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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이 한마디 뭐가 어렵다고…

중앙일보 2018.11.20 11:01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2)
마냥 아이 같은 막내딸로 30년을 편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미술 전공자.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그려본다.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록해보는 삼대 이야기. <편집자>
 
임신 3개월쯤 결혼식을 했고, 급하게 얻은 신혼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오래된 작은 빌라였는데 10평 정도의 거실 없는 투룸이었다. 게다가 위치도 어찌나 외졌는지 한동안은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워 늘 통화를 하며 뛰다시피 집으로 갔다. 택배기사님도 위치가 어디냐며 전화 오기 일쑤였고 친구들도 “여기 어떻게 집이 있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혼수라고는 들어갈 공간도 없는 작은 집인 걸 친정엄마는 눈으로 보았는데도 가전제품은 좋은 걸 써야 한다며 아파트에 놓아야 어울릴 법한 크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다. 내가 모은 돈으로는 고작 가구 정도 살 수 있었다. 저렴하고 신혼집에 어울리는 가구를 사겠다고 고집부리는 딸에게 그래도 절대 매트리스만은 좋은 걸 써야 한다며 기어코 혼자 가서 브랜드의 좋은 매트리스를 사온 엄마의 마음을 그저 유난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엄마 스스로 득 될 것이 없는 유난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저 엄마 맘대로라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원래 그러니까 알아서 하라고 짜증을 좀 냈던 것 같다. 이른 아침 가구 들이는 날에 맞추려 혼자 가구점에 가서 매트리스를 고르고 결제하고 핸드폰 어딘가에 저장된 낯선 주소를 꾹꾹 눌러 적으며 엄마는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종종 내 앞에선 “신혼집은 작아도 돼. 아이 키울 땐 좋은 집이 소용없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 스스로 하는 말 같이 느껴졌다. 곱게 키운 딸이 엄마가 고른 매트리스에 어울리는 좋은 집에서 그저 행복하게만 살길 바라는 마음이 당연한데도 그때의 나는 엄마에게 너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통보하고 받아들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성인이고 결혼하기로 결정이 난 이상 빨리 해치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좋은 집, 넓은 집, 비싼 집이 주는 의미가 단순히 행복이나 시집을 잘 간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명품을 두르고 외제 차를 타길 바란 게 아니었을 거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아프면 돈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고 남에게 베풀 때 인색한 마음을 갖지 않기를, 또 더러는 여행도 가고 신랑이랑 돈 때문에 싸우지 않기를, 곧 태어날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 정도는 해줄 수 있기를….
 
그래서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 “엄마, 난 행복하게 잘 지내, 결혼하니 정말 좋다”였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먼저 살아본 엄마는 누구보다 잘 알았을 거다. 결혼 4년 차인 지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지금도 여전히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가장 나를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사람은 엄마다. 물론 잔소리나 인생 선배로서 예언 비슷한 것도 해주고 말이다. 어쨌든 4년 전 결혼을 앞둔 나는 결혼 후에 엄마의 집에서 나와 따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헤어짐에도 절차나 매너라는게 있다면 모든 걸 무시하고 뛰쳐나간 꼴이었다.
 
결혼해 나와 살면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작은 싱글침대,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며 엄마가 사 준 작은 TV, 오래된 내 책상, 어느 날 시장에서 예뻐서 사 왔다며 놓아준 보라색 꽃 화분, 출근준비에 벗어 던진 옷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그 방이, 누군가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해둔 아침밥이 더이상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았더라면 엄마랑 조금 더 천천히 헤어질걸.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조금 더 예쁜 말로 엄마를 위로해 줄 걸 하고 후회한다. 엄마가 되어 엄마와 헤어지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그동안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엄마가 가꾼 이 집에서 행복했다고 추억이 많아 따뜻했다고, 엄마가 가끔은 살면서 보여준 자식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그런 부분까지 다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헤어지는 준비 말이다.
 
장윤정 주부 kidsart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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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주부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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