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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10배면 어때, 고가 소형가전 인기

중앙일보 2018.11.20 16:52 경제 4면 지면보기
5년째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 모(32) 씨는 얼마 전 고민 끝에 50만원을 주고 드라이어를 샀다.
 

50만원대 고데기·헤어드라이어
449만원 다리미, 65만원 면도기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
“평소 허리띠 졸라매다 작은 사치”

일반 드라이어의 10배가 넘는 가격이지만, 매일 아침 머리 손질에 10분 이상 시간을 쓰는 한 씨는 “아침에 머리 손질 시간을 1분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값어치를 한다는 마음으로 샀다”고 말했다.  
 
요즘 가전 시장에서 이른바 ‘명품 소형 가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개 같은 용도의 일반 제품보다 10배 정도 비싼 제품이다. 이전에는 중·상류층이 주로 찾았지만, 최근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고가의 소형 가전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를 누리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영국 ‘다이슨’이다. 다이슨은 지난달 고데기인 ‘에어랩 스타일러’를 출시했다. 가격은 53만9000~59만9000원이다. 200도가 넘는 뜨거운 열판으로 웨이브(곱슬한 머리)를 연출하는 일반 고데기와 달리 바람의 기류를 통해 머릿결 손상 없이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다이슨 헤어제품.

다이슨 헤어제품.

지난 9월엔 기존 출시한 드라이어의 바람이 나오는 부분에 금박을 씌운 ‘슈퍼소닉 23.75캐럿 골드 헤어드라이어’를 55만9000원에 내놨다. 대충 젖은 머리를 말려도 ‘손질을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헤어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이한 디자인이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랑스레 올리는 소비자가 많다.
 
다이슨 공기청정기.

다이슨 공기청정기.

일본 ‘발뮤다’도 젊은 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명품 소형 가전 브랜드다. 날개가 14개인 선풍기인 ‘그린팬S’는 54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린다. 올해 들어 국내 판매량(7월 기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늘었다. 식빵을 굽는 토스터인 ‘더 토스터’는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값은 30만원대다. 가습기인 ‘레인’은 가격이 60만원대다. 항아리 모양의 디자인과 물 입자를 줄인 기화 방식 등이 특징이다.
 
발뮤다 제품들.

발뮤다 제품들.

스위스 ‘로라스타’의 스팀 다리미는 무려 449만 원이다. ‘옷의 앞면을 다리면 뒷면 주름까지 펴진다’는 제품이다. 자동 스팀분사 시스템과 3D 열판으로 실크, 앙고라 같은 옷도 집에서 다릴 수 있다고 내세운다. 보통 비싸봐야 15만원 정도 하는 전기면도기를 65만원에 팔기도 한다. 필립스가 지난달 출시한 ‘S9000 프레스티지’다. 무선 충전 방식, 수염 상태를 읽는 센서 등의 첨단 기능을 도입했다.  
 
로라스타 스팀다리미.

로라스타 스팀다리미.

고가의 소형 가전이 인기를 끄는 데는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일점호화(一點豪華) 소비’가 영향을 미친다. 일점호화 소비란 평상시에는 소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절약하며 살지만, 특정 부문의 ‘한 가지는 사치스럽게’ 고급 소비를 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에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심비’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영향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 가전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명품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며 “SNS가 활성화하면서 ‘과시욕’도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고 디자인이 예쁘고 크기가 작은 제품을 선호하는 1인 가구 증가도 이유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는 550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8.5%를 차지한다. 2000년(222만 명)의 두 배 규모다.  
 
필립스 전기면도기 'S9000 프레스티지'.

필립스 전기면도기 'S9000 프레스티지'.

이들 고가 소형가전 제품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린다. 예컨대 가격이 50만 원대인 다이슨 ‘슈퍼소닉 드라이어’는 바람의 세기 등을 좌우하는 출력(소비전력)이 1600W다. 유닉스‧비달사순‧테팔‧한일전자 등에서 만든 2000W 드라이어 가격은 3만~5만원 선이다. 
 
출력은 더 낮지만, 가격은 10배 비싼 셈이다. 하지만 바람이 고르게 분사돼 일반 드라이어보다 머리카락 엉킴이 덜하고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연출하기 수월하다는 평도 있다. 가격 거품 지적도 당연히 나온다. 다이슨이 이달 초 국내 출시한 공기청정기인 ‘퓨어 핫앤쿨’은 99만8000원이다. 이 제품은 일본에선 8만4000엔(약 84만원)에 출시됐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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