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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귀족노조의 촛불 농단

중앙일보 2018.11.20 00:32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우리는 기도할 때 촛불을 밝힌다. 종교를 초월하고 국가·민족을 뛰어넘는 보편적 관습이다. 곧 다가올 성탄절에도, 내년 봄 석가탄신일에도 촛불을 켠다. 간절한 소망은 촛불을 타고 영적으로 전파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을 발휘하기도 한다. 2년 전 이 무렵 서울 광화문에서 처음 타올랐던 촛불도 그런 소망을 담았다. 그 힘은 얼마나 강력했던지 수많은 국민이 차가운 거리로 몰려나와 촛불을 들게 했다. 그래서 대통령 연설문에 손대고 대기업을 압박해 재단에 돈을 출연시킨 국정농단을 끝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로 불린다. 켜켜이 쌓인 구태를 해소하고 나라의 질서를 새롭게 짜라는 국민의 소망을 담았다. 그런데 당초 순수했던 ‘촛불 정신’은 오간 데 없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민주노총의 ‘촛불 농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기득권을 지키는 수구세력으로 남아 내일의 삶이 더 좋아지는 변화와 혁신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다. 선량한 시민의 순수한 촛불 정신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촛불로 탄생한 이 정부는 노조 권력에게 ‘정권 창출의 지분’을 인정했다. 이들 요구대로 5년 정부의 정책 기조에 친노조·반기업·반시장 정책을 대거 포함시켰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경제민주화라는 미명하에 기업 손보기도 일상이 됐다.
 
이 정책은 불과 1년도 안 돼 한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세계 주요국과 달리 고용한파가 연중 몰아치고 가계의 기둥인 40~50대는 20년 전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전철을 밟듯 실직 공포에 내몰리고 있다. 투자·생산·고용·소비·수출 등 경제의 핵심 지표에는 모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 정부는 어설픈 정책실험이 사실상 실패하자 기존 정책의 속도 조절을 고민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고 탄력근무제 기한을 연장하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규제의 붉은 깃발을 뽑자는 의지도 밝혔고 기업인과의 대화도 늘려나가고 있다. 전면적 정책 전환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땜질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런 요구마저 거부하고 있다. 내일 총파업에 이어 다음달 1일 ‘촛불 항쟁 2주년’ 기념 민중대회를 앞두고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연일 도심 시위를 벌이며 청와대·국회·검찰 등 국가 중추기관을 닥치는 대로 휘젓고 있다. 이런 방종을 보다 못해 집권세력에서도 “민주노총은 이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너무 일방적이어서 말이 안 통한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한국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싸우다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 시대로부터 반세기에 이르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의 임금은 오를 만큼 올라 현대차 연봉이 도요타차보다 많아졌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더 투쟁적이고 퇴행적 양상을 띠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지 고민하기보다 오직 기득권 챙기기에만 몰두한다. 그러니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온다. 이들의 투쟁은 명목상 재벌을 겨냥한다. “재벌의 무책임 경영, 노동자는 피해자다” 같은 구호로 재벌에 대한 무한대의 증오와 분노를 선동한다. 오직 재벌만 패면 정의롭게 비춰질 것이란 계산에서다.
 
하지만 그 결과 제 밥그릇인 기업이 골병들고 한국 경제는 표류하고 있다. 어느 국민이 이런 모습을 보려고 촛불을 들었을까. 이는 오히려 선량한 국민이 귀족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에 농락당했다는 자괴감만 들게 할 뿐이다. 나아가 국민의 촛불이 언젠가 귀족노조를 향해 타오를지도 모른다. 노조 권력은 이제라도 촛불 농단을 끝내고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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