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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김경수와 다른 이재명 수사 …"文에 각세우면 저렇게 된다"

중앙일보 2018.11.22 00:48 종합 32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의 시선] 이재명 수사, 이중잣대 아닌가 
지난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참석차 방북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평양 땅을 밟고 싶어했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구름처럼 많았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친노’인 이화영 부지사를 통해 청와대에 청을 넣었다. 북한과 접경한 경기도 수장인지라 기대가 컸다. 그러나 청와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이화영이 간접적으로 들은 답은 “지자체장은 아무도 안 데리고 간다”였다. 이재명은 “선별 논란을 차단하려는 모양”으로 알아듣고 뜻을 접었다. 한데 문 대통령 방북 직전 청와대가 발표한 최종 수행원 명단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최문순 강원지사가 포함돼있었다. 놀란 이재명 측이 청와대에 따지니 “박 시장은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장 대표로, 최 지사는 접경지역 대표로 각각 가게 된 것”이란 해명이 돌아왔다.
 

‘친문엔 엉성, 비문엔 가혹’… 이해찬, 신중한 대응 절실
청와대 거수기된 민주당, 비문·이견 포용 안하면 파국

이재명은 속이 쓰렸다. “지자체장은 다 안 데리고 간다”는 말부터 거짓이었다. 또 접경지역 지자체라면 개성공단이 위치한 경기도가 첫손에 꼽힌다. 그런데 경기지사는 쏙 빼고 강원지사만 데리고 갔다. 청와대의 이런 메시지는 ‘이재명 패싱’으로 보기 충분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의욕이 많은 이재명은 포기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러 차례 방북해 평양 인맥이 두터운 이화영을 가동해 지난 14~17일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의 경기도 방문을 끌어냈다. 이종혁과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그로부터 방북 초청장을 받아내는 한편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종혁의 회담도 성사시켰다. 김부선·혜경궁 김씨로 도배돼온 이재명 관련 뉴스에 모처럼 ‘포지티브’ 스토리가 나온 것이다. 기쁨은 잠시였다. 이종혁이 출국한 직후인 17일 경찰이 “혜경궁 김씨는 이재명 부인 김혜경”이라 발표하면서 검색어 순위에서 이종혁은 사라지고 ‘혜경궁’이 자리를 메웠다.
 
이재명도 범죄 의혹이 있다면 수사를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행태엔 의아스런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혜경궁 김씨 사건은 당초 고발자인 전해철 의원이 “당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고발을 취하했는데도 경찰은 제3자의 추가고발을 이유로 고강도 수사를 계속했다. 경선·선거 기간 중 트위터 관련 고발은 워낙 흔한 일이고, 접수된 사건이라도 고발자가 취하하면 없던 일로 넘어가는 게 검경의 관행인데, 이례적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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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찰은 같은 민주당 도지사로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공작 연루 혐의에 대해선 김경수를 대놓고 감쌌다. 시간끌기식 뒷북 수사로 김경수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줬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문재인에 맞선 이재명에 대한 수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혜경궁 김씨  의혹에 비해  드루킹 사건이 갖는 심각성이 훨씬 큰데도 말이다. 경찰이 ‘친문엔  엉성, 비문엔 가혹’한 이중 잣대 수사를 했다는 천정배 의원의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이재명이 이번 사건으로 당에서 쫓겨난다면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문재인과 맞선 3인(안희정·이재명·최성)이 모두 불명예 퇴진 내지 출당을 당하는 결과가 된다. 그 자체만으로 민주당 비문계에겐 섬뜩한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민주당은 ‘스텔스당’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의원총회부터 제대로 열리지 않고 당정협의도 시늉뿐이다. 21일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을 의제로 열린 당정협의는 논의 한번 제대로 않고 사진찍기로 끝났다. 비문계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 관심사라 속전속결로 끝내란 오더가 내려온 거로 안다. 마이크를 뺏긴 의원들이 부글부글한다”고 했다. “요즘 민주당은 ‘침묵의 카르텔’이다. 젊은 피인 초재선 의원들부터 이견 한마디 못 내놓는다. 안희정·이재명처럼 대통령과 각을 세운 이들이 족족 피를 보는데 누가 나서겠나. 내후년 총선에서 공천받으려면 입 다물고 살자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거수기’로 일관했던 새누리당이 딱 이랬다. 그 결과 청와대의 독주가 일상화되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면서 당청이 공멸하고 말았다. 잘나가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 초반으로 추락한 지금이 그런 시나리오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래선 안 된다. 당, 특히 청와대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이해찬이 나서야 한다. “자동차와 조선업 실적이 회복됐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는 대통령에게 “상황을 직시하시라”고 진언하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보고 똑바로 하라”고 다그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나마 다행스런 건 이재명 문제에 대한 이해찬의 신중한 핸들링이다. 친문 일각에서 “이재명 제명”을 외치고 있지만 이해찬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입장이란다. 맞다. 친문들 아우성에 넘어가 이재명을 무작정 내친다면 민주당이 신봉해온 무죄추정 법치주의 원칙이 무너질 뿐이다. 더 무서운 건 “민주당은 친문 아닌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는 당”이란 인식이 마치 사실인 양 국민 뇌리에 고착될 것이란 점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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