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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의 앵그리2030]⑭미래세대 짐 지우는 현세대의 이기적인 연금 개혁

중앙일보 2018.11.21 11:00
76.1%, 74.2%.
 
19대 대통령선거의 20대와 30대 투표율입니다. 18대 대선보다 각각 7.6%포인트, 4.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종 득표율은 41.1%. 대략 20·30대의 47.6%·56.9%가 문 대통령을 찍었습니다.(방송 3사 출구 조사) 20~30대의 전폭적인 지지가 정권 탄생에 큰 역할을 한 셈이지요.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이 믿음에 균열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청년의 미래를 볼모로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어서죠. 국민연금 개혁 얘깁니다. 얼마 전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청와대 신임 사회수석이 됐습니다. 김 수석은 평소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을 중시해 온 학자입니다. 특히 ‘소득대체율 인상’을 강조해왔죠.  
 
국민연금은 구조가 복잡하지만 크게 두 단어만 알면 됩니다. 하나는 보험료율, 하나는 소득대체율입니다. 보험료율은 소득 중 몇%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느냐인데 지금은 9%입니다. 소득대체율은 벌던 소득의 몇%를 연금으로 받느냐를 결정하는 숫자입니다.  
 
현재 2028년까지 40%까지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생애 평균 100만원을 벌었다면 노후에 40만원을 연금으로 받는다는 얘기죠.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국민연금 제도개선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개선안에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2∼15%로 올리는 내용이 담겼는데,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에 청와대가 사실상 거부의 뜻을 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김 수석의 임명까지 고려하면 이미 답은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험료 인상 폭을 최소화하면서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도 지금 20~30대, 그리고 이들의 아들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커집니다.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는 ‘현 세대의 이기적 결정’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차근히 살펴보죠. 국민연금은 낸 돈보다 많이 받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평균 소득자(월 227만원)의 수익비(낸 돈 대비 받는 연금액)는 2.6배입니다. 이런 금융상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데도 자발적으로 가입해(국민연금 임의 가입제도) 노후 대비를 하려는 사람이 많은 이유죠. 고소득층의 수익비는 낮고, 저소득층은 높아서 소득 재분배 기능도 합니다.  
 
다만 장점을 계속 유지하기 힘듭니다. 지금까진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적습니다. 자연히 돈이 쌓이죠. 현재 국민연금 기금은 630조원 정도, 이 돈은 2041년까지 늘어납니다. 그러나 불과 16년 후인 2057년 완전히 고갈됩니다. 고령화 추세로 낼 사람보다 받을 사람이 많아지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민연금공단, 국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민연금공단, 국회]

내는 돈은 그대로 두고 40%인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기금 고갈은 더 빨라지겠죠? 만약 보험료율을 묶어둔 채 소득대체율만 올리면 기금은 3년 빠른 2054년 고갈됩니다. 3년 정도 빨라지는 게 별 문제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쌓아둔 돈 털어먹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간단합니다. 그해 보험료를 걷어서 그해 받을 사람에게 나눠주는 부과식으로 바꾸면 됩니다. 김 수석의 주장이 바로 이겁니다. 그러나 부과식으로 바꾸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그것도 매우 많이 올려야 합니다. 2057년 고갈을 가정하고 그때부터 부과식으로 바꾸면 2088년에 보험료율은 28.8%에 이릅니다. 현재(9%)의 3배가 넘습니다.  
 
이마저도 희망적인 계산입니다. 합계출산율을 1.24~1.38명으로 가정했거든요. 만약 지난해 합계출산율(1.05명)을 대입하면 2060년에 걷어야 할 보험료율이 29.3%로 치솟고, 2088년에는 37.7%까지 급증합니다. 그 시기 보험료를 낼 지금 20~30대의 자녀세대는 월급의 3분의 1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9%만 내고 연금을 받으면서, 자녀들에겐 ‘월급의 3분의 1을 날 위해 내놓으라’고 말해야 한다는 거죠. 
김연명 신임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이 1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연명 신임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이 1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 국민연금은 애초에 낮은 보험료에서 출발해, 차츰 보험료를 올리는 식으로 설계돼 있었습니다. 당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자신의 노후는 물론 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고 있던 점을 고려한 조치였죠. 초기 가입자를 늘리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그래서 1988년 도입 때 3%였던 보험료율은 1993년 6%, 1998년 9%로 차츰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무려 20년 동안 동결됐습니다.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20년 동안 9%를 냈으니 이 기간 가입자(죄송하지만 40~60대 직장인)는 이미 혜택을 본 겁니다. 해외 사례요? 의무가입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회원국의 평균 보험료율은 18.4%입니다. 우리의 두 배죠. 한국은 올려야 할 때 올리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보험료도 함께 올려야 합니다. 그게 후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비판을 의식한 듯 김 수석은 최근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고 소득대체율만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대통령께 보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사실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주장엔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수치상으로 2016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6.7%로 OECD 중 1위입니다. 그런데 OECD의 노인 빈곤율은 전체 인구를 처분가능소득 규모로 줄을 세웠을 때 중위소득의 50%를 밑도는 노인 인구의 비율입니다. 즉 소득만 따진 겁니다.    
 
한국은 가계자산의 65%가 부동산에 몰려 있습니다. 부동산은 임대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한 처분가능소득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20억 원짜리 자가 주택이 있어도 연금 등 현금 소득이 적으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는 얘기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소득 빈곤 노인은 100명당 46명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 25명은 소득만 부족할 뿐, 주거와 자산 측면에선 결핍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들 중 66.3%는 고자산층에 속했고요. 소득과 함께 ‘주거 또는 자산’ 차원에서도 빈곤을 겪는 건 21% 수준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높은 게 아니라 노인 소득 빈곤율이 높은 겁니다.  
 
더 근본적으로 노인 빈곤을 왜 국민연금으로 해결하느냐는 문제도 짚어봐야 합니다. 국민연금은 내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내는 사람 위주로 설계, 운영되는 게 맞습니다. 한국 성인 인구 중에서, 국민연금 가입자는 대략 55% 정도입니다.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가 8월 17일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가 8월 17일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정말 빈곤 노인의 소득이 걱정이라면 이 곳간, 저 곳간 섞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기초연금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도입한 제도인데 약 10년을 거치면서 자리를 좀 잡았습니다. 현재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최대 월 25만원을 지급합니다. 소득과 재산에 따라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하위 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까지 보호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영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기왕 돈이 쌓이고, 이 돈이 금융시장 안정에 쓰이고, 일종의 국가 보험 역할도 하고, 한국의 경제 역량도 키우고(해외에서 한국 국민연금은 큰 손으로 통합니다), 게다가 후세대의 경제적 부담까지 줄여줄 수 있다면 최대한 기금의 고갈 시기를 늦출 방법을 고민하는 게 옳은 방향입니다. 많은 연금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이고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더라도 보험료율을 13%로 4%포인트 올리면 고갈 시기를 2065년으로 늦출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국가의 지급 보증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모양입니다. 국가 책임을 보증한다는 건 기금이 고갈돼도 어떻게든 연금은 준다는 얘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연금을 지급한다는 얘기인데, 그 돈은 그때 근로 세대의 세금으로 충당하겠죠. 우리의 아들딸, 손자 손녀의 몫입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지금 보험료를 더 내는 게 떳떳합니다. 노후 빈곤을 해결하려면 지금 세금을 더 내고, 기초연금을 더 많이 드리는 게 떳떳한 겁니다. 그게 아직 이 땅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짐을 덜어주는 길입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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