락했던 쌀 가격이 제값을 찾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미곡종합처리장(RPC) 앞에 쌓인 수매용 쌀.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해남군 화원면 미곡종합처리장(RPC) 앞에 쌓인 수매용 쌀. 프리랜서 장정필

농민 “4년간 23% 하락”…“쌀값은 잡아야” 목소리도
농민들은 최근 4년간 연평균 쌀값이 23%(4만171원) 하락한 점을 강조한다. 2013년 80㎏당 17만5261원이던 산지 쌀값은 2014년(16만9490원), 2015년(15만8316원), 2016년(13만9883원), 2017년(13만5090원) 등으로 떨어졌다. 이 사이 상당수 농민들 사이에선 “쌀값이 개사료 가격보다 못하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박형대 민중당 전남농민위원장은 “4년간 곤두박질하던 쌀값이 반등하자 마치 폭등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라며 “지난해 쌀값은 20여 년 전인 1996년(13만4871원)과 비슷할 정도로 바닥을 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국내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쌀값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쌀값이 오를 경우 농민들의 벼 재배 면적이 늘어나 쌀이 과잉생산될 우려가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미곡종합처리장(RPC) 직원이 올해 수확한 쌀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해남군 화원면 미곡종합처리장(RPC) 직원이 올해 수확한 쌀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실제 전국의 벼 재배 면적은 2008년 93만6000㏊에서 올해 73만8000㏊로 10년새 21%(19만800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의 쌀 생산량도 487만t에서 올해 387만t으로 20%(100만t) 줄어든 상태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값이 올라도 고령화나 자연감소분 때문에 농지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100g당 240원대인 쌀 목표가를 300원까지 올리더라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안=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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